배심원 평결 함부로 못 뒤집는다

강민우 기자(binu@mk.co.kr) 2024. 8. 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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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무죄평결한 사건의 경우 상급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비록 1심 판단이 배심원의 만장일치에 따른 평결을 채택한 것이기는 하나 2심에서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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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항소심 증거조사 신중"
'30억 사기' 국민참여재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
2심 추가증인 내세워 뒤집혀
국민참여재판과 다른 판결
제도취지 퇴색 지적 잇따라
美선 무죄평결땐 檢 상고불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무죄평결한 사건의 경우 상급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배심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이에 따라 국민참여재판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집히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1년 12월~2013년 7월 평소 알고 지내던 대부업자 B씨에게 "돈을 빌려주면 화물트럭을 구입해 수익을 내고 일부를 나눠주겠다"고 속여 31억59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차량 구입 용도로 돈을 빌린다고 하지 않았고 수익금을 약속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들은 7명의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내렸다. B씨의 진술 외에는 A씨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항소심에서 B씨의 배우자, A씨가 근무한 직장의 대표 등을 추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한 끝에 B씨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비록 1심 판단이 배심원의 만장일치에 따른 평결을 채택한 것이기는 하나 2심에서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1심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가 선고된 이상 새로운 증거조사가 필요한지를 따질 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검사는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사유가 있는지에 관해 아무런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채 1심 법원 공판준비기일과 유사한 입증 취지를 항소심에서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인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배심원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란 취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선 국민참여재판에서 도출된 결론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사법 흐름을 반영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만장일치 평결을 통해 선고된 무죄판결은 항소심이 기록 검토만으로 유죄로 바꿀 수 없다'는 이미 확립된 법리에서 더 나아가 추가 증거조사를 실시해 결론을 뒤집는 것도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못 박은 것이다.

대법원도 이번 판결에서 관련 법리를 설시하며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조사'를 직접 보고 들으면서 심증을 갖게 된 배심원들이 서로의 관점과 의견을 나누며 숙의한 결과 '피고인은 무죄'라는 일치된 평결에 이르렀다면, 이는 피고인에 대한 유죄 선고를 주저하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법조계에선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해 상급심에서 다른 판결을 내리게 되면 제도의 취지가 퇴색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실제 배심원 제도를 바탕으로 사법 시스템이 운영되는 미국은 한번 무죄평결이 내려지면 검찰은 이를 뒤집기 위해 상소할 수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배심원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기 어렵게 만든다면 국민참여재판도 지금보다 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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