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여백의 힘, 산사

2024. 8. 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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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종교적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틈나는 대로 산사를 찾는다.

필자에게 산사의 의미는 여백 찾기이자 매력 찾기다.

산사 찾기는 곧장 삶의 여백 찾기다.

필자의 주말 여백 찾기는 굳이 산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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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종교적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틈나는 대로 산사를 찾는다. 산사를 향한 발걸음은 매번 즐겁다. 청춘 예찬, 신록 예찬, 맨발 걷기 예찬, 집밥 예찬. 세상은 예찬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산사예찬을 하나 더 보태고 싶다.

필자에게 산사의 의미는 여백 찾기이자 매력 찾기다. 분명 여백은 미덕이고 숨겨진 힘이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그냥 빈 공간이 아니고 그림을 완성시키는 핵심요소인 것처럼. 빽빽한 건물 배치로 질식할 듯한 베이징 자금성과 달리 우리 궁궐 경복궁, 창덕궁의 기품과 넉넉함이 여백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자연과 어우러진 산사를 거닐다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뭔가 비워지는 느낌이다. 산사 찾기는 곧장 삶의 여백 찾기다.

심장을 파고드는 공기와 발바닥의 촉감을 통해 여유를 느끼기에는 산사의 고즈넉한 진입로와 둘레길이 최고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숲길,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 순천 '선암사'의 매화길, 보은 '법주사' 세조길 등 어느 산사의 산책길도 빠지지 않는다. 해남 '대흥사'의 십리숲길은 제법 익숙하다. 해남 '미황사'의 달마산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달마고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와 암석 풍경은 장쾌하다. 청도 '운문사'의 감나무 너머로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는 크고 상쾌해서 기억에 남는다.

모든 산사가 나름의 색깔로 매력을 내뿜는다. 산사의 규모도 천차만별이고 탑·금당·강당 등 '가람 배치'도 다양하다. 어쨌든 웅장하면 웅장한 대로,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멋스럽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김부식이 남긴 한국의 미를 일컫는 말이다. 절집마다 간직하고 있는 불상, 불탑, 섬세한 승탑, 전각의 기둥과 지붕, 대웅전 부처님 머리 위의 닫집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돌아볼 짬이 난다면 하나하나가 우리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소재이다. "한국 불교의 힘은 새벽 예불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몇 차례 템플스테이를 하며 경험한 새벽 예불의 정갈함, 차오르는 충일감과 경건함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산사 순례와 관련해서 아직 하고 싶은 게 여럿 있다. 문경 '봉암사'에 가보고 싶다. 스님들의 수행 도량으로 부처님 오신 날만 일반인들의 출입을 허락한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 중 아직 못 가본 설악산 '봉정암'에도 가봐야 한다. 참! 산사 백일홍 중 으뜸이라는 영동 '반야사'의 백일홍도 때맞춰 맞으러 가야 한다.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에 버금가는 감동을 기대한다.

필자의 주말 여백 찾기는 굳이 산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누각과 정자, 정원, 천주교 성지 등도 좋은 대상이다. 사전 정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산사 순례에는 '산사 순례'(유홍준)가, 누각·정자 순례에는 '홀로 선 자들의 역사'(김동완)가, 정원 순례에는 '한국정원기행'(김종길)이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정보원은 친구 등 지인들의 경험담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하면 지역별로 산사와 누각·정자, 천주교 성지, 서원, 둘레길, 맛집을 연계한 패키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물론 여백에 같이 스며들고 싶은 아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임기근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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