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한국의 美 앞세워 글로벌 명차로

박소라 기자(park.sora@mk.co.kr) 2024. 8. 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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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현대제네시스디자인 총괄
벤틀리·페라리·포르쉐 거친 최고 베테랑
음양 조화 등 한국적 디자인 적극 반영
2세대 제네시스 '네오룬' 고급화에 초점
소상공인 차세대 포터 디자인도 공들여

이상엽 현대자동차 현대제네시스글로벌디자인담당은 미국 출장을 가면 꼭 짬을 내 코스트코 주차장을 찾는다. 세계 곳곳에서 온 각양각색의 자동차 수천 대를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다. 차 디자인만 보는 게 아니다. 미국 가정주부가 어떻게 짐을 들어 트렁크에 넣는지, 상인이 어떤 자세로 픽업트럭을 타고 내리는지를 세심히 본다. 한국에선 수첩 하나를 들고 시골 오일장이나 논밭을 종종 찾아 1t 트럭 포터 쓰임새를 골똘히 지켜본다. 에어컨 빵빵한 집무실에서 떠오르는 영감에 따라 붓끝으로 디자인을 완성할 것만 같은 현대차·제네시스 최고디자인 총괄자가 틈만 나면 '체험 삶의 현장'을 찾는 의외의 모습이다.

지난 12일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이 담당은 디자인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대변하는 한 단어로 '절박함'을 꼽았다. 고객이 어떻게 자동차를 쓰고 타는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좋은 디자인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담당은 제네시스 G90 뒷좌석에 달린 거울을 예로 들었다. 그는 "최근 한 여성 고객이 벤츠 마이바흐를 사려다가 뒷자리 거울로 화장을 편하게 하고 싶다는 이유로 제네시스 G90을 구매한 일이 있었다"며 "현대차가 고객 입장에서 얼마나 절박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 담당은 지난 26년간 글로벌 4개 완성차 그룹의 15개 브랜드에서 자동차를 디자인한 베테랑이다. 벤틀리, 페라리, 포르쉐 등 내로라하는 슈퍼 브랜드에서 눈에 띄는 이력을 쌓아온 그다. 그의 입에서 인터뷰 내내 가장 자주 나온 단어는 고객과 절박함 그리고 도전 정신이었다.

이 담당은 "현대차는 남성 중심이 될 수 있는 차에 뒷자리 거울과 같은 섬세함을 입히는 것은 물론 작은 버튼 하나를 눌렀을 때 손에 닿는 느낌까지 챙긴다"고 말했다.

집요함과 절박함이 현대차·제네시스가 세계 시장에서 누적 1억대 판매를 목전에 둘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이 담당은 제네시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선 경쟁 차가 해줄 수 없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담당은 "엄격히 말하면 제네시스는 아직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있든 없든 티가 안 나며, 갈 길이 멀다"면서 "벤츠·BMW가 줄 수 없는 걸 제공해야 하고 절박함으로 디자인의 깊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출범 8년 차인 제네시스가 앞으로 중요한 도전의 시기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제네시스는 2016년부터 8년간 첫 1세대로 분류되는 6대(GV60, G70·GV70 , G80·GV80, G90)의 제품군을 완성했다. 벤츠나 BMW에서 수십 년에 걸쳐 구성한 라인업을 10년도 안 돼 완성한 것이다. 제네시스는 앞으로 프리미엄과 럭셔리를 아울러야 하는 2세대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벤틀리가 표방하는 럭셔리 브랜드로까지 제네시스를 확장시켜야 하는 것이 과제다. 제네세스 2세대를 여는 첫 차는 콘셉트카로 공개돼 'GV90'(가칭)으로 불리는 제네시스 네오룬이다. 이 담당은 제네시스가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본원의 미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샤넬의 프랑스, 버버리의 영국, 페라리의 이탈리아 등 모든 럭셔리 브랜드는 시작점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담당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두 줄 라인과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은 네오룬 모두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을 강조한 것"이라며 "제네시스는 가장 절제된 디자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은 '고객과의 관계'라고도 했다. 진정한 자동차의 가치는 10년 이상 고객이 직접 몰며 만드는 인생의 서사, 도시에서 잘 어우러지는 조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1t 트럭 포터 이야길 꺼냈다. 현대차는 약 40년 만에 포터의 풀체인지를 준비 중이다. 포터라는 이름은 사라지며 포터의 명맥을 잇는, 소상공인을 위한 목적기반차량(PBV)이 몇 년 내 등장한다.

이 담당은 "미국의 픽업트럭, 영국 의 2층 버스,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는 포르쉐 911처럼 자동차 디자인은 도시 풍경과 서사를 그리는 작업"이라며 "한국인 중 포터와 연이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포터는 대한민국의 풍경을 만든 차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포터의 명맥을 잇는 소상공인을 위한 PBV를 디자인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PBV부터 럭셔리 플래그십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고객 중심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디자이너는 절대 자만심에 빠지면 안 된다는 점"이라며 "회사 내부에서 글로벌 3위를 언급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린 앞으로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과의 활발한 소통도 강조했다. 현대차는 전 세계에 디자인 센터 12곳을 운영하는데 각 센터장과 시간을 쪼개 토론한다고 했다. 이 담당은 "아침엔 미국과, 일과 시간에는 한국·중국·일본, 점심에는 인도, 오후에는 유럽과 소통한다"며 "언택트로 지구를 한 바퀴를 돌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년 후면 30년을 채우는 그의 자동차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차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절박하게 고객을 이해하며 만드는 '지금의 (현대차·제네시스) 차'가 내겐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상엽 글로벌디자인 총괄(부사장) △1969년 서울 출생 △1988년 우신고 졸업 △1994년 홍익대 조소과 졸업 △1999년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CCD) 운송디자인학 졸업 △1999년 GM 입사 △2009년 폭스바겐그룹(미국) 수석 디자이너 △2012년 벤틀리 디자인 총괄 △2016년 현대 제네시스 스타일링 담당 △2019년 현대제네시스 글로벌디자인담당 전무 △2022년 현대제네시스 글로벌디자인담당 부사장

[화성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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