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내 코인거래소 자금세탁에 무방비
中선 4040억 자금 세탁 기도
내부통제시스템 제역할 못해
韓 불법자금 세탁 온상 우려
국내 2위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서 불특정 다수의 외국인이 보유한 가상자산이 대거 거래된 정황이 발견돼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빗썸의 '자금세탁방지' 관련 내부통제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가 불분명한 자산이 모두 '정상거래'로 처리돼 다시 빠져나갔다.
전문가들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의 미비점을 고려하면, 불법 자금 세탁 역시 어렵지 않게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인(가상자산) 거래가 세계적으로 활발한 한국이 불법 해외자금의 세탁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빗썸에 상장된 신규 코인 '어베일'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거래가 발생했다. 국내 투자자 A씨가 SNS를 통해 외국인으로부터 어베일을 전송받은 뒤, 빗썸에서 거래를 통해 시세차익을 남겨 이를 다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현재 당국은 외국인의 국내 원화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당시 A씨가 거래한 어베일은 124만1850개로 알려졌다. 상장 첫날 빗썸에서 유통된 어베일 물량의 80% 수준이다.
같은날 해외 거래소에 상장된 어베일이 현재 가격과 비슷한 200원대에 거래된 것과 달리, 빗썸에서는 3500원까지 올랐다. 독점에 가까운 보유량으로 가격을 빠르게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빗썸은 이 거래를 모두 정상거래로 처리했다. 이에 대해 빗썸 측은 "다른 거래소와 마찬가지로 가상자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공정거래 행위나 이상거래 감시에 대해 충실히 이행하고 있고, 이번 건도 다르지 않다"며 "어베일 관련 내용은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금융당국 관계자 역시 "빗썸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해 현재 답변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거래의 경우 가상자산을 팔아 다시 동일한 가상자산으로 가져간 만큼 자금세탁 가능성이 낮을 수 있지만, 동일한 수법으로 불법 가상자산을 국내 거래소에 유통시켜 현금이나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다른 가상자산으로 바꿔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개인이 과도하게 많은 물량을 가지고 시장에 들어올 경우, 신원확인과 출처 등을 소명해야 거래를 할 수 있다"며 "아무런 문제 없이 물량을 시장에 유통시키고, 다시 더 많은 코인을 사서 돌아간 것을 빗썸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거나,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도 불법재산이나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등이 의심될 경우 이용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즉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특히 고객이 실제 소유자인지 여부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거래 목적과 자금 출처를 확인하고 거래 자체를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빗썸은 A씨가 빗썸에서 '익명의 투자자'로부터 받은 어베일을 고점에 판매하고, 저점에 다시 사들여 나갈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글로벌 거래소와의 확연한 시세 차이, 비정상적인 유통 물량 모두 이상거래 시스템에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이상거래 방지시스템'도 무용지물이었다. 한국은 코인 거래가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활발한 국가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해외 불법 자금의 세탁지로 대두하고 있다.
올들어 중국 지린성 공안국이 4040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한국으로 송금해 자금을 세탁하려 한 6명을 체포한 적도 있다. FIU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 자금세탁 의심거래는 1만6076건에 달했다. 전년 대비 48.8% 급증한 것이다.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과 시행령, 업무규정에 신원 확인과 거래제한 등의 요건과 방식이 규정돼 있지만 이번 사안에서는 하나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일반 금융상품보다 자금의 출처 확인이 어려운 가상자산 특성상 가상자산 사업자가 더 엄격한 자금세탁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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