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는 왜 책 표지를 서울 'DDP'로 하려 했을까

전혼잎 2024. 8. 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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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 구단 리에
AI 문장 활용으로 전 세계서 이목 끌기도
알맹이 없는 언어들 속 소통 부재 다뤄
일본의 구단 리에. ©SHINCHOSHA 문학동네 제공

일본 소설가 구단 리에의 소설 '도쿄도 동정탑'의 202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 소식은 신년 벽두의 전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수상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작가가 "작품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만든 문장을 사용했다"고 밝히면서다. '문학의 종말'을 운운하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소동의 규모가 무색하게 이는 곧 잠잠해졌다. 정작 소설에서는 등장인물과 AI의 대화에 쓰인 것이 전부라는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구단 작가는 한국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이를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며 "어떤 부분에 AI를 활용했는지 답변할 시간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관심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통의 오류에서 빚어진 이 논란은 그의 작품이 닿으려는 주제 자체다.


말이 독백이 된 사회 그려 내

도쿄도 동정탑·구단 리에 지음·김영주 번역·문학동네 발행·184쪽·1만5,000원

소설 '도쿄도 동정탑'은 "언어를 무상으로 훔치는 치명적인 문맹"인 AI를 비롯해 그럴듯하지만, 알맹이 없는 언어의 거품 속에서의 '소통'을 다룬다. "저마다 이기적인 감성으로 말을 남용하고 날조하고 배제한, 그 당연한 귀결로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현시대의 초상이다.

제목이자 소설의 배경인 심퍼시 타워 도쿄, 즉 도쿄도 동정탑도 마찬가지다. 이는 한 사회학자가 범죄자에게는 처벌 아닌 동정이 필요하다면서 내놓은 '호모 미세라빌리스'(라틴어로 '불쌍한 사람')라는 단어에 따른 공간이다. 일본 정부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범죄자에게 안락한 공간을 마련해 주려 도쿄 한복판에 71층짜리 탑을 짓기로 한다. 설계자인 건축가 마키나 사라는 심퍼시 도쿄 타워라는 이름이 내키지 않는다. 노숙자를 홈리스, 성적 소수자를 섹슈얼 마이너리티로 바꿔 칭하면 "원만하게 해결되는" 듯 보이지만 정작 기의(記意)는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구단 작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눈앞의 상대가 아닌 손안의 작은 디지털 화면만을 향하고 있기에" 모두의 말이 소통이 아닌 독백이 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소통의 가능성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다른 처지에 있는 타인과의 소통은 쉽지 않고, 그 과정에서 고통이나 불쾌함을 피할 수 없다"면서도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타인을 알아가고,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큰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DDP에 가고 싶어"

지난 3월 개관 10년을 맞은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모습. 연합뉴스

소설에서 마키나는 탑의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설계에 나선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신국립경기장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 디자인을 위해서였다. 다만 소설 바깥의 현실 속 일본에서 하디드의 경기장은 지어지지 못했다. 건설비와 공사 기간 등을 놓고 논란이 일어 무산된 탓이다.

구단 작가가 도쿄도 동정탑의 한국 출간에 맞춰 엑스(X·옛 트위터)에 "책이 잘 팔리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 가고 싶다"는 문장을 남긴 건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하디드의 DDP 설계안을 놓고 비슷한 진통이 있었지만, 수정을 거쳐 실현됐다. 그는 "사실 DDP 앞에 설치된 사람 조각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만큼 책 표지에 꼭 사용하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DDP 사진을 볼 때마다 무산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긴다"면서 "같은 아시아 국가인데도 도쿄에서는 실현되지 않은 하디드의 건축이 왜 서울에는 세워졌는지도 궁금하다"고 전했다.

'도쿄도 동정탑'은 한국에 소개되는 그의 첫 작품이다. 한국인 독자에게 어떤 작가로 다가가기를 바라는지 묻자 구단 작가는 "제 소설은 일본에서도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복잡한 현실세계를 복잡한 그대로 그려 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덧붙였다. "어떤 이야기였는지를 이해받기보다, 이 작품이 독자분들의 이야기나 인생과 연결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작가로서의 기쁨입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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