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공포’가 ‘전기차 테러’로까지 번지는 사회···대안은 없나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 공포’가 확산하면서 사회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 차주’와 ‘내연기관 차 차주’ 간 설전과 함께 주차장 내 전기차 입차를 막거나 전기차에 대한 기물파손 범죄까지 횡행하며 상황이 험악해지는 분위기다. 전기차 차주들은 “환경을 위해 사라고 권할 때는 언제고 불이익을 주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기차 위험 가능성에는 잘 대비하되 차주의 권익은 보호하며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를 시작으로 전기차 공포가 커지고 있다. 해당 사고는 부상자만 23명, 차량은 140여대를 파손시켰다. 480가구 800여명이 대피하며 ‘전기차 사고 이재민’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16일에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서 도로변에 주차 중이던 테슬라 전기차에서 불이 나 4시간여 만에 진압되기도 했다.
전기차가 언제 어디서 불타버릴 수 있다는 공포는 서로에 대한 의심과 과도한 조치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리사무소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입차를 아예 금지했다. 서울시도 공동주택의 지하 주차장에 충전율이 90% 이하인 전기차만 주차를 허용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전기차 발생 화재 대부분이 충전율 90% 이상의 경우에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전기차의 위험성을 놓고 일부 시민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전기차 비율이 늘면 늘수록 사고는 더 늘어날 것” “전기차 화재는 진압이 더 어려워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식이다. 전기차 차주들까지 나서서 “보통 전기차들은 완전 충전량이 95%를 넘지 않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충전율 90% 제한은 탁상행정이다” “통계상으로만 보면 내연기관 차 사고로 죽은 사람이 더 많지 않냐” 등으로 맞받으며 논란은 가열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를 파손시키거나 오염시키는 등의 ‘전기차 테러’로 볼 수 있는 사건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는 최근 전기차의 사이드 미러를 파손한 사례, 의도적으로 전기차에 흠집을 내거나 침을 뱉은 사례 등이 잇따라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최근 전기차 공포증이 심해져 테러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테러 당할까봐 무서워서 블랙박스 감시모드를 요즘 항상 켜놓는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전기차 차주들은 억울해하며 반발하고 있다. 2년 전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한 박모씨(39)는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는 전기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차장 내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문제도 있지 않았냐”며 “전기차를 주차장에서 내보내면 안전해지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입차를 막는 것은 입주민의 공용 부대시설 이용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경고 차원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내용증명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전기차를 3년째 몰고 있는 임모씨(40)는 “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차 많이 사라고 당국에서 권장할 때는 언제고, 전기차 회사나 기계 탓이 아니라 사람 탓을 하며 배척하는 건 억울하다”고 말했다.
갈등이 일파만파 커지는 것과 관련해 전기차 배터리의 위험성에는 철저히 대비하되 전기차 차주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열 폭주가 발생할 경우 초기에 제어와 대피가 어려운 만큼 전기차가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가 보조금을 주며 전기차 구매를 독려해 온 만큼 전기차 차주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보다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하 주차장 입구와 가까운 곳에 배치해 위급할 때 소방대원이 쉽게 접근하게 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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