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교제폭력 책임 물타기? ‘정부 회의록’ 없거나 대충 만들거나

김원진 기자 2024. 8. 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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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회의록 없다” 반복
여가부는 “회의 결과보고 자료도 회의록”
위원회·TF는 들러리, 윗선은 ‘책임 회피’ 용이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의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의대 증원, 교제 폭력 등 주요 현안을 다루는 정부 부처가 정책 결정과 관련한 회의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확인돼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공공기록물법)은 주요 정책을 다룬 위원회의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하지만 각 부처는 “주요 회의가 아니다”라거나 “약식 정리도 회의록”이라는 논리로 법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18일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는 의대 증원 등 주요 정책 현안을 다루는 위원회나 태스크포스(TF)의 회의록을 남기지 않거나 참석자의 발언이 담긴 형태의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기준 통합돌봄추진단, 장애인자립추진단 등 22개 TF를 운영했는데 국회에 “22개 TF 회의록은 없다”고 보고했다.

교육부는 내년도 의대 증원분을 배분하는 대학별 의대 정원배정위원회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입장을 지난 5월부터 고수하고 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16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배정심사위 회의 (참고)자료는 파기했고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회의 결과를 회차별로 정리해 회의 결과 보고서로 정리한 자료가 있다”고 했다.

공공기록물법 17조는 주요 정책 또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회의의 경우 회의록, 속기록 또는 녹음기록을 작성하도록 한다. 교육부는 정원배정위가 ‘주요 회의가 아니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의대 증원 규모는 복지부에서 정했고, 교육부의 정원배정위는 주요 정책 결정이 아닌 보조적 역할에 그쳤다는 취지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배정위는 법정기구가 아니고 장관의 자문을 위한 임의 기구”라고 했다.

정원배정위는 올해 3월15일 첫 회의를 연 뒤 닷새만인 3월20일 32개 대학의 의대 정원 배분을 완료해 발표했다. 회의는 세 차례 진행됐다. 의료계 측 대리인단은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 등을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작성한 2024년 기록물관리 지침. | 행정안전부 제공

여가부도 장관이 주재하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 회의록 대신 ‘개최 결과 보고’ 자료만 공개하고 있다. 위원만 28명인 여폭방지위는 여성폭력방지 정책, 제도개선, 사업 분석 등 여성 정책 전반을 다룬다.

이날까지 정보공개청구, 국회 의원실을 통해 2020년부터 올해까지 열린 여폭방지위 회의록 공개를 요청했지만 여가부는 개최 결과 보고 자료만 제출했다. 결과 보고자료만 봐서는 각 참석자가 어떤 의견을 피력하고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여가부의 개최 결과 보고 자료에는 심의 안건과 ‘스토킹 사각지대 입법 공백 보완 필요’ ‘불법촬영물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성적 괴롭힘과 언어적인 성폭력도 지원받을 수 있도로 검토 필요’ 정도의 내용만 주요 의견에 담겼다. 여폭방지위 개최시 여가부가 내는 보도자료와 거의 같은 내용이다.

여가부는 “회의 일시, 참여 인원, 주요 안건 등을 두루 담아 정리한 것도 회의록”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2024년 기록물관리 지침’과 배치된다. 국가기록원 기록물관리 지침에서 회의록에는 발언요지와 결정사항, 표결내용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발언요지에는 안건별 발언자 성명과 발언자의 주요 발언내용을 담게 했다.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울산은 비공개) 중 지방여폭방지위 대면회의를 개최한 곳에선 대부분 위원들의 발언 내용을 담은 회의록을 공개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정부의 회의록 부실 작성 및 비공개 관행이 정책 불신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위원회와 TF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명분쌓기용에 그치기 쉽다는 것이다. 정책 과정의 불투명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자의 책임을 줄이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정부가 회의록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수록 형식적 회의였다는 의구심을 키우게 한다”며 “공무원은 원래 자기 보호를 위해 회의록을 남기려 하는데, 윗선의 책임을 덜기 위해 회의록 부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 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 후 8개월···타격 입은 성폭력 상담소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8100800021#c2b


☞ 의대 정원 배정은 ‘덜 중요한’ 과정이라 “회의록 없다”는 교육부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405081649001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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