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강의 속삭이듯 설명...교수님이 ‘수면 유도 영상’ 찍는 중입니다

김보경 기자 2024. 8. 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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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지식 속삭이고, 애장품 두드리자 학생들 환호

“아직 안 자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빨리 자길 바랍니다.”

지난 13일 오후 2시, 숨소리조차 내면 안될 것처럼 조용한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안 스튜디오에서 서검교(48) 숙대 수학과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ASMR’ 영상을 촬영했다. 콘덴서 마이크 앞에 앉은 서 교수는 비눗방울을 불며 기하학에 대해 설명한 후, 애장품인 검은색 클래식 기타를 꺼내 기타 몸통 두드리고 현을 퉁겼다. 교수가 황금비율, 기하평균 등 음계 속에 숨은 수학 개념에 대해 속삭이며 설명하는 동안, 촬영하는 학생 4명은 모두 함께 숨죽이고 녹음 현장을 지켜봤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반복적인 작은 소리를 들려주며 청각적 쾌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음성 녹음 콘텐츠로 주로 수면 유도 영상으로 활용된다. 서 교수는 긴 머리를 고정했던 머리핀을 풀어 손톱으로 두드리는 소리를 내고, “잘자요, 눈송이들(숙명여대 학생 애칭)”이라고 속삭이며 무한궤도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를 부르기도 했다. 약 1시간 반에 걸쳐 영상 촬영을 마친 서 교수는 “수업 시간에는 조는 학생을 깨우려고 그 학생 옆으로 가서 강의 내용을 읊기도 하는데, 오늘은 학생들을 재우라고 하니 느낌이 색다르다”고 했다.

13일 오후 2시쯤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안 스튜디오, 서검교 숙대 수학과 교수가 기타를 치며 고(故) 신해철 씨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속삭여 부르고 있는 가운데, 녹음을 담당한 학생이 '수면유도영상(ASMR)'에 큰 소리나 잡음이 들어갈까 봐 촬영 중인 교수를 초조하게 응시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숙대는 지난달 16일 권우성 화공생명공학부 교수가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 연구인 ‘양자점’에 대해 속삭이며 설명하는 “교수님의 ASMR ‘양자점 이야기’”라는 영상을 게시했다. 이 영상은 3주 만에 조회수 20만회를 기록했다. 영상 하단 댓글에는 “숙명여대 아니고 숙면여대” “교수님이 출연하시니 잠이 훨씬 잘 오는 것 같다”는 평이 달렸다.

숙대에 따르면 이런 영상은 코로나 이후 학생과 교수가 서로 인간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심리가 커지면서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영상을 촬영한 서검교 교수는 “코로나 이후로 교수와 학생이 친분을 쌓거나 학생이 교수에게 직접 다가올 기회도 많이 사라져서 아쉬웠다”면서 “여러 교수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학생들이 전공 지식과 학과 생활을 비롯한 대학 생활에 전반에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했다.

영상에 출연한 한 교수는 영상을 매개로 고등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다. 지난 7일 ‘교수 ASMR’ 두번째 영상에 등장해 회계원리 책 표지를 두드리고 칼림바를 연주한 오명전 숙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 고등학생이 ‘영상을 보고 용기 내서 연락했다’면서 진로 관련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오 교수는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땐 출연이 망설여졌는데,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학생들과의 심리적 거리감이 많이 좁혀졌다”고 했다.

성균관대도 지난달 18일 “성균관대 교수님이 말아주는 탭핑&토킹 ASMR”이라는 영상을 게시해 4일 만에 조회수 2만회를 기록했다. 진빛남 예술대학 교수와 민무홍 학부대학 교수가 텀블러나 야구점퍼 등 학교 브랜드 상품을 쓰다듬거나 두드리고, 교수 본인의 강의평가를 조용히 읽거나 학생들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동국대는 교수 대신 불교학과에 재학 중인 스님 학생이 등장하는 1~2분 분량의 ‘모닝붓다’라는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는 “학교 구성원이자 학교의 정체성과 관련된 인물이 직접 등장해 몰입감과 학교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려 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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