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지수 “AI 시대에도 최고의 창의성은 인간에게서 나와”
AI와 협업한 곡 세계초연
인공지능(AI)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예술 분야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문학, 미술, 영상이 속속 등장했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현대음악 연주단체 TIMF앙상블이 세계 초연하는 ‘코드와 코드’(Code and Chord in Co-Creation)도 작곡에 AI를 활용한 작품이다.
AI와 이 곡을 ‘공동 창작’한 이지수(서울대 음대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고 직접 체험한 세대”라면서도 “기술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라는 공연 제목을 내건 TIMF앙상블은 처음부터 이지수에게 ‘AI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이지수는 전통적인 실내악 악기에 하프시코드를 추가한 악기 구성을 선보였다. 피아노의 전신인 고악기 하프시코드가 가진 “금속성의 차갑고 기계적인 소리”가 AI 활용 곡에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러 AI 작곡 프로그램을 검토한 결과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적절한 결과물을 보여준 AIVA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AIVA의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어서, 이지수가 많은 부분을 직접 다듬었다.
이지수는 음악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AI가 창출한 결과물을 봤을 때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라 마치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인간이나 외계 생명체가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니 이제는 AI를 하나의 수준 높은 기계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그 기술을 직업으로 갖고 있던 사람들은 기계에 대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기술을 활용해 더 생산적인 일에 집중함으로써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AI는 기존 기술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AI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인간이 가진 많은 기술을 대체할 수 있어서 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뛰어난 두뇌를 믿습니다. 위협적인 AI를 잘 통제한다면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고차원적인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AI 작곡 프로그램이 인간 창작자를 대체할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대중음악 산업에서는 수많은 곡 중 극히 일부의 히트곡이 대부분의 인기를 차지한다. 대중이 최상위권의 창의적 곡들만 선호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AI를 이용해 수준 높은 작곡을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수준 높은 곡이 넘쳐나고, 결과적으로 대중의 기대는 더욱 높아지며, 그중 가장 뛰어난 곡만 선택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첨가된 곡들만 살아남을 것이기에, 창작의 세계에서 인간의 독창성과 창의성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지수는 AI가 발휘하는 창의적인 순간이란 “이미 범용화된 부분에 해당”한다고 봤다. 기존 예술의 관습을 벗어나는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에게 AI 활용 작곡을 가르치거나 권유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도구라는 것은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사용해야 한다”며 “멋진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100% 아날로그적일 수도, 디지털적일 수도, 그 둘을 적절하게 혼합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지수는 2003년 영화 <올드보이>를 시작으로 <건축학개론> <욘더> 등 30편 이상의 장편영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음악 작업에 참여해왔다. 그는 “대중예술에서는 시간과 경제 논리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짧은 시간 안에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AI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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