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울뿐인 ‘위조방지 QR’ 특허, 정부는 14년째 강요 중
실제론 위조 원천 차단 불가능…특허업체도 환경부도 “QR은 위조방지 수단 아니다” 인정
(시사저널=공성윤·강윤서 기자)
전국 종량제 봉투의 위조방지 수단인 QR코드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봉투 제작업체의 QR코드 특허도 사실상 효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특허 등으로 입증된 위조방지 기술을 사용하라'는 정부의 봉투 제작 방침도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 유통을 막겠다는 미명하에 10여 년째 보여주기식 행정을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시사저널은 7월29~30일 서울시 25개 자치구별로 판매점 두 곳씩 총 50곳에서 종량제 봉투를 구입해 위조방지 수단이라는 QR코드의 활용 실태를 조명한 바 있다(☞시사저널 8월5일자 "세금 삼키는 '쓰레기 게이트' 짝퉁 봉투에 보안도, 국고도 뚫렸다" 기사 참조). 조사 결과 25개 자치구에 봉투를 납품하는 제조사는 총 7곳이었다.
서울시 봉투 제조사 7곳 중 4곳만 특허 보유
전국 지자체는 환경부의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 시행지침'에 따라 종량제 봉투를 제작·관리해야 한다. 해당 지침은 2010년 개정된 이후 지금까지 봉투에 위조방지 기술을 쓸 것을 강권하고 있다. 또 그 기술에 관해 "객관적으로 입증된 기술(특허 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적시해 놓았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QR코드의 위조방지 기능을 뒷받침하는 특허나 그에 준하는 기술을 보유한 봉투 제작업체와 계약을 맺게 돼있다. 혹은 보안업체와 QR코드 제작 계약을 맺고 봉투 제작업체에 기술 지원을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봉투 납품 제조사 7곳 중 위조방지 QR코드 관련 특허를 보유한 곳이 어디인지 살펴봤다. A업체와 B업체가 각각 2014년, 2018년에 특허를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C·D업체는 봉투 제조법 관련 특허를 갖고 있으나 QR코드에 국한된 내용은 아니었다. E업체 등 나머지 3곳은 특허가 없거나 QR코드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A·B업체는 QR코드를 스캔했을 때 뜨는 입력창에 봉투 겉면의 식별코드를 써넣으면 정품 여부를 알려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중 B업체는 동일 식별코드를 3회 이상 입력하면 '위조의심 신고'를 할 수 있는 기능을 더했다. 특허 공고문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위조를 원천 차단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QR코드와 식별코드를 함께 베껴서 가짜 봉투에 인쇄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QR코드는 어느 봉투나 같기 때문에, 봉투마다 다른 고유의 식별코드만 따로 복사해도 된다. 다수의 식별코드를 복사한 후 무작위로 섞어 인쇄하면 식별코드 중복을 피할 수도 있다.
QR코드 복제는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기자도 즉석에서 할 수 있었다. QR코드 자체를 사진 찍어 프린트한 후 스캔해 보니 똑같은 주소로 접속됐다. 컴퓨터나 다른 사람 휴대폰으로 전달한 후 스캔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QR코드를 손으로 직접 그려도 인식된다는 영상이 다수 올라와 있다. 경기도의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QR코드는 절대 위조방지 수단으로 쓸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특허출원 업체마저 위조방지 기능의 미흡함을 인정했다. A업체는 특허 심사 과정에서 특허청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원본과) 똑같이 복제한 QR코드를 스마트폰 또는 스캐너 등으로 읽어 들이면 해당 QR코드를 정품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쓰레기 봉투의 정품 여부 판별이 불가능한 문제점이 있다"고 시인했다.
특허청은 특허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QR코드의 위조방지 기능을 입증하는 특허는 이미 상당수 출원돼 있다"며 "위조방지용 QR코드 특허도 신규성, 진보성, 실용성 등 요건을 충족했기에 승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특허의 기술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이상, 그걸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됐다고 해서 특허 자체를 무효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위조방지 특허를 받아 봉투를 만들어도 불법 유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환경부 "미흡함 인정…지침 개정 필요"
그럼에도 제조업체들은 정부 지침과 현실적 이유로 특허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C업체 직원은 "QR코드가 위조방지 역할을 못 한다는 걸 알지만 '구매자가 위조 여부를 쉽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환경부 지침상 QR코드 외에는 딱히 대안이 없다"고 했다. 이어 "QR코드를 다른 시스템과 접목해 보안성을 강화할 수 있는 특허를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B업체 실장은 "수천만원을 들여 특허를 출원했고 특허를 이행하는 데도 계속 비용이 들어간다"며 "봉투 제조업체 대부분이 규모가 영세해 출혈이 크겠지만 봉투 제작을 수주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특허를 둘러싼 관계 당국의 줏대 없는 탁상행정에 비판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D업체 임원은 "QR코드가 위조방지와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건 정부도 알고 지자체도 아는데 관련 기술을 강요하고 있다"며 "이 와중에 일부 보안업체가 QR코드 기능을 홍보하니 우루루 따라가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D업체는 환경부가 위조방지 기술 사용 지침을 제정(2010년)하기 전인 2007년에 이미 관련 기술을 업계 최초로 특허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종량제 시행지침이 현장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면 개정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QR코드의 위조방지 기능이 미흡하다는 건 우리도 인정한다"면서 "대신 QR코드로 봉투의 제조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지자체가 유통 관리를 위해 쓴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위조 막으려면 유통경로 감시하거나 소매점별 재고 관리해야
그럼 종량제 봉투의 위조는 어떻게 막아야 할까. 서울·경기 자치구 5곳의 봉투 재고량 조작 의혹에 관해 고발한 시민단체 '슬기로운 여성행동'의 윤경숙 대표는 "수산물 이력제와 같이 봉투의 유통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D업체 임원은 "불법 유통업자는 소비자에게 직접 봉투를 팔지 않고 마트나 편의점 등 소매점에 싼값에 넘긴다"며 "소매점별 재고 관리를 지자체에서 하면 불법 유통 루트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봉투 가격 현실화는 전통적 대안이다. 서울시의 경우 봉투값이 2017년부터 7년째 동결돼 있다. E업체 임원은 "제대로 위조를 막으려면 지폐에 적용된 수준의 기술을 써야 할 텐데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봉투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