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1000만원 기부한 청각장애 구두수선공 “아이들은 내가 일하는 이유”
지난 14일 오전 11시쯤 찾은 서울 중구 약수역 1번 출구 인근 구두수선집. 3평 남짓한 컨테이너 내부 벽에 걸린 하얀색 화이트보드에는 영업시간, 가격 안내와 함께 ‘하실 말씀이 있으면 칠판에 적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53년차 베테랑 구두수선공 전용출(64)씨는 선천적으로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앓고 있다. 그는 이같이 화이트보드를 이용해 손님들과 소통한다고 한다.
1971년부터 구두 수선업에 종사한 전씨는 과테말라와 필리핀 국적 해외 아동 두 명에게 매달 소정의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목사로부터 해외 아동을 후원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2010년부터 기부를 시작해 현재까지 누적 기부액만 1000만원이 넘는다. 전씨는 “원래 4만5000원을 기부하다가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굶으며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밥값’으로 3만원씩 더 후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구두수선집 곳곳에는 전씨가 후원 중인 아이들 사진이 걸려있었다. 전씨는 “과테말라 국적의 아이 이름은 ‘마리엘라’인데 목사님에게 통역을 부탁해 여러 번 편지를 보냈다”며 “마리엘라가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중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영상 편지를 보내왔을 때는 너무 뿌듯하고 기뻤다”고 했다. 그는 “사진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 왜 내가 일을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마리엘라 사진을 가리키며 환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평생 구둣일을 하며 번 돈으로 가정을 꾸린 전씨는 현재 아내와 외동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전씨는 “올해로 아들이 32살이 됐다”며 “지금은 운동화 제조 업체에 다니는 번듯한 회사원”이라고 했다. 이어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아내와 아들 모두 ‘좋은 일을 한다'며 기부를 지지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날 한국사회공헌재단은 전씨에게 ‘인성 자격증’을 수여했다. 재단은 자원봉사나 선행, 재능기부 등 사회에 공헌한 바가 큰 개인에 대해 심사를 거쳐 이같은 자격증을 발급한다고 한다. 이날 오전 구두수선집 앞에서 열린 수여식에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전씨는 “많이 부족한 사람인데 이런 관심을 받아도 되는지 걱정스럽다”며 “앞으로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후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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