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려고 보면 항상 없는 사무실 집게…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8. 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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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31] 사무실에 있는 형형색색 집게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더블클립이 없는 자, 진정한 사무직이라 할 수 없다. [사진 출처=Dmitriy, 픽사베이]
명사. 1. 더블클립 2. (美) 바인더 클립(binder clip), 뱅커스 클립, 폴드오버 클립 【예문】더블클립으로 사무실 서류뭉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더블클립(double clip)이다. 영미권에서는 바인더 클립이라고 한다. 당신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서류가 오가는 업무를 한다면 책상 위든 서랍 속이든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철판을 삼각기둥 모양으로 구부려놓은 더블클립의 철사 손잡이는 용도에 따라 펼치거나 눕힐 수 있고 아예 뺄 수도 있다. 또 철사를 굽혀서 만든 전통적인 클립에 비해 더 두꺼운 서류 뭉치를 안정적으로 철할 수 있고, 서류들을 철해놓고 손잡이를 아래로 접어놓으면 다른 집게와 달리 손잡이가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어 사무실에서 많이 쓰인다. 스테이플러와 함께 ‘서류정리업계’(없는 업계다)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루이스 E. 발츨리가 1910년 출원한 더블클립 특허 US1139627A.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똑같이 계승되고 있다. [사진 출처=구글 특허]
더블클립의 현대적인 디자인만 보면 최근의 발명품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노장(老將)이다. 워싱턴DC에 살았던 루이스 E. 발츨리(Louis E. Baltzley, 1985~1946)가 1910년에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다섯 번에 걸쳐 디자인을 수정, 1915년 특허를 취득했다. 그의 조부는 최초의 현대적인 재봉틀을 발명한 일라이어스 하우(1819~1867)이며, 부친 에드윈 발츨리 역시 8건의 특허를 보유한 발명가였다. 애초에 루이스가 바인더 클립을 만들게 된 계기는 발명가이자 작가였던 아버지가 원고를 쉽게 모아놓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효자인데 머리까지 똑똑하다. 부모님을 위해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들 능력이 없다면 전화라도 자주 드리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출처=Dan Cristian Pădureț, unsplash]
그럼 더블클립 말고 ‘그냥 클립’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철사를 굽혀 만드는 페이퍼 클립에 대한 아이디어는 1867년에 최초로 특허가 출원됐고, 지금의 모양을 갖춘 클립은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지만 1870년대부터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립을 논하면서 노르웨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클립을 발명한 사람이 노르웨이인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 황망한 사건이다. ‘노르웨이 민족의 상징’ 클립의 탄생 배경인 이 사건은, 한 마디로 노르웨이판 국뽕(국수주의)이다.

요한 발러가 1901년 미국에서 낸 클립 특허 US675761A. 현재의 클립과 원리는 유사하지만 디테일한 모양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구글 특허]
노르웨이의 요한 발러(Johan Vaaler, 1866~1910)라는 양반은 1899년, 1901년 각각 독일과 미국에서 자신이 창안한 클립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영국의 ‘젬 매뉴팩처링 컴퍼니’에서 클립을 생산하고 있었고, 발러의 클립은 완성도와 기능성이 떨어져 널리 보급되진 못했다. 하지만 당시 노르웨이 국민 사이에서 클립은 ‘노르웨이의 한 천재가 만든 획기적 발명품’(오빤 오슬로스타일!)으로 자리 잡았다. 이 ‘허구의 신화’는 1920년대 노르웨이 특허청의 한 직원이 독일에서 발러의 특허권을 발견하고, 최초의 클립 발명가로 보고서를 쓰면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나치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 괴뢰정부를 세웠을 때 클립은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당시 노르웨이의 국왕이었던 호콘 7세는 나치 독일의 최후통첩을 거부하며 영국에 망명정부를 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전했다. 노르웨이 국민은 그의 항전에 괴뢰정부 하에서의 저항 의지를 이어 나갈 수 있었고, 국왕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의 이니셜 H7이 새겨진 핀을 옷깃에 꽂아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독일 당국이 왕 이름이 새겨진 핀을 금지하고 착용한 사람을 처벌하기 시작하자 대신 택한 것은 클립이었다. 마침 클립의 용도라는 게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을 한데 묶어주는 것이라고 보니 ‘결속’을 의미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호콘 7세를 상징하는 머리글자 H7는 노르웨이 국민들의 저항과 단결의 상징이었다. [사진 출처=공공 저작물·게티이미지]
여담으로 노르웨이 괴뢰정부의 수장은 비드쿤 크비슬링이란 사람으로, 희대의 매국노이다 보니 그의 성(quisling)은 ‘매국노’ ‘부역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로 쓰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완용하다’ 정도로 대체할 수 있을 듯싶지만 넘어가자.

전후 ‘클립의 신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역사책과 백과사전에 세기의 발명에 관한 이야기가 덧대어졌다. 1989년 노르웨이 산드비카의 한 대학 캠퍼스에는 발러를 기리는 7m 높이의 클립 조형물이 세워질 정도였다. 발러의 특허가 아닌 영국 젬社의 클립 모양으로 만든 점이 옥에 티다. 1999년에는 발러의 클립 특허 출원 100주년 기념 우표가 발행됐는데, 여기에서조차 젬 클립 모양이다. 이 정도면 알고 놀리는 수준이다. 발러 본인이 보았다면 ‘내가 만든 게 아니라니까’라며 당황해하지 않았을까.

노르웨이 오슬로 니달렌에 설치된 ‘발러의 클립’ 조형물. 1989년 산드비카에 설치했던 조형물을 이전 설치한 것이다. 정작 이름과는 달리 발러의 클립이 아닌 영국 젬社의 모양으로 된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Roede, 위키피디아]
발러의 페이퍼 클립 특허 100주년 기념 우표. 여기에서조차 영국제 클립 모양이다. 그만 해, 발러씨의 HP는 이미 0이라고. [사진 출처=Roede, 위키피디아]
  • 다음 편 예고 : 운동화 뒤축 부분에 달린 고리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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