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세대 소설, 스크린을 사로잡다
올가을 문학의 언어들이 스크린에 돋을새김된다. 장강명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한국이 싫어서’, 김혜진의 장편소설 원작 ‘딸에 대하여’, 박상영 소설집 중 단편 ‘재희’를 옮긴 ‘대도시의 사랑법’이 각각 오는 28일, 9월4일, 10월2일 관객과 만난다.
고아성이 주연하고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한국이 싫어서’는 ‘헬조선’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20대 직장인이 뉴질랜드로 떠나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올해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이미랑 감독이 영화로 옮긴 ‘딸에 대하여’는 엄마 눈에는 무책임해 보이는 대학강사 딸과 그의 동성연인, 그리고 이들과 한지붕 아래에서 살게 된 엄마를 그린 세 여성의 이야기다.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기대작이다.
10만부 넘는 판매 부수를 올리며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 후보에도 오른 ‘대도시의 사랑법’은 상업영화 틀 안에서 여성 서사를 담아온 이언희 감독이 연출을 맡고, 김고은이 주연을 맡아 영화화됐다.
‘도가니’ ‘두근두근 내 인생’ ‘82년생 김지영’ 등 본격문학으로 분류되던 소설은 간간이 영화로 옮겨져오다 최근 들어 그 수가 부쩍 늘었다. 문학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 등 영상 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젊은 소설가들이 문단의 주류가 되면서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또는 장르문학 사이의 높았던 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영화화된 ‘82년생 김지영’ ‘한국이 싫어서’ ‘딸에 대하여’,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진 ‘보건교사 안은영’ 등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나온 소설들이다. 전 세대 본격문학 작품들에 비해 구체적인 현실을 담고 이야기성이 강한 작품들로 독자들에게 호평받았다.
이시윤 민음사 홍보차장은 “최근 몇년 새 본격소설 분야의 영상화에 대한 판권 문의도 늘고 작품의 스펙트럼도 다양해졌다”며 “드라마로 나온 뒤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던 이혁진 작가의 ‘사랑의 이해’처럼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소설 원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작가들도 영상화에 대해 전보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올 초 영화로 나온 ‘댓글부대’와 ‘한국이 싫어서’를 쓴 장강명 작가나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어 ‘시선으로부터,’의 드라마화가 확정된 정세랑 작가는 신작이 나오면 바로 영상화 판권 구매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영상산업이 주목하는 소설가들이다. 한국에 창작 에스에프(SF) 소설 붐을 일으킨 김초엽 작가와 천선란 작가, 판타지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쓰는 조예은 작가 역시 ‘영상화 3대장’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으며 20만부 이상 팔린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수록작 ‘스펙트럼’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만든 클라이맥스가 제작에 나서고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 연출을 맡아 시나리오가 마무리된 상태다. 제작비 100억원대의 대작 에스에프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영상화에 대해 적극적이고 글쓰기 방식이 자유로워진 작가들은 직접 각본 작업에 뛰어들기도 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각색을 맡은 정세랑 작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본인의 소설 원작이 아닌 오리지널 드라마로 케이(K)팝 아이돌의 이야기인 ‘일루미네이션’(현재 캐스팅 진행 중)을 쓰기도 했다. 천선란 작가도 소설과 드라마 각본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박상영 작가는 10월 말 티빙에서 공개 예정인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각본을 맡았다. 단편 하나만 담은 영화와 달리 소설집 전체의 내용이 드라마에 담길 예정이다. 박 작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린 시절 소설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더 많이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각본 제의가 왔을 때 자연스럽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며 “글을 쓰는 태도는 소설이나 각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소설 문법과 영상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제작진과 회의를 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완성하는 과정이라 소설과는 또 다른 글쓰기의 매력이 있다. 소설 창작에도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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