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도서관·서점형 편의점···‘출판왕국’ 일본, 책 살리기 안간힘
지난해 10월 일본 지바(千葉)현 미도리다이역 인근 주택가에 약 8㎡(2.5평) 규모의 작은 책방 ‘이토나미(いとなみ)서점 2.5’가 문을 열었다. 방 한 칸 책방에 25개 책장이 전부지만 서점 주인은 한 명이 아니다. 책장마다 주인이 다르다. 책장 주인은 선반 하나를 월 1500엔의 대여료를 내고 빌려 직접 고른 책을 꽂아 판매한다. 책장을 빌리는 동안 작은 서점 주인이 되는 셈이다.
공유형 서점·마을 도서관…시민들의 책 살리기
공유형 서점은 책장 주인이 각기 다른 만큼 이름도 제각각이다. 법인이 운영하는 홍보 서적 책장은 대부분 회사명이지만 개인 책장은 ‘괴수 서점’ ‘버려진 책장’ 등 개성있는 이름이 붙는다. 지난달 25일 방문한 이토나미 서점에서 눈에 띈 책장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3년 초판 단편집이 있는 ‘92세의 책장’이었다. 92세의 책장은 92세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손자가 운영한다. 30대 손자는 책장을 소개하면서 “할아버지가 사랑했던 책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책장마다 주인이 다른 책방을 ‘공유형 서점’이라 부른다. 2022년 도쿄에서 생겨나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일본 공유서점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공유형 서점은 올해 5월 기준 62개에 달한다. 공유형 서점은 책을 매개로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자신의 책을 타인과 공유하고 책을 통해 대화와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점 주인도 책장 주인도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토나미 서점 주인 나카무라 치아키는 “인터넷과 다른 매체 확산으로 서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작은 서점이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을 소개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자책·스마트폰에 밀려 문 닫는 서점
출판 왕국 일본이 흔들리고 있다. 종이책이 전자책, 스마트폰, 유튜브 등 다른 매체에 밀려나면서 문 닫는 서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일본 출판문화산업진흥재단 조사 결과 2022년 기준 전국 1741개 기초지자체 중 26.2%인 456개에 서점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출판인프라센터에 따르면 일본 서점 수는 2014년 1만4655개에서 올해 7월 기준 1만747개로 쪼그라들었다.
아예 서점이 없는 지역도 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국 시정촌(市町村·기초지방자치단체)의 26.2%에는 서점이 한 곳도 없다.
종이책이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시민 사회와 기업, 정부가 ‘책 살리기’에 나섰다. 일본 편의점 브랜드 로손은 2021년부터 ‘로손 마을의 서점(LAWSONマチの本屋さん)’이라는 새로훈 형태의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점포 한 켠에 책과 잡지를 파는 ‘서점형 편의점’이다. 서점이 없거나 주변 인구에 비해 서점이 적은 지역에 출점한다.
서점 없는 지역에 ‘서점형 편의점’ 출점
사이타마현 1호점을 시작으로 가나가와현, 시마네현 등 전국 11개(올해 3월 기준)로 늘었다. 로손 마을의 서점 내 서적·잡지 총 매출은 도입 이전과 비교해 평균 20배 가량 늘었다. 점포를 방문하는 여성 고객도 약 2% 증가했다. 지난 4월에는 도야마현 다테야마초에 서점형 편의점이 오픈하면서 9년 만에 서점이 생겼다.
시민 사회는 마을의 도서관(まちライブラリ-)으로 불리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마을 도서관은 개인이 집과 카페, 사무실, 미용실 등에 자발적으로 책장을 설치해 책을 빌려주는 사립 도서관을 뜻한다. 책장을 놓을 공간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공원이나 집 앞 공간을 활용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전국 1005곳
도쿄도 스기나미구에 있는 상자 도서관 ‘하코니와 라이브러리’는 그림책과 여행, 소설책 50여권을 구비했다. 책장 알림장에 도서명과 이름만 적으면 누구나 책을 빌릴 수 있다. 책장 안에 없는 책을 빌리고 싶으면 알림장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주인에게 문의하면 된다.
도쿄도 세타가야구 주택가에 들어선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도 대출 시스템은 다르지 않다. 대출 기간은 1개월로, 집주인인 에이코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마을 사람들이 책을 갖고 와서 북적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시민 호응에 힘입어 마을 도서관은 2008년 오사카에서 처음 개설된 뒤 지난해 3월 전국 1005곳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지자체 공공도서관과 연계하거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올해 3월 경제산업성은 장관 직속 서점 지원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출판 유통망 개선과 점포 운영 관련 디지털 기술 도입 등 지원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바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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