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국민참여재판 만장일치 ‘무죄’ 나왔다면 쉽게 뒤집어선 안 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만장일치 의견을 내 무죄가 선고됐다면 상급심은 이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배심원들의 숙의 과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뒤집는 것은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2011년 평소 알고 지내던 대부업자 B씨에게 “수익성이 아주 좋은 물류사업이 있다”며 8000만원을 송금받았다. A씨는 해당 사업에 대해 “단기적으로 8000만~9000만원을 투자하면 1000만원의 이득금을 줄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20대의 차량을 구매해 1대당 약 400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차량을 구입할 자금을 빌려주면 원금과 수익금 일부를 지급하겠다”고 했으나, 이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A씨는 B씨를 속여 2013년 7월까지 총 31억5900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 측은 B씨로부터 돈을 송금받을 때 투자 목적으로 돈을 빌리겠다고 한 사실이 없고, 수익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는 배심원 7명이 전원일치로 내린 무죄 평결이 채택돼 A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를 종합하면 피해자의 진술 외엔 A씨가 피해자를 속였다는 것을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추가 증거조사를 진행하고 “A씨가 화물트럭을 구입한 후 지입차량 관련 사업을 해서 수익금을 주겠다고 B씨를 속여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만장일치 무죄 평결로 1심이 무죄를 선고한 경우, 항소심에서의 새로운 증거조사 등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의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국민참여재판 평결은)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되고 더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심에서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조사’를 직접 보고 들으면서 심증을 갖게 된 배심원들이 서로의 관점과 의견을 나누며 숙의한 결과 ‘피고인은 무죄’라는 일치된 평결에 이르렀다면, 이는 피고인에 대한 유죄 선고를 주저하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일반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확인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항소심이 충분한 고려 없이 1심 판단을 쉽게 뒤집는다면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은 채 앞서 제시한 법리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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