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마음 보듬는 트롬본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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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있는 작은 연구소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동의 의무는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세미나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이 책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치히로의 성장기이다.
연구소의 아사코네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굴레가 아니면서, 주변도 돕고 이어가는 이들에게도 안식처가 될까? 삶의 무게에 피곤한 독자들과 앞으로 이어질 연재의 향방을 함께 궁금해해도 좋을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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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의 희곡
시골에 있는 작은 연구소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동의 의무는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세미나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문으로 된 원전을 같이 읽는 모임이었는데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온 학자와 학생들이 같이 글을 읽었다. ‘동의수세보원’은 한국 발음으로 읽고 ‘황제내경’은 중국 발음으로 읽었다. 신기한 것은 그 발음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곧잘 따라 읽었다는 것이다. 한자를 읽는 것이 한 뿌리에서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갈라져 다르게 변했고 전혀 다른 입말이 입혀진 텍스트를 읽고 영어로 뜻을 새기면서 서로 나누는 일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전공도 아니고 한자도 겨우 읽는 내게 버거운 세미나였지만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워 즐거웠다.
영국 런던대학교의 하나인 ‘동양·아프리카학교’(SOAS )에서 의학사를 공부하던 학생 아사코를 그 세미나에서 만났다. 지도교수가 시골에 있는 연구소의 소장으로 옮기는 바람에 적은 런던에 두고 몸은 연구소로 와서 연구를 했다. 일본어로 소리 내어 읽는 한자는 중국어와 또 달랐는데, 그는 중국어도 잘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생산된 텍스트는 중국어로 섞어 읽었다. 여러 언어가 번갈아 나오는 그의 세미나는 더 흥미로웠다. 가끔 찾아오던 그의 남자친구는 훤칠한 청년이었는데, 갑자기 아사코 아버지가 운영하는 절에서 스님으로 두어해 일을 하고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실, 런던에서 유학한 젊은 커플이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일본에서 절이 꽤 유망한 비즈니스이고 그것을 물려받는 것이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준다고 듣기는 했다. 놀람은 감추고 축하했다. 그리고 2년 뒤 결혼식에 꼭 가마 약속을 했는데 소식도 끊기고 20년이 지났지만 미안함이 크다.
그러고 보니, 아사코는 피천득의 ‘인연’에도 나온 이름이다. 거기에 나온 유명한 구절,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이 글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사코에 대한 미안함이 컸던 것일까? ‘아사코의 희곡’의 주인공도 아사코다. 아사코는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40대. 다친 마음을 부모님께 기대려 내려왔다. 일도 구해보려는데 임시직 정도만 손에 닿고 여의치는 않다. 그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어릴 때 불던 트롬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롬본을 다시 익히면서, 동네 꼬마였던, 하지만 훌쩍 커버린, 치히로의 피아노에 트롬본 소리를 얹어 연주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
아사코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이 책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치히로의 성장기이다. 치히로는 여관집 아들이었다. 사실은 입양된 아들이었는데, 부모는 가업을 잇기를 바라면서 그를 아들 삼았다. 하지만 피아노에 큰 재능을 보였던 그는 여관을 떠나 음대에 진학하고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고, 여관으로 돌아와서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에 서툴러 힘들고, 하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에 또 힘들다. 연구소의 아사코네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굴레가 아니면서, 주변도 돕고 이어가는 이들에게도 안식처가 될까? 삶의 무게에 피곤한 독자들과 앞으로 이어질 연재의 향방을 함께 궁금해해도 좋을 만화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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