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현의 재난백서] 확률을 뚫고 떨어지는 재난, '낙뢰'

강세현 2024. 8. 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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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서 낙뢰로 순록 323마리 죽어
확률 낮아도 평지나 높은 곳에 있으면 위험
피할 곳 없을 땐 다리 모으고 웅크려야
노르웨이 고원에 쓰러져 있는 순록들 (연합뉴스)


2016년 여름, 노르웨이에서 찍힌 사진이 세계 곳곳의 매스컴에 보도됐습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등산 명소로 꼽히는 하르당에르비다 고원이었고, 사진 속엔 수백 마리의 순록이 쓰러져있었습니다. 정확히 323마리였죠.

순록은 초식 동물이지만 다 자랐을 땐 500kg을 훌쩍 넘깁니다. 커다란 덩치에 무리로 생활하며 서로를 보호하기 때문에 곰 같은 맹수도 쉽게 덤빌 수 없습니다. 그런 순록이 300마리가 죽었다니 의아한 일이죠.

하지만 상대가 자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순록의 목숨을 빼앗은 건 ‘낙뢰’였습니다. 번개는 구름 안에서 전기가 흐르며 매우 밝은 불빛은 만드는 자연 현상입니다. 그리고 번개가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 현상을 낙뢰라고 부릅니다. 떨어질 락(落)에 우레 뢰(雷), 말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는 번개’입니다.

순록들에게 비극이 일어나기 전, 고원에는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낙뢰가 고원을 강타했고 순록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분석했습니다.

야속한 보폭전압
사람도 다리 간격이 넓으면 보폭전압이 발생할 수 있다 (MBN)

도대체 얼마나 낙뢰가 많이 떨어졌길래 삼백 마리가 넘는 순록이 죽은 걸까요? 낙뢰에 맞을 확률은 극히 낮다고 하는데, 낙뢰가 수천 번이라도 발생한 걸까요?

사실 낙뢰가 많이 치지 않아도 순록 수십 혹은 수백 마리가 죽을 수 있습니다.

이유는 바로 순록의 신체 구조 때문입니다. 순록은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가 넓습니다. 이렇게 다리 사이의 간격이 넓으면 각 다리의 전압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전압에 차이가 나면 전류가 흐르기 좋은 상태가 되죠. 쉽게 말해 전류가 몸 안으로 들어오기 쉬워집니다.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높은 고원에 순록 수백 마리가 폭풍우를 견디며 모여 있었습니다. 건장한 성체 순록부터 새끼 순록까지 무리를 지어 비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낙뢰가 땅에 떨어집니다.

안타깝게도 순록의 앞다리와 뒷다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만큼 전압의 차이도 컸습니다. 전류는 순록의 앞다리를 타고 들어가 심장을 관통해 뒷다리를 통해 빠져나갔을 겁니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수십 혹은 수백 마리의 순록들이 쓰러집니다.

이렇게 보폭 때문에 전류가 흘러들어오는 현상을 보폭전압이라고 부릅니다. 보폭전압을 순록에게만 일어나는 비극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낙뢰가 칠 때 오른발과 왼발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전압 차이가 생겨 전류가 신체를 강타할 수 있습니다. 운이 나쁘다면 전류가 심장을 관통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1cm라도 낮춰야
높은 곳에 서 있는 모형에 떨어지는 낙뢰 (한국전기연구원)

그럼 낙뢰가 칠 때 발만 딱 붙이고 있으면 될까요? 더 중요한 건 높이입니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인체 모형 두 개를 세워두고 인공적으로 낙뢰를 발생시켜 어느 쪽으로 떨어지는지 실험했습니다.

금속 물질을 몸에 붙이고 있으면 낙뢰를 맞을 확률이 올라간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속설대로 한쪽 모형엔 금속으로 된 목걸이와 귀걸이를 착용시켰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형엔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금 더 높은 곳에 세워뒀죠.

낙뢰는 두 모형 중에 높은 곳에 서 있는 모형으로 떨어졌습니다. 낙뢰는 구름에서 가까운 곳으로 떨어집니다. 하늘로 치솟은 나무와 땅에 붙어 있는 풀 중엔 나무로, 높은 빌딩과 1층 주택 중에선 빌딩으로,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중에선 큰 사람에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죠.

주문노 한국전기연구원 전기기기연구본부장은 “작은 금속 물질 착용 여부는 낙뢰에 맞을 확률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 높이”라고 설명합니다. 높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낙뢰가 맞을 확률이 커진다는 겁니다. 꼭 신체가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우산이나 낚싯대를 들고 있는 것도 높이를 높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낙뢰에 맞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나무 옆도 위험
2023년 지역별 낙뢰 빈도 (기상청 낙뢰연보)

그럼 낙뢰가 떨어질 때 내 키보다 더 큰 나무 아래에 숨는 건 어떨까요? 사람 대신에 나무가 낙뢰를 맞기 때문에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나무에 떨어진 낙뢰의 전류가 공기 중으로 퍼져 감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에 설치된 피뢰침은 낙뢰에 맞으면 전류가 땅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됩니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죠. 땅으로 흘려보내지 못한 전류가 주변으로 튈 수 있습니다. 주문노 본부장은 “낙뢰가 바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고 측면으로 방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건물 옆이나 나무 밑을 피난처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낙뢰에 맞을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불가능해 보이는 확률을 뚫고 일어나곤 합니다. 2023년 우리나라엔 73,341번의 낙뢰가 발생했고, 그중 한 번은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양양의 설악해변에 낙뢰가 떨어져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죠.

낙뢰가 예보되면 드넓은 평지나 높은 곳에서 활동하는 건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해변이나 초원도 위험하고, 산 정상도 낙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만약 번개가 번쩍이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천둥소리가 들린다면 번개가 가까운 곳에서 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낙뢰의 위험이 큰 거죠. 이때는 곧바로 건물이나 자동차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 만약 당장 몸을 숨길 곳이 없다면 대피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보폭전압이 일어나지 않도록 발을 딱 붙이고 몸을 낮게 웅크려 낙뢰가 지나가길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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