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경영 역량 부족 드러낸 안세영 사태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4. 8. 18. 09:01
[노정태의 뷰파인더] “신발 하나 ‘맞춤’ 원했을 뿐인데…“너만 왜 유난이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옳은 말도 아니다. 저런 통념은 '선진국 선수는 모두 직장 다니면서 운동한다'는 식의 판타지를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지만 이는 그저 환상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 4년에 한 번씩 모여 그 가운데 최강자를 가린다. 게다가 대량 도핑으로 국가 차원의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진 러시아, 대규모 도핑이 적발된 바 있었던 중국처럼 선수에게 약물을 투입해 성적을 내려는 국가들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이 훈련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선진국 선수들은 다들 직장 다니며 운동하면서 금메달을 딴다는,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 "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다. 날짜도 모른다. 난 그냥 수영만 한다"는 미국의 수영 전설 마이클 펠프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펠프스처럼 되고 싶은 수많은 이들이 그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재능이 세상에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화제가 된 튀르키예의 사격 선수 유수프 디케치가 예시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또한 군대에서 사격 훈련을 받았고, 이후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 본인에게 최적화된 루틴으로 꾸준히 훈련한다는 점에서 그가 노력 없는 승리를 거뒀다고 할 수 없다.
선진국이 올림픽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통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 어느 나라든 자국이 엘리트 체육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란다. 특히 올림픽을 개최할 때 그런 기대가 더 커진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던 영국,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국운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던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일본을 주목할 만하다. 2008년 도쿄에 국립 선수촌이라 할 수 있는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가 개설됐다. 향후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장기 포석이었다. 일본 정부는 엘리트 스포츠 경기력 향상을 위해 2013년 이후 100억 엔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 국립 선수촌 이름에 조미료 회사인 '아지노모토'가 붙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민간 대기업에서도 국가적 열망에 부응하는 움직임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엘리트 선수 훈련에 국가 예산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미국의 스포츠 산업이 워낙 고도로 발달한 데다가 기부 문화까지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지, 미국이라는 국가가 올림픽 메달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올림픽 선수가 될 만한 인재들은 일찌감치 대학에서 장학금을 줘가며 전문적‧체계적 훈련을 제공하는데, 그 대학들은 세제 혜택 등 다방면으로 국가 보조를 받는다. 결국 간접적 방식으로 국가가 엘리트 체육을 지원하는 셈이다.
또 미국은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3만7500달러(약 5000만 원)에 달하는 포상금을 지급하며, 연 수입이 100만 달러 이하일 경우 상금 수입에 대한 소득세를 받지 않는다. 여기에 건강보험과 온갖 의료 혜택 등도 뒤따른다. 이렇듯 모든 나라는 각국의 풍토와 문화 속에서 최선을 다해 엘리트 체육을 지원하고 있다.
좋은 행동을 하면 상을 받고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보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제대로 작동한다면 해당 조직은 장기적으로 성공한다. 반대의 경우는 아무리 외부에서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한들 성공은 고사하고 정상 기능을 하기조차 어렵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올림픽 선수단과 대표팀의 운영 과정을 되짚어 보면 어떨까. 양궁, 사격, 펜싱의 성적은 눈부시다. 하지만 사격의 경우 신명주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6일 돌연 사임하면서 선수들이 노력으로 쌓아 올린 업적을 빛바래게 했다. 메달리스트에게 지급돼야 할 포상금의 재원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회장직을 내려놓았으니,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과연 제대로 포상금이 지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좋은 보상 체계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보상 체계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전히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안세영과 배드민턴협회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빠른 발놀림을 필요로 한다. 선수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신발을 원한다. 운동화 메이커는 그 수요에 부응하며 대중적 홍보 효과를 얻기 위해 주목받는 스타 선수와 스폰서십을 체결한다. 단지 광고 모델로 기용할 뿐 아니라, 선수의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제작해 제공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도록 후원한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팀 단위의 스폰서와는 별개로 신발만은 선수들이 개별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신발은 선수의 퍼포먼스와 부상 발생 등 수많은 요소를 좌우하는 핵심 장비이기 때문이다.
● 소속 선수 안세영 평가절하하는 이상한 배드민턴협회
● 국제 스포츠 성적 = 국력 평가 척도
● ‘신화’ 한국 양궁 vs ‘노메달’ 인도 양궁 차이는 ‘경영 능력’
● 좋은 경영? 적절한 보상체계!
● MZ에 “노력 부족” 운운하기 전 기성세대 잘못부터 살펴야
"손흥민, 김연아에 맞춰진 눈높이가 기준이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작심 발언 이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주장에 반박하고자 배드민턴협회 측이 7일 A4 용지 10쪽에 달하는 긴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한 말이다.
이는 퍽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배드민턴협회가 자신들이 담당하는 종목 및 안세영의 업적에 대해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드민턴은 라켓을 사용하는 개인 종목이다. 흡사한 테니스의 사례를 들어보자.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작심 발언 이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주장에 반박하고자 배드민턴협회 측이 7일 A4 용지 10쪽에 달하는 긴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한 말이다.
이는 퍽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배드민턴협회가 자신들이 담당하는 종목 및 안세영의 업적에 대해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드민턴은 라켓을 사용하는 개인 종목이다. 흡사한 테니스의 사례를 들어보자.
4일 세르비아의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가 4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스페인의 떠오르는 신예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코비치는 이른바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사람이다. '그랜드 슬램'을 이미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빠진 퍼즐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조코비치는 압도적 실력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이제 30대 후반의 나이로 언제까지 정상을 지킬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다섯 번째 출전인 이번 올림픽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고, 그는 결국 금메달을 따냈다. 메이저 대회 그랜드 슬램과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합친 '골든 슬램'을 이루고야 말았다.
안세영은 어떨까. 그는 불과 22세의 나이에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림픽에서도 우승했다. 배드민턴이라는 종목이 제공하는 모든 국제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단지 28년 만에 한국에서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선수가 나왔다고만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다. 조코비치, 손흥민, 김연아 등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가 배드민턴에서 또 한 명 탄생한 셈이다.
배드민턴협회의 '손흥민‧김연아 눈높이 발언'이 당혹스러운 이유다. 배드민턴협회는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강자가 나왔다는 것을 함께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그 위업을 평가절하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조코비치는 압도적 실력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이제 30대 후반의 나이로 언제까지 정상을 지킬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다섯 번째 출전인 이번 올림픽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고, 그는 결국 금메달을 따냈다. 메이저 대회 그랜드 슬램과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합친 '골든 슬램'을 이루고야 말았다.
안세영은 어떨까. 그는 불과 22세의 나이에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림픽에서도 우승했다. 배드민턴이라는 종목이 제공하는 모든 국제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단지 28년 만에 한국에서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선수가 나왔다고만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다. 조코비치, 손흥민, 김연아 등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가 배드민턴에서 또 한 명 탄생한 셈이다.
배드민턴협회의 '손흥민‧김연아 눈높이 발언'이 당혹스러운 이유다. 배드민턴협회는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강자가 나왔다는 것을 함께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그 위업을 평가절하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든 나라는 우수한 엘리트 체육 성적 원한다
본격적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한국은 아직 후진국이라서 엘리트 체육에 목을 매고 있는 반면, 선진국은 생활 체육에 기반하고 있으며 국가대표 선수라는 이유로 세금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는 통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옳은 말도 아니다. 저런 통념은 '선진국 선수는 모두 직장 다니면서 운동한다'는 식의 판타지를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지만 이는 그저 환상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 4년에 한 번씩 모여 그 가운데 최강자를 가린다. 게다가 대량 도핑으로 국가 차원의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진 러시아, 대규모 도핑이 적발된 바 있었던 중국처럼 선수에게 약물을 투입해 성적을 내려는 국가들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이 훈련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선진국 선수들은 다들 직장 다니며 운동하면서 금메달을 딴다는,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 "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다. 날짜도 모른다. 난 그냥 수영만 한다"는 미국의 수영 전설 마이클 펠프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펠프스처럼 되고 싶은 수많은 이들이 그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재능이 세상에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화제가 된 튀르키예의 사격 선수 유수프 디케치가 예시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또한 군대에서 사격 훈련을 받았고, 이후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 본인에게 최적화된 루틴으로 꾸준히 훈련한다는 점에서 그가 노력 없는 승리를 거뒀다고 할 수 없다.
선진국이 올림픽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통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 어느 나라든 자국이 엘리트 체육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란다. 특히 올림픽을 개최할 때 그런 기대가 더 커진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던 영국,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국운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던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일본을 주목할 만하다. 2008년 도쿄에 국립 선수촌이라 할 수 있는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가 개설됐다. 향후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장기 포석이었다. 일본 정부는 엘리트 스포츠 경기력 향상을 위해 2013년 이후 100억 엔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 국립 선수촌 이름에 조미료 회사인 '아지노모토'가 붙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민간 대기업에서도 국가적 열망에 부응하는 움직임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엘리트 선수 훈련에 국가 예산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미국의 스포츠 산업이 워낙 고도로 발달한 데다가 기부 문화까지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지, 미국이라는 국가가 올림픽 메달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올림픽 선수가 될 만한 인재들은 일찌감치 대학에서 장학금을 줘가며 전문적‧체계적 훈련을 제공하는데, 그 대학들은 세제 혜택 등 다방면으로 국가 보조를 받는다. 결국 간접적 방식으로 국가가 엘리트 체육을 지원하는 셈이다.
또 미국은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3만7500달러(약 5000만 원)에 달하는 포상금을 지급하며, 연 수입이 100만 달러 이하일 경우 상금 수입에 대한 소득세를 받지 않는다. 여기에 건강보험과 온갖 의료 혜택 등도 뒤따른다. 이렇듯 모든 나라는 각국의 풍토와 문화 속에서 최선을 다해 엘리트 체육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양궁 신화 낳은 '경영'의 힘
왜 모든 나라는 세금까지 써가며 엘리트 스포츠를 지원할까. 답은 간단하다. 국제 스포츠 성적은 그 나라의 국력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할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국민 가운데 극소수가 출전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의 성적이 어떻게 한 나라의 전반적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나라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인구가 많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충분한 인구가 있어야 그 가운데 운동에 재능 있는 인재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스포츠 성적이 오직 인구에 의해서만 좌우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올림픽 1위는 인도, 2위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야 마땅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인구 가운데 재능 있는 이들이 발견되고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직접 돈을 벌어들이는 분야가 아닌 스포츠에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요구된다. 그 모든 요건을 다 갖춘 미국이 올림픽 1위를 놓치지 않는 이유다.
한마디로 스포츠란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으로 경쟁하는 분야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후자다. 물적 자원은 단지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확충되지 않는다. 경영 혹은 관리(management)가 얼마나 잘 되느냐가 관건이다. 주어진 자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되는지에 따라 성적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전 종목 금메달 석권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한 양궁을 떠올려보자. 그 성공 공식은 지금껏 많은 언론을 통해 충분히 거론됐다. 현대차그룹의 체계적‧지속적‧합리적 지원이 수십 년간 이어진 덕분이다.
손꼽히는 재벌이 많은 돈을 썼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이 성과를 폄하할 수는 없다. 문제는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올림픽 본선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돌 정도로 치열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것은 돈이 있고 없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원칙 문제다. 그렇게 나온 결과를 토대로 선수를 믿고 맡기는 것 역시 돈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한국양궁협회의 모범적 협회 운영은 결국 '경영'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한국 양궁의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체육 꿈나무들은 모두 올림픽 금메달을 원한다. 절대적 훈련 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축적되니, 본격적으로 운동선수의 길을 걷기 전 어떤 종목을 택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양궁이 객관적‧합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종목이라는 신뢰는 이때 빛을 발한다. 재능 있는 선수와 부모가 안심하고 해당 종목을 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협회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일관된 운영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건 단지 선수 몇 명과 코치 한두 명의 존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도 양궁의 실패 사례가 이를 생생히 증명한다. 양궁에서 메달을 따고 싶던 인도양궁협회는 한국인인 백웅기 감독을 초빙하여 국가대표팀 지휘를 맡겼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을 맡아 여자 개인전과 여자 단체전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검증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올림픽을 앞두고 백 감독을 돌연 해고했다. 인도양궁협회는 올림픽 경기장과 선수촌 출입에 필요한 AD(Accreditation) 카드조차 백 감독에게 주지 않았으며, 그가 받아야 할 AD 카드는 협회 사무총장과 친분이 있는 물리치료사에게 전달됐다고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의 평정심이 유지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인도는 양궁에서 '노메달'로 올림픽을 마감했다.
인구 14억 명의 인도가 인구 5000만 명의 대한민국을 양궁에서 위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양궁이라는 스포츠에 걸맞은 자질을 지닌 이들을 찾아내고, 키워내고, 경기를 잘 치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 탓이다. 구슬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사람이 있어도 제대로 써야 인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영의 힘이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나라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인구가 많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충분한 인구가 있어야 그 가운데 운동에 재능 있는 인재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스포츠 성적이 오직 인구에 의해서만 좌우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올림픽 1위는 인도, 2위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야 마땅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인구 가운데 재능 있는 이들이 발견되고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직접 돈을 벌어들이는 분야가 아닌 스포츠에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요구된다. 그 모든 요건을 다 갖춘 미국이 올림픽 1위를 놓치지 않는 이유다.
한마디로 스포츠란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으로 경쟁하는 분야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후자다. 물적 자원은 단지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확충되지 않는다. 경영 혹은 관리(management)가 얼마나 잘 되느냐가 관건이다. 주어진 자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되는지에 따라 성적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전 종목 금메달 석권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한 양궁을 떠올려보자. 그 성공 공식은 지금껏 많은 언론을 통해 충분히 거론됐다. 현대차그룹의 체계적‧지속적‧합리적 지원이 수십 년간 이어진 덕분이다.
손꼽히는 재벌이 많은 돈을 썼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이 성과를 폄하할 수는 없다. 문제는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올림픽 본선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돌 정도로 치열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것은 돈이 있고 없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원칙 문제다. 그렇게 나온 결과를 토대로 선수를 믿고 맡기는 것 역시 돈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한국양궁협회의 모범적 협회 운영은 결국 '경영'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한국 양궁의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체육 꿈나무들은 모두 올림픽 금메달을 원한다. 절대적 훈련 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축적되니, 본격적으로 운동선수의 길을 걷기 전 어떤 종목을 택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양궁이 객관적‧합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종목이라는 신뢰는 이때 빛을 발한다. 재능 있는 선수와 부모가 안심하고 해당 종목을 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협회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일관된 운영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건 단지 선수 몇 명과 코치 한두 명의 존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도 양궁의 실패 사례가 이를 생생히 증명한다. 양궁에서 메달을 따고 싶던 인도양궁협회는 한국인인 백웅기 감독을 초빙하여 국가대표팀 지휘를 맡겼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을 맡아 여자 개인전과 여자 단체전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검증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올림픽을 앞두고 백 감독을 돌연 해고했다. 인도양궁협회는 올림픽 경기장과 선수촌 출입에 필요한 AD(Accreditation) 카드조차 백 감독에게 주지 않았으며, 그가 받아야 할 AD 카드는 협회 사무총장과 친분이 있는 물리치료사에게 전달됐다고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의 평정심이 유지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인도는 양궁에서 '노메달'로 올림픽을 마감했다.
인구 14억 명의 인도가 인구 5000만 명의 대한민국을 양궁에서 위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양궁이라는 스포츠에 걸맞은 자질을 지닌 이들을 찾아내고, 키워내고, 경기를 잘 치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 탓이다. 구슬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사람이 있어도 제대로 써야 인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영의 힘이다.
부족한 것은 MZ 에너지 아닌 기성세대 경영 역량
그렇다면 여기서 한층 더 본질적 질문을 던져보자. 좋은 경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경영과 나쁜 경영의 차이를 만드는가. 수많은 경영학자와 사상가들이 달려들어 답을 찾고자 한 문제다. 완벽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할 개념은 있다. '보상 체계'다.
좋은 행동을 하면 상을 받고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보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제대로 작동한다면 해당 조직은 장기적으로 성공한다. 반대의 경우는 아무리 외부에서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한들 성공은 고사하고 정상 기능을 하기조차 어렵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올림픽 선수단과 대표팀의 운영 과정을 되짚어 보면 어떨까. 양궁, 사격, 펜싱의 성적은 눈부시다. 하지만 사격의 경우 신명주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6일 돌연 사임하면서 선수들이 노력으로 쌓아 올린 업적을 빛바래게 했다. 메달리스트에게 지급돼야 할 포상금의 재원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회장직을 내려놓았으니,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과연 제대로 포상금이 지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좋은 보상 체계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보상 체계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전히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안세영과 배드민턴협회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빠른 발놀림을 필요로 한다. 선수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신발을 원한다. 운동화 메이커는 그 수요에 부응하며 대중적 홍보 효과를 얻기 위해 주목받는 스타 선수와 스폰서십을 체결한다. 단지 광고 모델로 기용할 뿐 아니라, 선수의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제작해 제공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도록 후원한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팀 단위의 스폰서와는 별개로 신발만은 선수들이 개별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신발은 선수의 퍼포먼스와 부상 발생 등 수많은 요소를 좌우하는 핵심 장비이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원칙이 대한민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엔 적용되지 않았다. 안세영이 그 점을 지적하자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은 도리어 안세영을 이렇게 나무라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배드민턴연맹이 이용대 선수 등 많은 국제적 선수와 기량 있는 선수들을 배출해냈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컴플레인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선수는 부상을 줄이고 퍼포먼스를 높이며 경제적 보상을 얻고자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신발만큼은 개인 스폰서십을 받아야 한다. 안세영의 그러한 요구를 정면으로 묵살하면서 "너희 선배는 안 그랬는데 왜 너만 유난이냐"는 대응을 하는 모습은, 좋은 보상 체계와 정 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런 모습이 지속된다면 과연 미래가 있을까.
이번 올림픽은 애초 기대보다 성과가 더 좋았다. 양궁은 물론 지금 논란이 되는 안세영의 금메달까지 값진 성과가 빼곡하다. 축구와 야구 같은 인기 종목이 모두 예선 탈락한 상황에서 '팀 코리아'는 매일 밤 뜻밖의 승전보를 전해줬다.
이쯤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이른바 'MZ 세대'를 향해 쏟아진 말들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하지 않으려 한다는, 그저 자기 권리만 요구할 줄 알지 헌신할 줄 모르며, 체격만 커졌지 체력도, 정신력도 부족하다는 그 뻔한 비난과 비아냥들. 이번 올림픽은 그런 시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성과뿐 아니라 나쁜 성과를 놓고 보면 그 차이는 더 또렷해진다. 마치 인도 양궁 대표팀처럼 감독 거취를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한축구협회는 이강인과 정우영 등 화려한 해외파 선수 인력풀을 지닌 채로도 한국을 올림픽 본선에 올려놓지 못했다. 대한민국에 부족했던 것은 청년의 에너지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관리, 경영 역량이 성과를 가른 것이다.
스포츠를 국력의 바로미터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젊은이의 에너지와 창의력을 얼마나 잘 받아내느냐가 어떤 팀의, 어떤 스포츠 종목의, 어떤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테니 말이다. MZ세대는 죄가 없다. 기성세대가 만들고 강요하는, 잘못된 보상 체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배드민턴연맹이 이용대 선수 등 많은 국제적 선수와 기량 있는 선수들을 배출해냈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컴플레인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선수는 부상을 줄이고 퍼포먼스를 높이며 경제적 보상을 얻고자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신발만큼은 개인 스폰서십을 받아야 한다. 안세영의 그러한 요구를 정면으로 묵살하면서 "너희 선배는 안 그랬는데 왜 너만 유난이냐"는 대응을 하는 모습은, 좋은 보상 체계와 정 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런 모습이 지속된다면 과연 미래가 있을까.
이번 올림픽은 애초 기대보다 성과가 더 좋았다. 양궁은 물론 지금 논란이 되는 안세영의 금메달까지 값진 성과가 빼곡하다. 축구와 야구 같은 인기 종목이 모두 예선 탈락한 상황에서 '팀 코리아'는 매일 밤 뜻밖의 승전보를 전해줬다.
이쯤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이른바 'MZ 세대'를 향해 쏟아진 말들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하지 않으려 한다는, 그저 자기 권리만 요구할 줄 알지 헌신할 줄 모르며, 체격만 커졌지 체력도, 정신력도 부족하다는 그 뻔한 비난과 비아냥들. 이번 올림픽은 그런 시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성과뿐 아니라 나쁜 성과를 놓고 보면 그 차이는 더 또렷해진다. 마치 인도 양궁 대표팀처럼 감독 거취를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한축구협회는 이강인과 정우영 등 화려한 해외파 선수 인력풀을 지닌 채로도 한국을 올림픽 본선에 올려놓지 못했다. 대한민국에 부족했던 것은 청년의 에너지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관리, 경영 역량이 성과를 가른 것이다.
스포츠를 국력의 바로미터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젊은이의 에너지와 창의력을 얼마나 잘 받아내느냐가 어떤 팀의, 어떤 스포츠 종목의, 어떤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테니 말이다. MZ세대는 죄가 없다. 기성세대가 만들고 강요하는, 잘못된 보상 체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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