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면 나라 망한다”던 때도 있었다…지하철, 집값 ‘날개’ 되기까지[황재성의 황금알]
2: 서울시, 인구 폭증 대응 위한 시설로 계획
3: 서울시장과 경제부총리의 날 선 힘겨루기
4: 대중교통 체계와 도시공간 구조에 변화
5: 2·8호선 환승 잠실역, 지난해 이용객 1위
〈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
매주 수십 건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이 되는 정보를 찾아내는 옥석 가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매주 알짜 부동산 정보를 찾아내 그 의미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수도권 동부권 출퇴근 30분 시대가 열렸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일 운행을 시작한 서울 도시철도 8호선 연장선인 별내선을 소개하는 유튜브 콘텐츠에서 이같이 선언했습니다. 별내선에 이어 서울로 연결되는 철도망의 확충, 광역버스 서비스 개선, 도로망 확충 등을 통해 대중교통을 이용한 통행시간이 크게 단축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실제로 별내선은 경기 남양주시 별내역에서 서울 강동구 암사역까지 12.9km 구간을 연결하면서 통행시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여줍니다. 즉 별내에서 서울 송파구 잠실역까지 버스로 55분, 승용차로 45분 걸리지만 별내선을 타면 27분 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별내선이 통과하는 지역 부동산도 꿈틀대고 있습니다. 특히 구리시는 지난해 말경부터 내림세를 보이던 주간 아파트값이 올해 4월 3주차(15일 기준·0.01%)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뒤 꾸준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남양주시도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다가 올해 7월부터 상승세로 반전했습니다.
현장 반응도 뜨겁습니다. 별내역 인근 아파트 ‘별내 쌍용예가’ 101㎡(전용면적 기준)의 경우 8억 3000만~11억 원에 호가가 형성됐습니다. 지난 4월 거래가(층고 9층·가격 8억 원)와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입니다. 다산역에 인접한 주거복합아파트 ‘다산자이아이비플레이스’ 84㎡(32층)도 지난 6월 10억 7500만 원에 거래됐는데 현재 호가가 11억~12억 5000만 원까지 치솟은 상태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이용 인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별내역은 현재 하루 3000명 가량이 경춘선을 통해 이용했지만 7만 명에 달하는 별내지구 거주민(2023년 11월 기준)을 중심으로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처럼 지하철 노선 개통은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직방이 최근 5년 내 개통된 수도권 전철역 주변 아파트값을 분석한 결과, 역세권 아파트값이 비역세권보다 최근 1년 새 최대 7%포인트(p) 가까이 더 오른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입니다.
지하철역에서 100m 단위로 가까워질수록 오피스텔의 임대료가 0.1% 오른다는 연구 결과(주택도시금융연구,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서울시 주거용 오피스텔 임대료에 미치는 영향’)도 있습니다. 주택업체들이 신규 분양 아파트를 홍보할 때 빠짐없이 주변 지하철역과의 근접성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하철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년 중반 지하철 건설계획 논의가 본격화할 당시에는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합니다”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잖았습니다. 과연 지하철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5일로 개통한 지 50주년을 맞는 서울 지하철의 숨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 서울시, 1965년 시정계획에 건설계획 못 박아
그 결과 전세계 곳곳에 차량부터 지하철 건설 및 운영, 지하철 운영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수출되고 있습니다. 국토부의 해외철도정보에 따르면 2011년 이후 현재까지 도시철도 수주실적은 284건에 달합니다.
서울 지하철 건설과 운영을 책임지는 서울교통공사의 수출실적도 눈에 띕니다. 공사 누리집에 따르면 2013년 베트남 호치민 1호선 궤도설계용역을 시작으로 최근 필리핀 마닐라 도시철도 4호선 운영유지보수 컨설팅사업까지 26건의 해외사업을 따냈습니다.
수출 지역도 골고루 포진돼 있습니다.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홍콩,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네시아, 네팔, 인도, 이집트, 알제리, 탄자니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터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호주, 베트남, 브라질, 파나마, 코스타리카, 페루, 파라과이 등 다양합니다.
문헌에 나타난 서울 지하철 건설에 대한 논의는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됐습니다. 서울역사편찬원이 지하철 개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최근 펴낸 책, ‘서울역사구술집-지하철 우리 자본과 기술로’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건설 계획은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이승만 정부 시기에도 입안됐습니다. 하지만 계획의 구체성이나 재원 조달 계획이 미비했기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본격화된 시점은 1960년대 초입니다. 당시 상황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대한지방행정공제회의 월간지 ‘도시문제’ 2003년 8월호에 게재한 글,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합니다-지하철 1호선 건설의 과정’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서울 인구수가 1955년 157만 명에서 1966년 380만 명, 1970년 55만 명으로 폭증하면서 교통 수요가 폭발합니다. 이에 철도청에서 1962년 수송의 보다 효율적인 방안과 이용객에 대한 편의 제공을 위해 현 서울역과 청량리역 서편까지 지하철로 연결하는 계획안을 작성하고, 차관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구상합니다.
이후 지하철 건설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시점은 1964년입니다. 그해 4월 14일 국회에서 ‘서울시 인구 증가에 따른 교통난 완화책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서울시는 장기대책으로 “지금까지의 평면적 공로(公路) 행정으로는 도시 교통문제를 근본적으롷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며 “건설비의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지하철도 건설만이 유일한 방안이다”고 답변합니다.
서울시는 이듬해인 1965년 2월 3일 발표한 ‘시정 10개년 계획안’에 아예 이런 내용을 못박습니다. 계획안에서 서울시는 앞으로 10년 내 연 51.5km에 걸쳐 지하철 건설에 관한 제반 조사를 한 뒤, 1차로 14.88km를 건설하겠다고 밝힙니다. 당시 노선은 서울역~청량리역 간과 서소문~성동역 간이며, 1km 공사비 소요액은 10억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기술 용역회사 3곳에 지하철 건설 기본계획을 의뢰했고, 이들은 1965년 10월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 4개 노선을 제안합니다. 이 보고서에서 제안된 노선 구간은 현재와는 다릅니다. ▲1호선은 서울역~광화문~종로~동대문~청량리 ▲2호선은 서소문~시청앞~을지로~성동역 ▲3호선은 갈현동~중앙청앞~을지로 2가~퇴계로~뚝섬~천호동 ▲4호선은 우이동~돈암동~종로4가~한남동~말죽거리였습니다.
● 이후락 전 주일대사의 지원에 살아남은 지하철
이런 내용은 김학렬 당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에게 전달됐고, 김 부총리는 “촌놈이 알지도 못하고 건방지게”라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하철 건설에 많은 액수의 외국 차관 도입이 불가피했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 자신의 승인을 받아야 할 사안인데도, 양 시장이 그러한 절차를 밟지 않은 데서 터진 불만이었습니다.
김 부총리는 양 시장의 보고 후 현안 보고를 위해 대통령을 찾아간 자리에서 작심하고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합니다”며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힙니다. 그는 근거로 ▲(당시) 한국 경제가 긴축 경제를 해야 하는 점 ▲인구 증가가 격심한 서울에 지하철 건설과 같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하면 인구의 격증 현상이 가중돼 주택난·교통난만 더 심각해질 수 있는 점 ▲허약한 한국 경제 상태에서 시급하지 않은 지하철 건설은 투자우선순위를 그르치는 일이며, 이런 일로 나라가 망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는 점 등을 열거했습니다.
부총리와 서울시장의 상반된 보고에 고민하던 박 대통령이 지하철 건설에 손을 들게 된 데에는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의 공이 컸습니다. 직전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곁에 두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이 대사는 일시 귀국해 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지하철 건설은 세계 대도시의 공통된 추세이고, 대도시치고 지하철이 없는 도시는 없다”며 “서울에도 지하철 건설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지하철 사업은 탄력을 받았고, 1970년 10월 22일 김 부총리는 양 시장과 백선엽 당시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서울 지하철 건설계획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을 갖습니다. 외자 5000만 달러, 내자 230억 원을 투입해 ①서울역~종로~청량리역 간 9.8km 구간에 지하철 건설 ②서울역~인천, 서울역~수원, 용산역~성북 간 기존 철도 전철화 ③1971년 공사 착수-1973년 건설 완료-1974년 개통 등이 당시 발표안의 핵심이었습니다.
계획에 따라 서울 지하철 1호선은 1971년 4월 1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착공식이 거행됐고, 3년 4개월 뒤인 1974년 8월 15일 완공됩니다. 당시 개통된 서울시내 구간은 서울역~시청앞~종각앞~종로3가~종로5가~동대문~신설동~제기동~청량리 등 9개 역.
건설비 총액은 내외자 합쳐 330억 11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국고보조금은 1%도 안 되는 3억 원이었습니다. 지하철 건설을 반대한 김 부총리가 “너희들 힘만으로 건설해 보라”며 지원을 외면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 세계적으로 극찬받는 서울 지하철
전시장 초입에는 지하철 개통 의미를 소개한 큼지막한 게시물이 눈에 띕니다. “1974년 1호선 개통 후 남북한의 경제지표는 역전되었으며, 1호선 개통과 함께 견인된 수도권 전철화는 서울의 대도시권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1863년 런던에서 최초의 지하철이 탄생한 이후 111년 만에,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 북한에 이어 네 번째 탄생이었다”며 “이는 부산 대구 등 도시 내부를 연결하는 도시철도 시대를 개막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건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재원과 기술 등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공사 소음과 토지 보상 문제, 남대문(숭례문) 동대문(흥인지문)의 훼손을 우려한 학계의 반발 등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1970년 6월 출범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는 ‘정성으로 건설하여,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는 비장한 각오를 업무 때마다 구호로 외쳤을 정도였습니다. 후일 이는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교통공사)의 초기 사시(社是)로 승계됐습니다.
1호선 개통 후 약 10년 뒤 강북과 강남을 순환하는 2호선과 도심과 교외를 X자로 연결하는 3·4호선이 완공되며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열렸습니다. 버스 등 지상 도로 교통에 의존했던 도심 교통체계는 지하철 중심으로 개편된 것입니다. 실제로 1기(1~4호선)과 2기 지하철 일부(5호선(1995년 11월)과 8호선(1996년 11월)) 개통 후 조사한 교통수단별 분담률(1997년 기준)에서 지하철은 30.8%로 버스(29.4%)를 추월하기 시작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하철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서울의 도시공간에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지상처럼 지하에도 새로운 도시공간이 만들어지고, 환상(環狀)·방사형(放射形)으로 뻗어나간 지하철 노선을 따라 서울 외곽지역에 새로운 부도심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1985년 12월 25일자 ‘격동 1985-본격 지하철시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하철의 부수적인 경제효과로 변두리역 주변 지역의 개발 촉진을 빼놓을 수 없다”며 “지하철 3·4호선 개통 이후 달동네로 꼽히던 성동구 금호, 옥수동 지역이 아파트 타운으로 개발되고, 도봉구 상계동과 미아동 일대가 택지와 상업지역으로 변모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개통 이후 50년 간 지구 4만 바퀴가 넘는 16억km를 달리며 약 770억 명에 가까운 승객을 실어나르며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서 확고부동한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국내 지하철은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계 부동산개발회사 에센셜 리빙(Essential Living)이 지난해 7월 실시한 세계에서 이용객이 많은 도시의 지하철 10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서울 지하철은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접근성, 수송력, 가격 가치 평가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 지난해 이용객 26억 명으로 집계
연간 승객 이용 실적을 보면 26억 3219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직전이던 2019년(29억 2364만 명)과 비교하면 여전히 10% 줄어든 규모입니다. 서울 지하철 이용객은 2013년(26억 1953만 명)에 26억 명, 2016년(28억 5645만 명)에 28억 명 선을 넘어서는 등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21억 2722만 명)으로 크게 줄었고, 거리두기 등이 지속됐던 2021년(21억 5432만 명)과 2022년(24억 388만 명)에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연간 이용자수가 가장 많은 노선은 2호선으로 7억 106만 명에 달했습니다. 하루 평균 수송인원도 192만 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순환선은 연간 5억 8560만 명, 하루 평균은 188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어 5호선(연간 기준 3억 3489만 명·하루 평균 92만 명) 7호선(2억 847만 명·85만 명) 3호선(2억 9057만 명·80만 명) 4호선(2억 7919만 명·77만 명) 메트로 9호선(2억 2733만 명·62만 명)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나머지 6호선(1억 8607만 명·51만 명) 1호선(1억 4468만 명·40만 명) 8호선(1억 652만 명·29만 명) 등은 1억 명대에 머물렀습니다. 또 우이신설선(2696만 명·7만 4000명)과 신림선(2648만 명·7만 3000명)은 2000만 명 수준에 그쳤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직접 관리하는 285개 지하철역 가운데 하루 평균 승하차인원이 가장 많았던 역은 잠실역으로 15만 1182명이었습니다. 2호선과 8호선 환승역인 잠실역은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 등과 같은 초대형 위락시설과 송파구청 등 관공서, 석촌호수, 올림픽공원 등 공원시설들이 밀집해 있어 이용객이 많이 몰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어 강남역(14만 7450명) 홍대입구역(14만 755명) 구로디지털단지역(10만 6373명) 신림역(10만 4686명) 삼성역(10만2951명) 서울역(10만 595명) 역삼역(9만 5440명) 신도림역(9만 4988명) 고속터미널역(9만 4878명) 등이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면 가장 이용객이 적었던 곳은 둔촌오륜역으로 1398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어 남태령역(2465명) 도림천역(2498명) 신답역(3349명) 장암역(3641명) 한성백제역(3648명) 동작역(4006명) 버티고개역(4188명) 용두역(4718명) 학여울역(4872명) 등의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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