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전기차 혐오…'충전기 인프라 늘리기' 로드맵 확 바뀌나
전기차 충전소 설치·전기차 출입 꺼리는 아파트 주민들
충전기 유형, 완속·급속으로 구분…"화재예방형 추가해야"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정부가 6년 안에 전기차 충전기를 100만대 넘게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잇따른 화재로 충전기는 '위험시설'이라는 낙인이 생기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화재예방 기능을 갖춘 안전한 충전기 보급을 지금보다 대폭 늘리겠다는 입장인데, 이를 반영해서 정부의 목표와 계획도 함께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이용량이 2022년 대비 8배 이상 성장할 것이란 전망에 따라 전기차는 450만대, 충전기는 123만기 이상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황이다.
특히 '충전 불편'이 전기차 보급을 가로막는 요소라고 보고 충전기 확충을 시급한 과제로 추진해왔다.
지난해 6월 발표한 전기차 충전인프라 구축 로드맵에서 정부는 전기차 충전기를 2025년 59만기, 2027년 85만기, 2030년 123만기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누적 30만5309기로 알려졌다.
여기에 무공해차 누리집에 집계된 전기차 충전기 대수를 보면 지난 16일 기준 누적 36만1871기로, 올해에만 6만기 이상이 새롭게 깔렸다.
내년 목표치(59만기) 대비 전기차 충전기 설치율을 계산해보면 약 61%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약 22만~23만기를 추가로 깔아야 한다.
다만 고장 났거나 수리 중인 충전기는 무공해차 누리집에 집계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보급된 충전기 대수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
문제는 잇따른 화재로 전기차는 '시한폭탄', 전기차 충전소는 '위험시설'이라는 낙인이 생기면서 충전소 설치 자체를 기피하는 '님비(Not In My Backyard·우리집 뒷마당은 안 된다)'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화재 발생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겠다는 각서를 쓴 전기차주에 한해서만 아파트 출입을 허용한다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 지하주차장에 깔린 충전기들을 지상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기차와 충전시설을 기피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2022년 시행된 친환경자동차법 등에 따라 100세대 이상인 아파트 및 공동주택과 주차 면수가 50면 이상인 공중이용시설에는 주차 공간의 2~5% 만큼을 친환경차 충전 시설로 반드시 깔아야 하는데, 이 법 시행을 유예하겠다거나 유예기간을 늘릴 방안을 적극 찾겠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학생 안전에 대한 조금의 우려도 없어질 때까지 학교 내 전기차충전소 설치를 중단하겠다”며 "지자체와 협의해 학교 내 의무설치 유예기간을 늘리고 빠른 조례개정이 이뤄지도록 도의회와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으로 화재 예방 기능이 장착된 충전기 등 '안전한 충전기' 확산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국에 깔린 충전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완속충전기는 과충전 제어 기능이 없어 화재 발생 우려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와 달리 급속충전기는 80%까지만 충전할 수 있어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감안해 환경부는 과충전 제한 기능이 있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을 장착한 완속충전기에 40만원의 추가 보조금을 올해부터 지급하고 있는데, 현재 PLC를 장착한 완속충전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정부는 충전기 보급을 확대하는 기존 방향은 그대로 이어가되, PLC 모뎀을 장착한 완속충전기 등 화재에 안전한 충전기 보급을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내년 '일반 완속충전기'에 배정된 예산은 줄이고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 예산은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예산 당국과 환경부가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완속충전기 설치 보조에 책정된 예산은 740억원으로, 이를 한번에 전액 깎을 순 없으나 상당폭 감액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올해 800억원 규모의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 설치 보조 예산은 내년 큰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반 완속충전기 1대당 지급되는 정부 지원금은 약 200만원인데,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는 약 400만원으로 일반 완속충전기의 2배에 달한다. 따라서 화재예방형 충전기 보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내년 충전기 설치 보조금 예산도 상당폭 증액될 가능성이 높다.
화재예방형 충전기에 대한 예산 증액과 함께 정부가 세운 전기차 충전기 확충 로드맵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목표 보급량은 차치하더라도 '완속'과 '급속'으로만 구분한 충전기 유형별 목표를 세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는 충전기 유형을 급속과 완속으로만 나눠 연도별 보급 목표를 세워놨는데, 앞으로 정부가 화재 예방 기능을 갖춘 충전기 보급을 늘려가겠다고 밝힌 만큼 이와 관련한 보급 목표가 새롭게 설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앞서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를 15만대 보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잇따른 화재를 고려해 화재예방형 충전기의 목표 보급량을 늘려잡을 수 있다.
주거지, 직장 등 설치 장소별 보급 목표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완속충전기를 주거지에 43만기, 직장에 3만기 늘리겠다고 했는데, 최근 아파트 주민들 중심으로 전기차 충전시설을 기피하는 현실 등을 반영해 목표가 재조정될 수도 있다.
다만 최근 발생한 전기차 화재의 원인이 '충전기'가 아닌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에 있는 만큼 충전기에 괜한 '불똥'이 튀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충전이 화재 위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맞지만, 전기차 화재 상당수는 배터리 셀 불량이나 셀 내부 단락 등 배터리에 기인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내달 초 발표를 목표로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을 준비 중"이라며 "충전기 확충 로드맵 수정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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