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할게요, 꽉 잡으셔요"…다정한 마을버스 기사님[인류애 충전소]
말복 날엔 "저는 치킨 먹을 거예요" 무표정했던 승객들 미소 짓고, 기분 좋다며 과자 주기도
금천07번 마을버스 모는 구재회 기사님(59) "다들 고생하잖아요, 웃어야 행복하니까요"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마을버스가 덜컹거리며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나아가던 그때였다. 기사님이 힘찬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우회전할게요. 꽉 잡으셔요, 진짜 여기 길이 덜컹덜컹 안 좋아요."
승객들이, 일하러 가는 이들이 행여나 다칠까 봐 적막을 뚫고 외친 말 몇 마디. 그로 인해 삭막했던 버스가 삽시간에 밝고 동그란 기운으로 채워졌다. 그뿐만이 아녔다. 사람 많은 정류장에선 충분히 오래 기다려주고, 정류장마다 설명해주었다.
지연씨는 다정한 기사님 덕분에 하루가 행복했단다. 그날도 당연히 지치는 순간이 많았으나, 그때마다 기사님이 건넨 말들이 환하게 생각났다고.
금천 07번 마을버스란 것과 지연씨가 내리며 찍은 차 번호판만 보고 찾아나섰다. 정류장을 가늠해 맞춰서 타려 쫓아다녔는데, 두 번이나 허탕을 쳤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마리오 아울렛 정류장에서 10분 넘게 기다린 끝에 마침내 탑승했다.
젖은 얼굴을 감싸던 시원한 에어컨 바람. 그리고 그보다 더 청량한 인사가 들려왔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7번 버스입니다아~ 복지관 갑니다!"
어렵게 찾은, 유니콘 같은 기사님의 인사. 제보 영상에서 많이 들어 익숙한 밝은 목소리. 지연씨가 출근길에 만났다던 그 마을버스 기사님이었다. 길이 험하다고, 우회전할 때 손잡이를 꽉 잡으라고 당부했다던.
기사님 뒷자리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았다. 손님이 내릴 때도 큰 소리로 밝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고마워요!."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가는 구간. 공사 현장이 딱 붙어 있어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기사님이 또 말했다.
"바닥이 안 좋아요. 꽉 잡으셔요! 여기 정말 바닥이 안 좋습니다. 우회전할게요."
우회전한다는 평범하고 소소한 말. 혹여나 당신이 넘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이 담긴 말. 그런 인사가 이리 기분 좋은 것이었던가. 눈을 감고 덜컹거리는 버스를 느끼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몇 호 차인데 벌써 왔어요?"
기자라고 밝히고 명함을 건네고. 친절한 기사님이란 제보를 받고 이야길 들으려 왔다고 했다. 아이고, 별 것 아니라며 쑥스러워하던 그를 설득했다.
15분 남짓 짧은 쉬는 시간이 있다고 했다. 마시라며 믹스커피 봉지를 건네던 기사님. 성함은 구재회라고 했다. '아홉 번의 만남'이라 소개하신다고. 나이는 59세. 동안이라고 했더니, 기사님은 다들 40대 후반으로 본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취재의 계기가 된 지연씨 이야길 했다.
기자 : 제보 주신 분이 들려주셨어요. 비 오는 날이었대요. 기사님께서 우회전한다고 알려주시고, 도로 안 좋다고 손잡이 꽉 잡으라고 하셨다고요. 그날 내내 행복하셨대요.
재회 : 비 오는 날이었구나, 그럼 더 신경 쓰이죠. 정말 만차거든요. 손님이 위험하잖아요. 우회전합니다, 좌회전합니다, 꽉 잡으세요. 이렇게 안 하면 이상한 거거든요.
기자 : 저도 버스를 참 많이 타는데요. 그런 얘기하시는 분은 처음 뵈었는 걸요. 또 어떤 얘기 하시나요.
재회 : 요즘엔 덥잖아요. 어르신들이 많이 타시면 "날씨가 덥지요? 충분히 수분 섭취하시고 각별히 건강 챙기세요" 그랬어요.
기자 : 그럼 어떤 반응이세요?
재회 : 처음엔 대답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꿨어요. "아셨지요?" 하고 문답식으로요(웃음). 그랬더니 "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또 "이런 얘긴 저밖에 안 하지요?" 그랬더니 막 웃어요. 그럼 제가 박수를 막 쳐요. 웃음 드리고 싶어서 일부러 한 거라고요.
기자 : 인사를 첫날부터라…그러기도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안 해도 그만인 거니까요.
재회 : 다들 그러더라고요. 인사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느냐고요. 내릴 때도 인사하니까 그러는 거예요. "야, 내릴 때도 인사하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탈 때 했는데 내릴 때도 당연하다고 했지요. 마을버스는 또 동네 분들이시잖아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기자 : 당연하다고 하셨지만, 대부분 안 하시잖아요. 어떤 마음이신 걸까요, 인사를 해야겠다는 건.
재회 : 글쎄요, 모르겠어요. 서비스니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요. 올라오시니까 "어서오세요" 하게 됐고, 한 마디 더 붙이는 게 좋아서 "반갑습니다"도 했고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기자 : 사람을 원래 좋아하셨군요(저는 반반인데).
재회 : 좋아합니다. 그래서 약간 손해 본 적도 많지만요.
기자 : 그런데도 사람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재회 : 글쎄요. 특별히 생각을 안 해봤는데……. 지금 기자님이 계속 저한테 웃어주시고, 그럼 저도 기분 좋잖아요. 저도 웃게 되잖아요. 그게 답일 것 같아요.
그 힘이 참 크다고 느꼈던 건, 그가 마을버스에서 인사하는 이가 승객뿐이 아녔기 때문이었다. 공사장 신호수 여사님께도, 다른 마을버스 기사님께도, 기업 직원들에게도. 처음엔 대부분 인사를 안 받았다고. 그런데 한 달 동안 매일 인사하자, 다들 함께 인사하기 시작했단다.
기사님 오른편에 다시 앉아 얘길 주고받았다. 입추가 지났으나 여전한 여름의 푸르름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 버스엔 목적지 없이 하루쯤 머무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무척 고단하거나 생각이 많은 날엔 더더욱.
기자 : 저기,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시네요. 기사님께요.
재회 : 아, 여기 아파트 사시는 분이신데 그 작은 보행기 있잖아요. 근데 타실 땐 누가 실어줘야 하잖아요. 그럼 제가 사이드(브레이크) 채워서 실어주고, 내려드리고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 할머님인데요. 버스가 딱 오면 먼저 인사를 해요.
기자 : 제가 알기론 버스 배차간격이 다 있어서, 마음이 조급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그런 것 때문에 늦어질 수도 있고요.
재회 : 늦어지긴 하지요. 그런데요. 또 좋은 일도 있어요. 뇌물도 받거든요(웃음).
기자 : 예, 뇌물이요?(당황)
재회 : 아까 못 보셨구나. 사탕이랑 웨하스 먹었잖아요. 할머니 위로 모셔서 올려드렸더니, 아주머니께서 주먹에 쥐여주고 가셨어요. 학생도 간식 드시라고 주고요. 그럼 이제 하나는 먹고, 하나는 다음에 오시는 기사님 드시라고 남겨드리고요.
기자 : 그 작은 간식이 또 얼마나 힘이 될까 싶어요. 하루를 또 살게 할 거예요.
재회 :다들 사는 게 힘들잖아요. 직장인들도 힘들고, 기자님도 힘들고요. 아침에 그래요. "오늘 월요일입니다. 간단한 스트레칭하시고, 긴장 푸시고 커피 한 잔 하세요. 하늘 한 번 올려다보는 여유를 가지세요." 제가 좋아하는 말이 그거였어요. '100% 만족은 없습니다. 현실에 만족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됩시다.' 요즘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습니다' 그 말을 자주 써먹어요.
미루고 미루다 내릴 때가 된 기자에게, 재회씨는 환히 웃으며 잘 가라고 인사해주었다. 끝으로 그는 내게 이리 말했다.
"아니, 그런데 이런 게 기사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진짜로 각박한 세상이 됐구나."
에필로그(epilogue).
배차간격을 맞추느라 기사님들이 고생한다며, 재회씨가 승객들에게 당부를 바라는 게 있다고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타실 때 손을 살짝만 흔들어주시면 '아, 저 사람 버스 타는구나' 하고 기사가 멀리서 보고 미리 준비할 수 있거든요. 그럼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어요. 인사할 준비도 하고요. 버스가 오는 줄도 모르고 스마트폰 보고 있다가, 못 타는 경우도 있고. 그럼 빵빵빵 클락션 울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고요."
앞 버스는 달아나고 뒷 버스는 쫓아오는 불안함. 내 작은 노력으로 걱정을 줄이고 마음의 틈을 늘릴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두 번씩이나 강조하며 기사에 꼭 써달라는 게 이런 소소한 거여서, 그럼 전국의 마을버스 기사님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해서, 잊지 않고 기록을 꼭 남기고 싶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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