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코퍼’ 구리·금·원유를 보면 세계 경기를 알 수 있다?[경제뭔데]

임지선 기자 2024. 8. 1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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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역대 최악의 낙폭을 보여준 지난 5일의 ‘검은 월요일’이 벌써 2주 가까이 지났습니다. 미국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며 주식시장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분위기입니다. 올들어 미국·일본의 주가지수가 연일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코스피지수도 잘 나가는 듯 하더니 갑자기 경기 침체라니요. 다행히 이후 발표된 미국 소비·고용 지표 등이 예상보다 좋게 나오면서 금융시장은 일단 ‘그 정도는 아니야’라며 안심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경기 선행 지표로 여겨지는 원자재 가격들을 보면 안심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원자재 시장의 ‘삼두마차’인 구리, 금, 유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떨어진다···‘구리’
경기 침체 신호일까?
픽사베이

가장 심상치 않은 건 구리 가격입니다. 금융시장에서 구리는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을 지녔습니다. 구리 금속의 가격을 알면 ‘경제학 박사’처럼 경기 회복 여부를 미리 알 수 있다는 뜻에서 ‘닥터 코퍼’라고 붙은 거죠. 일종의 실물경제 선행지표인 셈입니다. 구리는 열전도율이 좋습니다. 전기 자동차나 반도체 등 요새 성장하는 산업에 꼭 들어가는 금속이죠. 인공지능(AI) 산업에서 많이 쓰입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구리 가격은 급등했습니다. 1월1일 기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구리(선물) 가격은 파운드(1파운드=0.464㎏)당 3.8805달러였다가 지난 5월20일 5.199달러까지 올랐습니다. 30% 넘게 오른 셈이죠. 구리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회복과 미국의 제조업 경기 회복이 구리 수요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물론 여기에 런던거래소의 결제 문제가 섞여 있었지만 상반기 구리값 급등에 세계 경기가 살아나는 신호로 해석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희망의 신호’인 구리 가격은 그러나 최근들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연중 최고치를 찍고는 3달러 후반대까지 내려갔다 4달러대를 겨우 회복한 수준입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건 수요와 공급의 논리죠. 최근 떨어지는 구리 가격을 두고 중국의 경기 지표가 회복되지 못하고 미국 대선이 불확실해지면서 수요가 불확실해진 영향이라고들 말합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구리 가격 하락이 예사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안 좋은 징후라는 거죠. “구리 가격이 떨어지고 한국 주식시장이 오른 적이 없습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경기 침체까지는 아니어도 구리 가격 하락을 보면 적어도 경기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습니다.”

계속 오른다···안전자산 ‘금’
올해 파리올림픽 금메달 ‘가장 비싸’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시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하계 올림픽 여자 금메달 농구 경기에서 르브론 제임스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파리 올림픽이 끝났는데요.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파리올림픽 금메달에는 금이 6g 포함됐는데, 금메달 가격이 900달러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이번 대회 금메달 가격이 가장 비쌌다고 합니다.

금 가격 상승세는 이전부터 지속됐지만 올해 초 이후 20% 가량 올랐습니다. 뉴욕상품거래소의 올해 1월 첫날 금(선물) 가격은 2073.40달러(온스당)였습니다. 이달 13일 기준 2507.80 달러까지 올랐습니다.

경기가 불안해지니 사람 마음은 안전한 곳을 바라보겠죠. 이래서 오르는 게 바로 금 가격입니다. 위기시 피할 수 있는 대표적 안전 자산이 금입니다. 사실 올해 상반기 ‘모든 것이 다 오른다’는 에브리씽 랠리 때 주식도 오르고 금 가격도 오르는 기 현상을 보였습니다. 특히 뉴욕상품거래소에선 미국의 경기 침체 위기라고 주식시장이 하락했던 지난 6일 이후부터 금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금 관련 투자자금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금 현물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KRX금현물’에는 최근 한 달 사이 500억원 넘는 자금이 들어왔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위기가 다가올 것에 대비해 금으로 자금을 옮겼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강해지고,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금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커지는 겁니다.

오르락 내리락···‘국제유가’
물가 영향 가장 큰 지표
지난 4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주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도 경기 선행지표 중 하나입니다. 유가는 특히 물가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구리와 금 가격보다 실생활 물가에 영향을 더 크게 끼치는 건 유가일 겁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2~3개월 차이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거든요. 실제로 주유소를 가보면 체감할 수 있죠. 이 때문에 유가가 하락세로 들어선다는 건 물가도 안정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올해 처음으로 글로벌 원유수요 증가 전망치를 낮췄습니다. 중국의 수요가 떨어졌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유가는 계속 떨어질까요? 단선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수요가 불안하기 때문에 하락세를 보였다가도 중동 지역의 전쟁 불확실성이 커지니 유가가 또 상승하고 있습니다. 유가는 상승과 하락 요인이 뒤섞여 있는 상태입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의 하락 추세는 글로벌 경기의 모멘텀이 기대보다 강하지 못함을 의미하지만 물가측면에서는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 하락이 미국 등 주요국 물가의 추가 둔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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