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 전쟁 나선 우크라이나, 정찰에 ‘로봇 개’ 투입한다
사람 조깅 속도와 비슷한 재빠른 움직임
험지 돌파 능력 탁월…‘정찰 임무’ 부여
병사 생명 보존하고 전투력 상승 목표
네모난 머리와 길쭉한 몸통, 그리고 다리 4개를 갖춘 로봇이 나무가 빽빽한 숲속을 바쁘게 걷고 있다. 로봇의 형상은 딱 개다. 키가 어른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중형견 덩치인 이 로봇 개는 사람이 조깅하는 속도인 시속 10㎞ 수준으로 재빠르게 움직인다.
그런데 이 로봇 개,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움직임이 진짜 살아있는 개처럼 자연스럽다. 몸통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깊은 도랑과 가파른 언덕, 풀과 돌이 널린 들판을 거침없이 주파한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군이 AFP통신 등에 공개한 ‘배드 원’이라는 로봇 개의 시연 장면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로봇 개를 러시아군과의 전투 현장에 곧 투입할 예정이다.
로봇 개의 주요 임무는 현재 인간 병사가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정찰’이다. 최근 러시아 영토로 지상군을 진격시키는 등 전황을 바꾸기 위해 총공세를 펴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과학기술을 동원한 첨단 전쟁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병사 대신 정찰 수행
한 영국 기업이 공급한 이 로봇 개는 사족보행을 한다. 바퀴가 아니라 다리 4개를 사용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전장은 들판이나 산인 경우가 많은 데다 기존 도로도 대부분 파괴돼 바퀴를 굴려서는 이동하기 힘든 일이 잦다. 다리를 갖추면 이런 험지를 돌파할 능력이 생긴다.
공개된 시연 장면을 보면 로봇 개는 들이나 숲을 걸을 뿐만 아니라 이동 중 30~40㎝ 높이를 폴짝 뛰어오르기도 한다. 다리 관절을 구부려 배를 지면에 바짝 붙이는 행동도 한다.
전장에서 전진하며 앞에 놓인 구덩이를 뛰어넘고, 자세를 낮춰 동체를 은폐할 때 요긴한 동작들이다. 로봇 개의 이런 움직임은 사람이 원격 조종을 해 통제한다.
로봇 개는 어디에 쓸까. 정찰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정찰은 주력 부대가 공격 또는 방어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앞서 수행해야 하는 활동이다. 상대 부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아야 작전에서 헛다리를 짚지 않는다. 상대 병력이 기습이나 매복할 가능성이 있는 장소를 미리 파악하고, 지뢰나 폭발물을 숨겨 놓았을 만한 곳을 최대한 사전에 탐지하는 것도 정찰의 일부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위험하다. 정찰은 대개 경무장을 한 소수 병력이 적진에 바짝 접근해 실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임무 중 상대 주력 부대와 조우해 교전하면 인명 손실이 일어나는 일이 많다. 게다가 정찰에는 경험 많은 병사가 동행하기 때문에 이때 발생하는 인명 피해는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 저하와 직결된다.
로봇 개를 개발한 영국 기업은 “병사의 생명을 보존하고 작전 능력을 높일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 화상 카메라 장착
정찰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로봇 개에는 ‘좋은 눈’이 장착됐다. 열화상 카메라다. 체온을 감지한다는 뜻이다. 밤이나 연기가 자욱한 환경에서도 참호에 모여 있는 상대 병력 규모와 배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로봇 개는 전기로 움직인다. 동체에 장착된 배터리를 완전 충전하면 약 2시간 작동한다. 단기 정찰 임무에 투입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성능이다. 최대 7㎏짜리 화물도 운반할 수 있다. 탄약이나 의약품을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군은 향후 로봇 개를 전선에 몇 대나 배치할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6일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주에 지상 병력을 투입한 뒤 교두보를 마련하는 등 전황을 뒤집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전투 능력을 높이고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병기인 로봇 개를 조기에 다량 투입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로봇 개 투입 수량이 충분히 많아진다면 우크라이나의 만성적인 병력 부족을 완화할 대안이 될 수도 있어 앞으로 로봇 개가 어느 정도 범위에서 활용될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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