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 풍선과 대북 확성기 사이에는 화장실이 없다 [전국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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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1일 접경지역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6년 만에 전면 가동되더니 7월24일에는 대통령실 청사 일대에 '오물 풍선'까지 떨어졌다.
한반도의 평화시계가 또다시 빠르게 뒤로 돌자 분쟁 양상으로 치닫는 상황을 여러 사람이 비판하고 나섰다.
으레 '게으름'의 증거로 비춰지는 강원 지역의 높은 비만율·음주율 뒤에는 분쟁 속 아슬아슬한 일상을 사는 지역 환경, 그리고 스트레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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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1일 접경지역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6년 만에 전면 가동되더니 7월24일에는 대통령실 청사 일대에 ‘오물 풍선’까지 떨어졌다. 한반도의 평화시계가 또다시 빠르게 뒤로 돌자 분쟁 양상으로 치닫는 상황을 여러 사람이 비판하고 나섰다. ‘맞대응’을 하겠다고 나서는 언동 역시 놀랍지 않은 풍경이었다.
분쟁과 설전, 비판이 오가는 동안 그저 숨죽이는 곳, 그리고 주된 관심에서도 비켜나 있는 삶이 있다. 강원과 경기 일대에 분포한 접경지역,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주민의 삶이다. 한국전쟁 이후 숱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접경지 주민들은 각자의 삶터를 꾸려왔다. 그 어디보다 군사적 긴장감이 높은 지역이지만 사실 접경지의 불안은 ‘불안’이라는 말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 집단이 스스로 겪는 고통을 ‘불안’ 혹은 ‘폭력’이라고 이름 붙이기까지는 지난한 사회적 승인의 과정이 필요한 탓이다.
언어의 부재 속에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는 불안과 폭력은 주된 산업인 관광업 침체로, 농경지 군사 통제로, 주민들의 건강으로 나타난다. 당장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자 주민들은 농경지 출입 통제, 그리고 관광경기 침체를 걱정했다. 정전 이후 한국이 ‘서울공화국’으로 거듭나는 동안 서울에 자원과 사람을 모두 빼앗긴 채 ‘군사기지’ 역할을 부여받은 접경지역은, 여전히 일차 산업과 기초적 서비스업이 주산업이다. 의료는 물론 교육과 복지 등 국가적 투자에서도 소외돼왔다. 이처럼 주민이 겪는 폭력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을 경로 삼아 드러난다.
건강 돌봄 가능케 하는 실질적 조건은 ‘평화’
교차하는 폭력의 경로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집단은 여성 노동자들이다. 접경지의 남성중심적 군사문화에 더해 국가적 근대화에서 소외된 영향까지 한 번에 받기 때문이다. 접경지 여성들은 군사 상황에 따라 요동치는 통제 속에서 지역의 주산업인 농업 노동, 그리고 돌봄 노동을 오가며 생계를 꾸린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배뇨 관련 질환을 겪고 있다. 보수적인 지역문화와 부족한 의료 인프라로 인해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지역 여성들끼리만 공유해온 비밀이다. 생산(농업)과 재생산(돌봄·가사 노동)이 분리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국가안보를 빌미로 공공 인프라를 열악하게 방치해온 탓에, 긴 세월 접경지 여성들은 화장실조차 제때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이들이 주로 노동을 하는 논과 밭은 물론이고 오가는 길에도 공공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곳 여성들은 대부분 운동 한번 편하게 하지 못하고, 화장실 한번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했어요.” 민통선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김온희씨(53)는 말했다. 으레 ‘게으름’의 증거로 비춰지는 강원 지역의 높은 비만율·음주율 뒤에는 분쟁 속 아슬아슬한 일상을 사는 지역 환경, 그리고 스트레스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국제사회는 이미 1978년 알마아타 선언을 통해 지역 주민에 대한 포괄적 건강 돌봄(1차 의료)을 가능케 하는 실질적 조건으로 ‘평화’를 짚었다. 그러나 2024년 한국에서는 다시 찾아온 폭력의 시간 속에 주민들 건강과 삶이 가장 먼저 멍들고 있다. 힘겨루기와 위압, 오랫동안 국제정치판에서 전해온 이 지겨운 세계관 뒤에 주민의 삶과 존엄이 있다. 사람의 존엄을 뒤로하고, 한국이라는 국가는 지금 평화와 폭력의 두 갈림길 중 어디를 오르고 있나. 두려운 밤이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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