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귀여웠다간 뼈도 못 추리겠네 [임보 일기]

박임자 2024. 8. 1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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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오빠들이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오늘이야!" 하고 외치고는 그동안 정들었던 둥지를 박차고 날아올랐어요.

여자 사람은 손으로 나를 덥석 잡더니 "차들이 다니는 길에서 어쩌려고 그러고 있어?" 묻고는 도로 바깥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어요.

"주변에 덤불이나 숲이 있으면 그곳에 놔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들었지? 이제 그만 날 좀 놓아달라고! 나를 꽉 쥐고 있으니 날개가 저려 죽겠어!' 하고 눈을 부릅떠도 여자 사람은 천천히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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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오늘이야!” 하고 외치고는 그동안 정들었던 둥지를 박차고 날아올랐어요.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펼쳤는데 눈을 떠보니 길바닥이었어요. 까치 형아들이 저를 빙 둘러싸고 깍깍댔어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끼익’ 차 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 사람이 다가왔어요. 까치 형아들은 슬금슬금 도망갔어요.

7월5일 경기도 수원의 한 도로에서 어린 소쩍새를 발견했다. ⓒ박임자 제공

여자 사람은 손으로 나를 덥석 잡더니 “차들이 다니는 길에서 어쩌려고 그러고 있어?” 묻고는 도로 바깥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차가 ‘쌩~’ 하고 지나갔어요. 엄마가 둥지에서 나가면 차도 조심하고 까치도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우리 같은 어린 새들은 너무 귀엽게 생겨서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납치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아직 어려서 잘 날지 못할 뿐, 근처에서 엄마가 우리를 보살펴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우리를 구해준다고 데려가는 일이 종종 있대요. 그러면 영영 엄마와 생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여자 사람은 한 손으로는 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네모난 기계에다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소쩍새가 어쩌고, 까치가 저쩌고, 도로가 어쩌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더니 내 몸을 막 만졌어요. 날개도 펼쳐보고 몸통도 살펴보고 발가락도 만져보더니 기계에다 대고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여자 사람아, 나는 괜찮단다. 이제 그만 날 좀 놓아주면 안 되겠니?’ 하고 부리로 ‘딱딱’ 소리도 내고 발버둥을 쳐도 아직 놓아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에요. 언뜻 들으니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곳은 엄마한테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어요. 우리 같은 야생동물이 다치면 치료를 해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주는 좋은 곳이라고요. 여자 사람은 기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은데 주변에 까치들이 많아서 괜찮을까요?”라고 물었어요. “주변에 덤불이나 숲이 있으면 그곳에 놔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여자 사람은 불안한지 재차 물었어요.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놔줘도 어미를 만날 수 있을까요?” “낮에 숨어 있다가 저녁에 소리를 내면 어미가 금방 찾을 거예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자문을 받아 근처 숲에 어린 소쩍새를 풀어주었다. ⓒ박임자 제공

‘들었지? 이제 그만 날 좀 놓아달라고! 나를 꽉 쥐고 있으니 날개가 저려 죽겠어!’ 하고 눈을 부릅떠도 여자 사람은 천천히 걸어갔어요. 근처에 있는 무슨 책방에서 일을 한다는데 ‘오늘 하루만 책방에서 같이 있다가 밤에 보내주고 싶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덜컥했어요. 여자 사람은 다행히 마음을 고쳐먹고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으로 나를 데려갔어요. 보내주기 아쉬웠는지 나를 또 찬찬히 쳐다보더니 나무 위에 올려줬어요. ‘두 번 귀여웠다간 뼈도 못 추리겠네’ 하고는 쏜살같이 튀었지요. 아이쿠 십년감수했네!

뭐 암튼 까치 패거리들에게서 구해준 건 생큐! 엄마는 저녁이 되면 잘 찾아볼 테니 너무 걱정은 말라고. 10월이 되면 나는 떠나겠지만 내년에 꼭 다시 돌아와서 ‘소쩍, 소쩍’ 안부 전할 테니 이 소쩍새를 잊지나 마시라고!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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