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되면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한미 관계 파탄날까? [송의달 LIVE]
2024년 미국 대선(11월 5일)이 도널드 트럼프(Trump)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Harris) 후보 간의 초접전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2024년 8월 5~11일 미국 성인 9201명을 대상으로 한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선 해리스(46%)가 트럼프(45%)를 앞섰으나 8월 15일 공개된 폭스뉴스 조사에선 반대로 트럼프(50%)가 해리스(49%)보다 우세했다. 같은달 8일과 11~14일 실시된 라스무센 리포트(Rasmussen Reports) 조사에선 트럼프(49%)가 해리스(45%)를 능가했다. 이런 조사 결과들은 해리스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지지세가 건재(健在)해 매우 팽팽한 대선 대결 구도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리스의 상승세 vs 트럼프의 건재함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 백악관에 재입성한다면, 한미(韓美) 양국은 가장 먼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서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1990년대 초부터 올해 5월까지 “주한미군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든다. 이걸 왜 미국이 부담해야 하냐”고 125차례 반복 강조했다. 그는 2021년 11월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집권 1기 중 후회(後悔·regret)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피터 베이커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독일차에 대한 관세를 충분히 매기지 못한 것과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받아내지 못한 것(sticking up South Korea for 5 billion in payment for American troops stationed there)이다. 이 두 가지는 다음번 백악관에 들어가서 마무리할 생각이다.”(The Divider, 646쪽)
◇“한국 분담금 늘려야” 125차례 반복한 트럼프
트럼프는 일관성 없고 예측불가능한 정치인으로 평가되지만,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서는 20년 넘게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다. 2019년 6월부터 2020년 7월까지 트럼프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모든 회담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 문제를 꺼냈다. 부유한 나라인 한국은 세계 경제에서 최상위 12개국에 속한다. 한국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지만, 서울은 더 많은 비용 부담을 할 수 있다고 봤다.”
미국 국방부는 당시 주한미군 주둔 관련 직접 비용 중 약 3분의 1(9억2400만달러)을 한국이 부담한다고 자체 분석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이는 당시 연간 1조 6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한민국 총GDP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이 비용의 대부분은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군속(軍屬·군무원)들의 급여와 주택 비용 등으로 한국에 돌아갔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밝혔다.
◇트럼프, “50억 달러 분담금 못 받아 유감”
“나는 논의의 출발점을 방위비 분담 비율을 50%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트럼프는 한국의 연간 방위비 분담금액이 기존 보다 4배 이상 많은 50억달러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2020년 봄 한국이 제시한 13% 인상(1억 2000만 달러)안(案)을 ‘모욕적’이라며 거부했다.”
분담금 협상 결렬로 2020년 4월 1일부터 9000여명의 주한미군 한국인 군속에 대한 급여 지급과 병참 계약이 중단되자, 미국 정부는 자체 비용으로 이 가운데 4200명의 급여 등을 긴급 지급했다. 에스퍼 전 장관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러한 이슈들은 트럼프를 귀찮고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인들은 다루기 끔찍하다(South Koreans were horrible to deal with)’면서 여러차례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우리를 뜯어 먹고 있다. 그들은 삼성TV를 우리에게 팔고 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우리가 정작 그들의 안보를 책임져 주고 있다. 그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문제 해결을 위해) 주한미군 전면 철수를 자꾸 주장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기 때는 다른 일로 바쁘니) 주한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라’고 제안했고, 트럼프가 ‘그렇지, 두 번째 임기’라고 했다”는 대목(549쪽)도 나온다.
◇“주한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적게 내려하자 트럼프가 분노했고, 이것이 주한미군 철수론으로 번졌다는 증언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가 또다시 대통령이 될 경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가 가장 뜨거운 현안이 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동시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트럼프의 비위가 틀리면, 한미 동맹이 파탄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 대령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이 말한 “돈밖에 모르는 트럼프가 주둔군 비용 협상 결렬을 주한미군 철수의 기회로 사용할지 모른다. 한미 동맹의 종식은 갑자기 비극적으로 닥쳐올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는 트럼프 개인을 넘어 트럼프 진영 전체가 공감(共感)하는 사안이다. 트럼프 2기 출범시 재무장관 또는 상무장관 등용이 유력시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023년 저서에서 “우리는 한국의 방위비로 매년 수 십억 달러를 분담하는데, 한국은 미국에 대한 수출 장벽을 유지하고 매년 엄청난 무역 흑자(黑字)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284쪽).
◇“돈 때문에 韓美 동맹 끝장날 수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국방비를 늘려달라”는 트럼프의 요구에 대해 계속 시간을 끌며 거부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2020년 9월, 3만 4500명의 독일주둔 미군(美軍)병력의 3분의 1인 1만 1900명을 철수시켰다. 이 중 6400명은 미국으로 왔고 나머지는 이탈리아, 벨기에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분산배치됐다. 당시에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는 더이상 ‘봉[sucker]’이 되고 싶지 않다. 독일이 내야 할 돈을 내지 않고 있기에 군 병력을 줄이는 거다”고 말했다.
◇한국 분담금, 2010~19년 매년 233억원씩 늘어
독일과 달리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2022년 기준 GDP의 2.7% 수준으로 미국의 동맹국 중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24년 동안 올린 대미(對美) 무역 흑자는 2974억 달러(약 401조원, 환율 1350원 기준)에 달한다. 단 한 해도 무역 적자를 내지 않았다. 더욱이 2020년 172억 달러이던 대미 무역 흑자는 2022년 282억 달러(약 37조원), 2023년 444억 달러(약 60조원)로 급증해 2022~23년 두 해 동안에만 100조원에 육박한다.
2010년 당시 7904억원이던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2019년(1조 389억원)에 처음 1조원을 넘었다. 9년 동안 총 2100억원 정도 증가해 매년 233억원 정도씩 늘었다. 2023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1조 2896억원)은 그해 한국 총국방비(57조원)의 2.2%, 대미 무역흑자(약 60조원)의 2.1% 정도다. 같은 해 한국 정부 총예산(638조 7000억원)의 0.2% 수준이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평화와 한국 방어에 필수적인 존재라고 인정한다면, 많은 비용 부담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빚 大國' 미국, “부자 외국이 방위비 더 내라”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진영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늘리는 게 동맹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서 세계 7번째 3050클럽(1인당소득 3만달러 이상에 총인구 5000만명 넘는 나라) 회원국인, 덩치 크고 잘 사는 부자(富者) 나라 한국이 비용 부담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국가 부채(national debt)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미국 국가부채는 근래 100여일 마다 1조 달러씩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6월 15일 32조 달러이던 국가 부채는 1년 여만인 2024년 7월 하순 사상 처음 35조 달러(약 4경 7610조원)를 돌파했다. 미국이 매년 갚는 이자(利子) 금액은 그해 총국방비 지출액 보다 많다. 미국은 슈퍼 파워가 아니라 ‘지쳐가는 거인’이다.
미국 국력의 쇠퇴와 한계를 잘 알고 있는 현실주의자 트럼프가 ‘부자 외국’에 대해 강도(强度) 높게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데 대해 미국의 중산층·서민·노동자들은 환호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를 놓고 양측의 갈등(葛藤)이 지속될 경우, 한미 관계는 금이 갈 수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국에 꼭 필요하다면, 한국이 지금보다 비용을 더 내야 한다. 분담금 인상이 싫다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감내(堪耐·참고 버팀)하면서 독자적인 국방 역량을 강화하면 된다.
◇①미국에 한국 기여 홍보하면서 압력 낮춰야
가장 좋은 방안은 트럼프 진영과 잘 협의해 한국이 내는 방위비 분담금을 적정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한국이 미국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되고 있음을 적극 홍보하면서 트럼프 진영의 압력 수준을 낮추는 전략을 펴야 한다. 실제로 2021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미국에 투자를 약속한 2000억 달러(약 259조원) 가운데, 한국의 투자 약속 규모는 555억 달러(약 72조원)로 세계 1위이다.
한국 기업들은 2023년 한 해 미국에 새로 생긴 일자리 28만 7299개 가운데 14%인 2만 360개를 만들었다고 미국 비영리 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Reshoring Initiative)가 집계했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2023년도 미국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34개국 중 1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늘리면 F-35 전투기, 첨단 레이더 같은 미국산 무기 수입이 줄어들 수 있음을 미국 방위산업체에 알려 미국 정부를 측면으로 움직이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하다.
◇②파격적인 분담금 인상을 선제 제안
다른 방안은 우리가 파격적인 인상을 선제(先制) 제안하고 트럼프 진영으로부터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는 전략이다. 이 경우 2022~2026년 5년 동안 5만 3000여명의 주일미군 주둔 관련 총 비용의 75% 정도(1조 550억엔·약 11조원, 매년 2조 2000억원)를 부담키로 한 일본 사례가 모델이 될 수 있다. 미·일(美日) 양국은 노무비, 전기·가스, 시설 정비, 훈련 이전비 같은 지출 항목별 분담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유한다. 일본 수준에 버금가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제안하면서, 한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같은 원하는 안보 카드를 받아내야 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한국이 미국의 안보 지원에 무임승차(無賃乘車)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상대적 국력 약화와 해외 관여(engagement) 보다 국내 문제 해결 집중을 바라는 국내 여론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동의(同意)나 깊은 협의 없이 주한미군 규모를 늘리거나 줄였다.
◇③한국 방어는 한국이 책임...진정한 ‘자주국방’
따라서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미국은 한국의 희망이나 의사(意思)와 무관하게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 주둔 지역 등을 언제든 조정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 진영에선 ‘외국 방어를 위한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해당 국가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결의(決意)가 확고하다.
그런만큼 대한민국의 안보는 우리가 책임지고 해결한다는 진정한 자주국방(自主國防) 마인드와 미국과 보완하며 도움을 주고 받는 대등(對等)한 관계라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트럼프 당선 가능성에 대비해 그를 상대로 ‘주고받기’ 협상과 시나리오별 대응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우리의 핵심 국가이익과 주변 이익을 구별하는 지혜도 요청된다. 같은 맥락에서 매년 수 조원의 선심성(善心性) 복지 예산 등을 쓰면서 방위비 분담금은 1000억원이라도 아끼는 것을 애국(愛國)으로 여기는 풍토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2024년 1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광주시와 대구시를 잇는 198.8km짜리 달빛철도만 해도 2029년 완공까지 단선·일반으로는 6조원, 고속·복선은 11조 3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 사업은 세(勢) 과시와 건설사 일감 만들기 외에는 실효성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분담금 아끼다가 소탐대실해선 안 돼
한국 유력 정당이 공약으로 내놓은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 회복 지원금 비용(13조원)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0년 치가 넘는다. 반대로 2023년도 방위비 분담금(1조 2896억원)을 한국 총인구(5171만명)로 나누면 1인당 2만 4939원으로 커피(평균 4000원) 6잔 값 수준이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인색(吝嗇)한 한국 정치인·정부가 자국민에게는 돈을 펑펑 쓰는 행태를 미국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낮추려면 나라 재정과 예산부터 원점에서 편성·관리해야 한다. 안보는 경제·문화·복지 보다 위에 있는 최중요(最重要) 사안이다. 수천억원 또는 1조~2조원 방위비 분담금을 아끼다가 한반도 안보에 허점이 생기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은 막아야 한다.
이런 마당에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24년 6월 미국 CBS방송에 나와 “(한국과 일본이) 자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 유지 비용의 일부를 지불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면서 한 말은 곱씹어 볼만하다.
◇더 거칠어질 트럼프 2기...치밀한 분석·대비 절실
“우리는 막대한 연방정부 적자를 안고 있고, 인플레이션도 있고, 국내적인 부담도 있다. 우리 동맹국들은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길 원한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4%를 방위비로 지출한다. 가족끼리도 가끔은 약간 터프(tough)하게 해야 하듯, 가끔은 동맹들에게 터프한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그의 발언은 트럼프 2기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거칠게’ 방위비 대폭 증액 압박을 할 것임을 알리는 서곡(序曲)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우리가 트럼프와 해리스간의 박빙 선거 판세 관전(觀戰)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다. 현실화될 수 있는 트럼프 2기를 한국에 ‘재앙’ 아닌 ‘기회’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분석과 대비가 절실하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그 첫 걸음이자 시금석(試金石)이다.
※참고한 자료※ (알파벳, 단행본-기사 순서)
Mark Esper, A Sacred Oath (New York : Harper-Collins, 2022)
Peter Baker & Susan Glasser, The Divider: Trump in the White House 2017-2021 (New York : Doubleday, 2022)
Robert Lighthizer, No Trade is Free (New York : Broadside Books, 2023)
David Maxwell, “A looming threat to the US-South Korea alliance” The Hill (January 4, 2019)
Robert C. O’Brien, “Full transcript of ‘Face the Nation’” CBS News (June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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