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대선 후보 대관식 임박… ‘진보 아성’ 시카고 들썩인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8. 1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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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 19일부터 나흘 간 진행
약 5만명 모이는 美대선의 꽃… 경찰 통제 시작
25차례 전당대회 개최, 민주 주요 변곡점마다 등장
親팔레스타인 시위 예고에 충돌 우려도 나와
클린턴·오바마 등 유력 인사 총출동… 바이든은 첫 날 연설
17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 앞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그림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는 전당대회가 19일부터 나흘간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열린다. 시카고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블루 스테이트’인 일리노이에 있는 진보의 아성(牙城)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포함해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대관식’인 전당대회가 25번이나 열린 곳이기도 하다. 경선을 다 치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재선 도전을 포기한 초유의 사태 속 치러지는 전당대회인데, 미국 정치와 민주당 역사의 주요 변곡점 때마다 이 도시가 등장했다. 이번 전당대회 준비를 총괄한 민주당전국위원회(DNC)는 “우리가 이룩한 성과 위에서 이번 대선의 의미를 짚어보고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공통의 가치 아래 통합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 美대선의 꽃… 약 5만명 운집, 예상 수익만 2억 달러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유나이티드 센터 내부. /AFP 연합뉴스

나흘 동안 열리는 전당대회에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미 대선의 꽃이자 ‘정치 수퍼볼’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대회에는 대의원 5000명을 비롯해 자원봉사자 1만여 명, 언론인 1만 5000여 명 등 약 5만 명이 운집한다. 호텔, 레스토랑, 소매업체 등이 2억 달러(약 2700억원)가 넘는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카고 경찰 당국은 “1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중심으로 안전하게 전당대회가 마무리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대회는 미 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의 홈구장인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 1996년 전당대회도 여기서 열렸다.

센터 주변은 17일 오후 7시부터 폐쇄됐고, 또 다른 행사장인 대형 컨벤션 센터 ‘매코믹 플레이스’ 역시 전날 도로 폐쇄가 시작됐다. 행사장 인근 지역에선 차량 검색이 진행되고 보행자 출입도 제한된다. 브랜든 존슨 시카고 시장은 AP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직책에 아시아계·흑인 여성을 임명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세계에 보여줄 기회”라며 “자랑스럽게도 시카고가 그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시카고는 2012년 28개 회원국, 60여 정상급 지도자가 참석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치른 경험이 있다.

◇ 민주당의 주요 변곡점마다 등장한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 전경. /로이터·뉴스1

민주당 전당대회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게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 1968년 시카고 대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존슨은 재선을 원했지만 베트남 반전(反戰) 운동의 여파로 경선 도중 낙마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원들과 반전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실 회의를 통해 부통령 험프리를 대선 후보로 결정했다. 여기에 격분한 당원들과 시위대가 전당대회장으로 몰려와 경찰과 대치했고, 곧 충돌하면서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피의 전당대회’라고도 불린다. 이때 체포돼 재판을 받은 7명의 시위 주동자, 이른바 ‘시카고 세븐(Chicago Seven)’의 이야기는 2020년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Trial of the Chicago 7)’이란 제목의 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보다 24년 앞선 1944년 시카고 전당대회 때는 2차 세계대전 속 4선에 도전하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을 후보로 지명했다. 당시 루스벨트가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이 상당해 당선되더라도 유고 사태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당 간부들도 그의 후보 지명에 반대했지만 아무도 현직 대통령의 재선 의지를 말릴 수가 없었다. 루스벨트는 결국 후보로 지명돼 대선에서 승리, 미 헌정 사상 전무후무한 4선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취임 100일 만에 사망했다. 이는 ‘고령 리스크’에 대한 우려에도 한동안 대선 완주를 고집했던 바이든을 연상시키는 현대사의 한 대목이다. 다만 지난달 바이든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해리스를 지지하며 민주당은 80년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됐다. 이게 11월 대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게 될 일이다.

16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거리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EPA 연합뉴스

◇ 親팔레스타인 시위 예고… ‘피의 전당대회’ 재현될 우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과 러닝 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9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해리스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 200여 개 단체가 참가하고 있는 ‘DNC 행진(March on the DNC 2024)’은 대회 첫날인 19일과 마지막 날인 22일 ‘팔레스타인을 위한 행진’이라 명명한 시위를 예고했다. 민주당 지지층 상당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과 관련해 민주당에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전당대회라는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격이 된다. 앞서 열린 해리스의 유세 때도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등장했는데 해리스가 이들 앞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길 원하나”라고 소리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전당대회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버락 오바마·빌 클린턴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건강 상의 문제로 참석하지 못하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대신한 손자 제이슨 카터,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의장 같은 민주당 진영 유력인사, 해리스를 지지하는 헐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이 총출동한다. 미 언론들은 오바마 배우자인 미셸 오바마 역시 사상 첫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의 출정식에 어떤 방식으로든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지냈고, 시카고는 미셸의 고향이기도 하다.

매일 오후 5시30분부터 10시까지 주요 연사들이 나와 연설을 한다. 바이든은 첫날인 19일 연설을 통해 해리스에 ‘횃불’을 넘겨줄 예정이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위협’이란 점을 강조하며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당위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21일엔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22일엔 해리스가 각각 부통령·대통령 수락 연설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DNC는 TV 채널은 물론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주요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행사를 생중계 할 계획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이 15일 메릴랜드주 라르고에서 열린 유세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손을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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