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돌 씻는 영상 940만뷰…"회사 살렸고 저도 단단해졌죠"
경영난에 한때 월급 밀리기도…절박함에 올린 영상 '대박'
"앞길 막막해도 꾸준하면 반드시 먹고살 길 생겨…돌처럼 단단해질 날 꼭 올것"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아산=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지방이라서 꿈조차 못 꾼다 생각지 않아요. 당장은 성에 안 차도 시작하고 꾸준히 하면 반드시 먹고 살길이 보입니다."
충남 아산의 석재회사인 온양석산에서 11년째 근무 중인 김명성(35) 대리는 "돌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이젠 이게 제 삶의 일부"라며 싱긋 웃어 보였다.
지난해 SNS에 올린 돌 씻는 영상이 940만뷰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던 김 대리지만, 그에게 돌이란 그야말로 돌보듯 무심했던 대상이다.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해 산림청 공무원을 꿈꿨었는데, 전남대 재학 당시 아버지로부터 회사 일을 잠시만 도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채용공고를 내봐도 수개월째 지원자가 없다는 말에 일손을 도왔는데, 막상 돌을 다뤄보니 손톱이 빠지고 다치는 게 다반사일 만큼 거칠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그는 "전북에서 농사만 지었던 부모님이 연고도 없는 충남으로 이주까지 해가며 석재회사를 차린다고 했을 때는 황당하기만 했다"며 "그때는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로 학교로 돌아왔지만, 인맥도, 사업 경험도 없었던 부모님이 직원도 없이 아등바등하는 게 계속 눈에 밟혔다.
아들이라도 도와야 한다는 마음에 2013년 온양석산에 입사했는데, 이렇게 오래 일할 줄은 본인도 몰랐다고 한다.
김 대리는 "아버지 회사라고 하면 막연히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입사 당시 아무것도 갖춰진 게 없었다"며 "성공은커녕 뭔가 커다란 빚더미를 끌어안는 기분이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굴착기, 지게차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채석장에 가 돌을 캐서 가공하고, 운반작업과 고객 전화 응대, 홍보 팸플릿을 들고 영업을 뛰는 것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주 6일 밤낮없이 일했지만, 국내에서 석재를 생산·가공해 판매하던 회사의 영업 환경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건자재·인건비 상승이 겹쳐 해가 갈수록 나빠졌다.
김 대리는 외국에서 돌을 수입해 판매하는 석재유통업으로 업종을 변경하자고 부모님을 설득해 실행에 옮겼다.
막상 영업 형태를 바꿔버리니 기존 거래처의 발길마저 끊겨버렸고, 2022년 하반기부턴 4명이 전부인 직원 월급도 제때 지급하는 게 어려워졌다.
김 대리는 그 무렵부터 SNS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온양석산이 하는 일을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돌만 찍어서 올리던 초반 영상은 반응이 없었지만, 김 대리가 직접 영상에 나오고서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삼각대 하나 놓고 일터에서 찍은 영상, 꾀죄죄한 작업복 차림에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힘찬 인사를 전하는 것은 사실 그의 평소 모습, 일상 그대로다.
구슬땀 흘리며 석재를 설명하고, 돌을 번쩍 들어 보이기도 하고, 작업 도중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모습에 '신선하다'는 반응이 쏟아졌고, 정성 어린 답 댓글도 잊지 않았다.
꾸미지 않은 솔직함이 통했던 것일까. 지난해 7월 올린 돌 씻는 영상이 900만뷰를 넘어서더니 올린 영상마다 수십만 조회수를 넘기며 입소문을 탔다.
20㎏ 단위로 돌을 판매하는 회사 특성상 개인 소비자가 늘지는 않았지만, 영상을 보고 일부러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신규 거래처도 부쩍 생겨 매출이 50%나 늘었다.
김 대리는 "기존에는 베트남에서만 수입했는데, 이제는 인도네시아, 중국으로 확대해 100여종이 넘는 석재를 들여오고 있다. 연 매출도 30억∼40억원 수준으로 예전보다 크게 성장했다"고 밝혔다.
김 대리는 돌을 마치 반려동물처럼 돌본다는 '반려돌' 문화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돌을 소량으로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졌고, 한 구독자의 제안으로 자그마한 돌을 모아 반려돌 세트를 만들었는데, 온라인에 내놓은 지 40초 만에 완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SNS상에서의 인기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이익을 좇을 만도 한데, 수익금 전액을 한국소아암재단에 기부하고 본업에 다시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김 대리는 "영상 덕분에 회사 사정이 나아졌고, 많은 분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제가 오히려 크게 위로받고 단단해지는 경험을 했다. 다른 바램은 없다"며 "SNS로 유명해지는 것보다 돌에서만큼은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언젠가는 저만의 돌 판매점을 운영하고 싶다"며 "석재를 찾는 누구든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질 좋은 상품을 만족스럽게 구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웃어 보였다.
김 대리는 수도권의 큰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대단한 창업을 해 청년 CEO 명함을 갖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든 시작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깨닫는 시기가 와요. 어디를 가서도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와요. 앞날이 막막하고 힘들다고 바로바로 그만두지 말고 조금만 참아보세요. 돌처럼 단단해질 날이 꼭 올 겁니다."
coo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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