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도, 시화전도 준비합니다…팔순 할머니들의 꿈 '한글'

강경호 기자 2024. 8. 1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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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서 어르신 위한 '우리말꿈터' 운영
광복과 6·25 겪으며 정규 교육 못 받아
제작한 시화들, 문집 제작·시화전 계획
[진안=뉴시스] 김얼 기자 = 17일 전북 진안군 진무장재가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이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2024.08.17. pmkeul@newsis.com

대한민국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문맹률 조사는 지난 1966년 있었던 통계청의 인구총조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시행되지 않는다. 의무교육 보급 등으로 인해 문맹률을 조사할 만큼 유의미한 통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으로 피난을 오며 제대로 된 교육 하나 받지 못한 어르신 세대는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상황.

이런 어르신들을 위해 전북의 한 복지센터가 주말마다 어르신들을 초대해 한글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진안=뉴시스]강경호 기자 = 지난 17일 오후 1시 전북 진안군 성수면의 진무장재가복지센터. 이곳에선 주말마다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 수업이 열리고 있다.

센터에 들어서자 화이트보드에 적힌 '바다' '산' '학교'와 같은 단어들이 적혀있고 7명의 할머니들이 이를 열심히 받아적고 있었다.

이날 수업은 단어 뒤에 오는 알맞은 조사를 함께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가르치는 재능기부봉사자 류영우씨와 사회복지사들이 어르신들과 함께 연필을 쥐며 어떤 조사를 써야 자연스러운지를 꼼꼼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책상 위에 펼쳐진 공책 위에 연필로 단어들을 적어가며 한글을 배웠다.

"학교를? 학교을? '학교을'이 맞지 않던가? '학교을'이 맞나 봐~."

아직까지 어떤 조사가 와야 맞는지 모르는 허장례(89) 할머니는 같이 수업을 듣는 할머니와 함께 얘기하며 골몰히 고민을 했다.

류씨가 "앞 단어에 여기 받침이 없으면 '를'을, 받침이 있으면 '을'을 쓰는 것"이라며 '을'과 '를'의 차이를 알려주자 할머니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단어들도 노트에 적어가며 한글 공부에 열중했다.

류씨가 단어 시험을 봐야겠다고 하니 한 사회복지사가 "아유, 어머님들 시험 싫어하는데?"라며 장난스레 말하자 센터 안은 할머님들과 복지사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진안=뉴시스] 김얼 기자 = 17일 전북 진안군 진무장재가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이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2024.08.17. pmkeul@newsis.com


센터 벽면 한 쪽엔 어르신들이 꾹꾹 눌러쓴 시들이 놓여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등 유명한 시와 함께 색연필로 예쁘게 꾸며진 시화(詩畵)를 보자 한 글자, 한 글자를 적기 위한 어르신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이곳에 온 어르신들은 대부분 80세를 넘긴 지긋한 나이를 가진 분들이 다수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태어나 해방과 전쟁 등 혼란스런 시기 속 제대로 된 정규교육 하나 받지 못한 채 가정을 위해 청춘을 바쳤다.

허 할머니는 "일제시대에 학교를 갔는데 2학년 정도까지만 하다가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며 "원래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는데 전쟁 때문에 피난가고 그래서 외갓집인 전북에서 계속 눌러앉아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는 수업도 죄다 일본어여서 아직도 '이찌, 니, 산' 이게 다 기억난다"며 "말은 달랐지만 산수는 똑같으니 산수는 잘 해서 영민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지금도 구구단은 9단까지 다 외우는데 손자가 '할머니 인기 많겠다'며 칭찬해주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정병모(84) 할머니도 "인천에서 살다가 전쟁 터지고 여기 진안으로 피난을 왔다"며 "그 때 형제만 다섯인데 누구는 공부 시키고 누구는 일 시키는 건 안 되니까 (모두들 일만 했다). 집안 먹여살려야 하니 학교는 가지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한글을 모르니 불편했던 적은 없었냐고 묻자 정 할머니는 "누가 뭐라고 말해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많이 불편했다"며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한글도 가르쳐주고 하니 도와주는 우리 선생님들이 참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지난 5월부터 주말마다 어르신들을 센터로 모셔와 직접 시화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글 수업인 '우리말 꿈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이후 이렇게 만들어진 어르신들의 시화를 모아 문집을 만들어 지역신문에 게재하거나 시화전 개최 등을 계획하고 있다.

최주연 진무장재가복지센터 대표는 "이 곳은 작은 마을이지만 한글을 배우려는 어르신들의 열정 하나 만큼은 누구보다 크다"며 "이렇게 열심히 어르신들께서 공부를 하고 자신의 작품을 만드시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어르신들의 작품을 차후엔 문집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등 이후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진안=뉴시스] 김얼 기자 = 17일 전북 진안군 진무장재가복지센터에서 한글공부를 하는 어르신들이 자신이 쓴 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2024.08.17. pmkeul@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luke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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