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던질게요" 감독 교체 결정 거부한다고?…소년가장의 110구 역투, 두산 선발야구 377일 만에 부활하다

김민경 기자 2024. 8. 1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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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 곽빈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수원, 김민경 기자] "진짜 아니라고, 던지겠다고 했습니다."

두산 베어스 우완 곽빈(25)은 올해 선발진의 소년가장이다. 시즌 내내 외국인 원투펀치의 부상과 부진으로 선발진이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곽빈은 홀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곽빈은 올 시즌 24경기에서 11승8패, 134이닝,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높은 편이지만, 두산에서 홀로 로테이션을 거의 거르지 않으면서 규정이닝(144이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0이닝을 넘긴 선발투수도 곽빈이 유일하다. 곽빈은 삼성 원태인, 키움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와 함께 다승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곽빈은 17일 수원 kt 위즈전에 선발 등판해 한번 더 에이스의 책임감을 보여줬다. 7⅔이닝 110구 5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3-2 승리를 이끌었다. 덕분에 4위 두산은 3연승을 질주하면서 시즌 성적 61승55패2무를 기록했다. 3위 LG 트윈스와는 1.5경기차로 좁혔고, 2위 삼성 라이온즈와는 2경기차를 유지했다. 선두 KIA 타이거즈의 독주 체제가 굳어진 가운데 최근 연승으로 2위권 싸움에 가세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곽빈은 구위가 좋은 직구(48개)를 적극 활용하면서 슬라이더(30개)와 체인지업(18개), 커브(14개)를 섞어 던졌다. 직구는 최고 구속 154㎞까지 나왔고, 슬라이더가 예리하게 잘 들어가면서 경기를 쉽게 풀어 갈 수 있었다.

3-1로 앞선 8회말. 곽빈은 마운드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7회까지 투구 수는 92개로 교체해도 무방했으나 곽빈은 더 싸우고 싶었다. 곽빈은 선두타자 천성호를 우익수 뜬공으로 잘 처리했지만, 다음 타자인 대타 문상철을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꼬였다.

곽빈의 투구 수가 딱 100개가 됐고, 1사 1루가 되자 박정배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이승엽 감독이 교체를 지시해 공을 넘겨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곽빈은 이를 거부했다. 본인이 더 던지겠다고 고집 아닌 고집을 피운 것. 박 코치는 당황한 얼굴로 벤치를 쳐다봤다. 중계화면에 잡힌 이 감독 역시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이스가 더 던지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박 코치는 공을 뺏지 않고 일단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곽빈은 멜 로하스 주니어와 승부가 중요했는데, 볼카운트를 1-2로 유리하고 끌고간 뒤 결정구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았다. 2사 1루에서 김민혁과 승부는 매우 어렵게 흘러갔다. 폭투로 1루주자 문상철이 2루로 가자 kt는 대주자 박민석을 투입하면서 득점 의지를 보였다. 곽빈은 풀카운트에서 체인지업으로 승부를 걸었는데, 김민혁의 타구가 2루수와 중견수 사이로 뚝 떨어지는 적시타가 되면서 3-2로 좁혀졌다.

1점차가 되고 투구 수는 110개까지 불어난 상황. 이번에는 벤치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박 코치가 마운드에 한번 더 올라왔고, 곽빈은 공을 좌완 이병헌에게 넘겼다. 이병헌은 강백호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깔끔하게 위기를 넘겼다.

두산은 9회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마무리 투수 김택연이 1사 후 황재균과 김상수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배정대를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만루 위기에 놓였기 때문. 김택연은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오직 직구로 승부하면서 아웃카운트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신본기와 박민석을 연달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경기를 매듭지었는데, 두 타자에게 던진 공 8개 모두 시속 150㎞를 웃도는 직구였다.

곽빈은 승리를 지킨 불펜에 먼저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김)택연이가 올라오는 순간, 나는 우리 중간 투수들이 올라오면 경기에서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다. 택연이는 평균자책점이 1점대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택연이는 진짜 신뢰한다. 나보다 좋은 투수니까"라고 이야기했다.

▲ 두산 베어스 선발투수 곽빈 ⓒ 연합뉴스
▲ 두산 베어스 곽빈 ⓒ 두산 베어스

8회에 투수 교체까지 거부하면서 던진 이유도 설명했다. 곽빈은 "나는 사실 9이닝까지 던지고 싶었다. 투구 수가 안 따라주니까 그게 아쉬웠던 것 같다. 8회에 내가 이닝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억울했다. 사실 좀 좋은 공을 던졌다 생각했는데, 상대 팀 타자가 더 좋게 쳐서 아쉬웠다. 너무 아쉬워서 내가 감정을 조금 표출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코치님이 (마운드에 처음 방문해서)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진짜 아니라고 내가 더 던지겠다고 했다. 감독님도 이제 바꾸자고 했는데 내가 '안 된다. 믿어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두산은 어쨌든 곽빈이 긴 이닝을 잘 버틴 덕분에 상승세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이 감독은 그런 곽빈의 의욕을 나무라지 않고 박수를 보냈다.

곽빈은 "감독님이 엄청 칭찬해 주셨다. 내가 저번에 연습할 때 감독님을 만났는데, 내가 감독님께 '한번만 더 믿어달라'고 했었다. 감독님이 또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그래서 오늘 잘됐던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곽빈은 직전 2경기 내용이 좋지 않아 걱정을 샀다. 지난 6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는 4⅓이닝 4실점(3자책점)에 그쳤고, 11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는 2이닝 6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져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곽빈은 컨디션 난조를 보이긴 했지만, 1주일 만에 정상궤도로 올라오면서 에이스의 임무를 다했다.

곽빈은 "사실 볼넷이 조금 많아져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신감이 진짜 너무 떨어져 있었다. 마운드에서도 자신감이 안 생기고, 그래서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공도 엄청 많이 던졌다. 그러니까 진짜 제대로 준비를 한 것 같아서 그것을 믿고 등판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고 했다.

두산은 모처럼 선발야구를 하면서 웃었다. 곽빈에 앞서 16일 수원 kt전에서는 시라카와 케이쇼가 8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쳐 5-0 완승을 이끌었는데, 두산이 2경기 연속 선발투수 7이닝 이상 투구를 펼친 건 올 시즌 처음이다. 종전 기록은 2023년 8월 5일과 6일 잠실 kt전으로 팀 170경기, 377일 만이다. 당시 브랜든 와델(7이닝 무실점)과 곽빈(7이닝 3실점)이 차례로 호투를 펼쳤다. 곽빈은 2년 연속 진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상 1선발로 한 시즌을 보낸 경험은 곽빈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굉장히 무겁고 힘들더라. 가장 크게 얻은 점은 책임감이다. 공 몇 개를 던지든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제일 강한 것 같다. 나는 이닝과 퀄리티스타트를 많이 하는 것을 항상 목표로 한다. 작년보다는 퀄리티스타트도 많이 한 것 같고, 이닝도 많이 던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아마 내년에는 (최)원준이 형이 해줄 것이다. 원준이 형이 진짜 내년에는 FA기도 하고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같이 잘하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원준이 형이 본인 성적이 안 나와도 진짜 옆에서 많이 도와준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진짜 같이 잘하고 싶다"고 덧붙이며 미소를 지었다.

▲ 두산 베어스 곽빈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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