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때문에 전쟁 직전까지…중국·소련도 등 돌린 '도끼 만행' [뉴스속오늘]

전형주 기자 2024. 8.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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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북한군들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JSA 모습. /사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군이 도끼로 유엔군 장교 2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살해당한 장교 2명은 이날 벌목 작업을 지휘하러 JSA에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 사건은 유엔을 상대로 한 도발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국가 간 갈등을 넘어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미루나무가 부른 참극
1976년 당시 공동경비구역 지도. /사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1976년 8월 판문점 JSA에는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아 유엔군과 북한군 초소가 서로 중첩돼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히 유엔군 측 3초소는 북한군 초소 3개소에 포위당한 지점에 있어 항상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유엔군은 가장 위에 있는 5초소(OP 5)에 올라 항상 3초소를 지켜봐야 했는데, 두 초소 사이에 위치한 미루나무가 자라면서 시야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유엔군 측은 같은 달 6일 병사 4명과 한국인 노무자 4명을 포함한 작업반을 꾸려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했다. 하지만 북한군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작업을 중단시키자, 유엔군은 일단 후퇴했다.

사건 당일인 8월18일, 유엔군은 더는 미루나무를 방치할 수 없다며 가지치기만 하는 것으로 작업을 결정했다. 북한군의 항의에는 베는 것이 아니라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북한군 역시 "가지치기 정도면 괜찮다"고 수긍했다. 북한군은 오히려 한국인 노무자에게 가지를 잘 치는 법에 대해 조언까지 해줬을 만큼 현장 분위기는 좋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JSA에는 이내 전운이 감돌았다. 오전 10시 47분쯤 박철 중위 등 북한군 장교 2명이 30명의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나타나 유엔군 보니파스 대위에게 작업을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보니파스 대위는 박철 중위의 말을 무시하고 작업을 속행했다. 박철 중위가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재차 위협을 가했지만, 보니파스 대위는 무시했다.

분노한 박철 중위는 "죽여!"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북한군은 일제히 도끼를 들고 보니파스 대위에게 달려들어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함께 있던 마크 베렛 유엔군 중위도 공격 받았다.

난투극은 4분간 이어졌다. 보니파스 대위는 현장에서 숨졌고, 베렛 중위는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을 거뒀다. 또 한국군 장교 1명, 사병4명, 미군 사병 4명 등 총 9명이 중상을 입었다.

분노한 미국…준전시 체제 발동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사진=머니투데이 DB

사건 이후 북한은 유엔군이 먼저 북한군에 도끼를 던져 난투극이 벌어졌다며 사죄를 요구했다. 북한의 발표에 미국은 분노했다. 당시 UN군 사령관이자 미 육군 대장이었던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보고가 올라오자마자 바로 전투기에 탑승해 급히 한국으로 입국,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데프콘 3(준전시 체제) 발동에 합의했다.

데프콘 3이 발동된 건 6·25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미국과 유엔군사령부는 병력 1만2000명을 증파했으며, 미해군 7함대와 항공모함을 포함한 6척의 함선을 배치했다. 공대지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전투기 20대를 포함해 B-52 전략 폭격기 3대, 전투기 24대를 발진했다.

한국도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64명을 소집해 결사대를 꾸려 미루나무를 자르는 미 육군 공병들을 엄호했고, 육군 1보병사단 수색대가 인근에 매복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소련·중국도 외면
김승겸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지난해 8월18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판문점 8.18 도끼만행사건' 추모비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제공=합동참모본부

소련과 중국 등 당시 공산권 국가는 미국을 넘어 '유엔'을 공격한 북한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우방까지 등을 돌리자 북한 김일성 주석은 직접 나서 유감 성명을 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당초 "유감 성명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거부했다가 미루나무를 벌목하는 일명 '폴 버니언 작전'이 끝난 시점인 다음날에 결국 수락했다.

사건 이후 판문점 경비초소에는 모호한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확실한 경계가 세워졌다. 경계 밖에 있던 양측 초소는 모두 철거되고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됐다.

미국이 폴 버니언 작전에서 벌목한 미루나무의 일부는 JSA 안보견학관에 전시해 방문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현재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가 세워졌다. 판문점 관람 코스에 버스를 타고 추모비 앞을 지나는 것이 포함돼 있으며 버스 안에서 이 추모비를 볼 수 있다.

전형주 기자 jh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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