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의 등불’ 북부특별자치도…‘공’은 다음 정권으로? [오상도의 경기유랑]
행안부 주민투표 ‘모르쇠’·정치권도 부정적
새 명칭 논란 등 ‘내우외환’…1年 답보상태
김동연 “정부 답 없으면 특자도 독자 추진”
“규제완화·인프라확충·투자유치 방안 공개”
자체 ‘북부 대개발’ 귀결…9월 플랜B 구체화
도의회 국힘 등 지역 정치권 ‘부정론’ 전환
판 뒤집을 ‘솔로몬의 지혜’?…“끝까지 최선”
“북부특별자치도 설치는 이번 정부에서 안 되면 다음 정부에서 될 겁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달 말까지 아무런 답이 없으면 독자정책을 추진하겠다”면서 이번에도 정부를 압박했지만, 실상 방점은 ‘다음 정부에서’라는 어구에 찍힌 듯 보였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이하 특자도) 설치가 윤석열 정부에선 사실상 물 건너갔고, 그래서 경기도가 준비한 대안들(규제 완화, 인프라 확충, 투자 유치)로 갈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앞서 김 지사는 지난해 9월 한덕수 국무총리와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을 만나 특자도 설치를 위한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한 바 있다. 이후 거듭 목소리를 내왔으나 정부는 이를 묵살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 이번 정부에선 ‘불가능’?…주민투표가 발목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특자도 출범의 가장 큰 고비는 주민투표 실시다. 정부가 도의 요청을 묵살하면서 발목이 잡혔고, 조만간 해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행안부 안에서 특자도 관련 주민투표를 고민한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고, 그럴 이유도 안 보이기 때문이다.
주민투표법은 지방자치단체를 나누는 등 국가정책에 관한 사무에 대해 행안부 장관이 주민투표를 발의하도록 했다. 지자체를 분리·설치하려면 지방의회 의견 수렴 혹은 주민투표 방식 중 선택할 수 있는데 김 지사는 많은 도민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표현하는 주민투표 진행을 못 박은 상태다.
그는 “주민투표 외에 지방의회 의결을 통한 (특자도)설치는 고려하지 않는다”며 “도의회와 많은 기초의회 의결을 거치는 건 (갈 길이) 너무 멀다”고 했다.
그런데 여론 수렴과 진작을 통한 주민투표 실시 역시 현재로썬 ‘먼 길’로 보인다. 도는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소멸한 특자도 설치 특별법을 22대 국회 구성과 함께 야당 의원들을 통해 복수로 발의했다. 민주당 정성호(동두천·연천·양주갑) 의원과 박정(파주을) 의원이 각각 제출한 법안의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 역시 다른 한 축인 주민투표 실시 없이는 홀로 움직일 수 없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행안부보다 넘어야 할 더 큰 산은 김 지사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일지 모른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김포의 서울 편입을 담은 ‘메가 서울’ 논란에 강하게 맞섰지만 경기 분도에 대해선 침묵했다. 이때 김 지사는 “후보자들이 특자도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민의를 확인하자”며 총선 공통공약 운동을 제안했지만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귀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하며 ‘서울 편입·경기 분도’ 원샷법을 제시했으나 김 지사는 “정치쇼”라고 반발했다.
정부 입장에선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사안까지 굳이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 ‘친정’ 민주당은 묵묵부답…명칭 논란은 내우외환
김 지사의 특자도 설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도 총선 즈음이었다. 당권을 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다가 ‘재정 분권 없는 분도’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장기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잠재적 경쟁자인 김 지사에 대한 견제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대여 공세의 전선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강했다.
수만 명의 동의를 얻은 비판 청원에 도와 김 지사는 “공론화 과정의 하나로 최종 명칭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특자도야말로 불합리한 수도권 규제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여론전이 이어졌으나 생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사실 이 공모전은 지지부진한 특자도 출범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기 위한 전략의 하나였다. 특자도 출범을 지지하던 북부 지역 시장·군수, 국회의원·도의원, 도민 사이에 균열이 감지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제 도는 지난해 말부터 고개를 들던 ‘플랜B’를 구체화 해야 할 처지가 됐다. 도의 플랜B는 21대 국회 회기 중 끝내려던 주민투표가 좌절될 무렵 처음 고개를 들었고, 내부적으로 다양한 법률 검토와 대안 마련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주민투표’와 ‘지방의회 의견 수렴’ 중 후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게다가 도민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투표보다 대의명분이나 추진 동력이 약하다는 의견이 강했다.
총선에 나선 여야 후보들의 공통공약 추진도 플랜B의 하나였으나 힘을 내지 못했다. 주민투표에 버금가는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였다. 특별법이란 또 다른 통로는 22대 국회 발의로 결실을 보았으나, 처리까지는 난망한 상황이다.
‘북부 대개발(大開發)’의 실천은 이제 거의 마지막 남은 플랜B로 보인다. 지역특화산업의 스마트화와 미래 신성장산업 육성 등이 핵심으로, ‘직장·주거 근접’을 실현할 철도·도로망 확충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양주테크노밸리, 고양일산테크노밸리를 비롯해 최근 경기도가 북부지역 공사를 담당해 개통한 최초의 경기북부 지하철 ‘별내선’이 대표적이다.
김 지사는 후반기 도정 청사진을 제시하며 “계속해서 주민투표를 촉구하고 특별법 통과에 노력할 것이지만 이달 말까지 아무 답이 없으면 경기도가 준비한 규제 완화, 인프라 확충, 투자 유치 등 세 가지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자도를 둘러싼 지역 정치권의 반발은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다.
앞서 도의회 국민의힘은 “도의회 패싱 등 도지사의 불통과 독단은 특별자치도 설치 동력을 분산시킨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래도 지난 6월까지는 정례회 특별위원회 활동 연장안과 특별법 제정 촉구안 등을 내며 특자도 출범에 나름 힘을 실어줬다.
반면 이달 16일 도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의 기자회견은 살이 아릴 정도로 아팠다. 도의 후반기 주요 정책사업을 두고 ‘맹탕에 허점투성이’라며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특자도 출범을 기회경제·태양광사업과 함께 재검토해야 할 정책으로 꼽았다.
주사위는 던져졌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판을 뒤집을 솔로몬의 지혜는 보이지 않는다. 들불처럼 일었다가 묻혀버린 ‘메가 서울’ 논의와 달리 꾸준한 준비를 거쳐 실체를 지녔다는 분도 움직임은 여전히 안갯속에 빠져 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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