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 같다"…'백해룡 평가' 왜 엇갈리나[이승환의 노캡]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지난달 29일 신임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주인공은 당시 후보자였던 조지호 경찰청장이 아니었다. 백해룡 서울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경정)이었다. 그는 조 청장보다 더 큰 주목과 지지를 받았다. 건장한 체격의 백 경정은 국회 청문회장에 무궁화 계급장 달린 제복을 입고 등장해 "세관 마약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취지로 폭로했다. 용산 대통령실의 개입 가능성도 주장해 청문회장을 술렁이게 했다.
지난해 해당 수사를 하던 당시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다. 그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 중엔 경찰 고위직 조병노 전남경찰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도 있다. 조 경무관은 정장 차림으로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외압 목적은 없었다"고 적극 해명했다. 그러나 자신감 없는 모습이 바로 옆에 있던 백 경정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경무관은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찰 서열 네 번째 계급으로, 경정보다 두 단계나 위에 있다.
◇경찰 안에서 본 백해룡, 경찰 밖에서 본 백해룡
청문회 이후 "백 경정이야말로 진정한 경찰 같다"는 여론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해병대원 사망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윤석열 대통령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경찰 내부의 분위기는 경찰 바깥의 여론과 판이하다. 본인만 옳다는 아집과 독선에 빠져 조직과 동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비판이 백 경정에게 쏟아지고 있다. 세관 마약 수사와 관련해 그의 처신과 대응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경찰관을 만나기 쉽지 않다. 과거에도 무리한 수사로 도마 위에 올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백 경정은 언론 브리핑을 닷새 앞둔 지난해 10월 5일 세관 직원들의 마약 범죄 연루 가능성이 담긴 문구를 보도자료에서 빼달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 결국 보도자료 최종본에는 그 표현이 빠졌고 백 경정은 그것이 외압의 결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브리핑 시점상 빠질 만한 내용이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피의자 진술만으로 세관 직원의 연루 가능성을 언론에 발표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다. 그 직원들이 언론 보도를 보고 증거를 인멸할 수 있어 명백한 증거 확보 후 공개했어야 하는 의견도 있다. 어느 경찰관은 "경찰 안에서 보는 백 경정과 밖에서 보는 백 경정은 너무 다르다"며 "시민들은 백 경정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이 얘기를 듣고 언론계 바깥에서 '정의로운 기자'로 평가받는 스타 기자들을 떠올렸다. 대중이 열광하고 지지하는 기자 중 적잖은 인물이 언론계 내부에선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아집과 독선이 심해 조직 체계를 무시하거나 신념에 따라 취재 내용을 취사선택해 기사를 침소봉대한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에 설득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이 왜 그 기자들에게 열광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독자들은 기자 다수를 신뢰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공공성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영혼 없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관계를 비틀고, 취재원과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결탁한다는 인식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심어진 상태다. 언론 불신이 과도하고 억울하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언론계가 자초한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경찰다운 경찰' 기다리던 시민들
시민들이 '존경한다'며 백 경정에 열광하는 것도 경찰 불신에 따른 반작용이 아닐까. 강력한 수사 의지로 상부에 저항하며 범죄 조직 실체에 돌진하는 백 경정의 모습이 영화 범죄도시 '마석도' 같은 영웅을 연상시켰던 것 같다. '경찰다운 경찰'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외압을 폭로하는 백 경정에게서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끼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정쟁에 휘말린 데다 강압 수사 의혹까지 제기되지만 그의 마약 수사 실적은 '역대급'이기는 했다. 2220억 원 상당의 필로폰 74㎏(246만 명분)을 밀반입한 국제 조직원 십수 명을 검거한 것이 수사 중간 단계 성과다. 시도경찰청이 아닌 일선 경찰서 성과로는 이례적일 정도다. 조지호 청장이 인사 청문회 때 언급한 대로 '백 경정에게는 공과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경찰 고위직이라면 백 경정을 둘러싼 경찰 안팎의 평이 왜 이리 엇갈리는지 한 번쯤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백 경정이 경찰 안에서 바깥으로 튕겨 나오듯, 왜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는지도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수십 년간 경찰 조직에서 공정하지 못한 윗선에 불신을 키워왔고, 퇴직을 몇 해 남긴 채 '다크 히어로'(불완전한 영웅)로서 좌충우돌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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