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韓주식 비중 계속 줄이는데… 밸류업 성공하려면 오히려 늘려라?
밸류업 위해 자국 주식 비중 11.5→24.7% 확대한 GPIF
“배당 재투자 고려한 日 증시 10년 수익률 한국의 5배”
2029년까지 국내 주식 비중 13%로 축소하는 국민연금
일본과 달리 30년 후면 고갈 우려… 韓 주식 사지 못해
배당 재투자까지 고려한 일본 증시의 최근 10년 수익률이 한국 증시보다 5배나 좋은 배경에 일본 공적연금(GPIF)의 자국 주식 투자 확대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밸류업 정책을 추진 중인 한국의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확대에 방점을 두고 자국 주식 비중을 계속 줄여나가는 것과 대비된다. 국민연금은 GPIF와 달리 연금 고갈 이슈에 발목을 잡힌 상태라 국내 주식 투자 확대가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 日 주식 비중 11.5→24.7% 늘린 GPIF
18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니케이225 지수는 버블(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1989년 말 3만8915.87포인트를 기록한 뒤 오랜 시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일본 증시가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한 건 2012년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경제의 저성장 기조를 탈피하고자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다. 이후 기업 지배구조 개혁, 일본거래소(JPX)의 상장 유지 조건 강화 등의 조치가 이어지면서 일본 증시는 10년간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이효섭 자본연 금융산업실장은 최근 발간한 ‘일본 자본시장 개혁의 성과 동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일본 증시와 주요국 증시 수익률을 비교했다. 실제 배당 재투자를 고려한 총수익지수(TSR)를 기준으로 보면 최근 10년(2012년 말~2023년 말) 동안 일본 주가지수는 297% 상승했다. 주요국 증시 가운데 1위다. 일본 뒤를 미국 271%, 대만 246%, 독일 120%, 중국 71%, 한국 61% 등이 따랐다. 배당 투자 수익을 고려한 실질 수익률은 일본이 한국보다 5배 높았다는 뜻이다.
이 실장은 일본 증시의 뛰어난 실질 수익률을 만든 동력 중 하나로 GPIF를 꼽았다. GPIF는 올해 3월 말 기준 총자산이 245조9800억엔(약 2289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 가운데 한 곳이다. 총자산이 17조7190억크로네(약 2254조원)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맞먹는다. GPIF는 전체 투자 자산군 중 일본 주식 비중을 2010년 말 11.5%에서 2013년 말 24.7%까지 늘렸다. GPIF는 현재도 자국 주식 비중을 약 25%로 유지하고 있다.
GPIF의 자국 주식 비중 확대가 일본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이 실장의 평가다. GPIF는 단순히 주식만 사모은 게 아니라 의결권을 위임한 자산운용사로 하여금 피투자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촉구하도록 했다. 이 실장은 “GPIF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요구와 의결권 행사 내용 공시를 통해 일본 상장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동참했다”고 했다.
GPIF의 공격적인 자국 주식 매입과 의결권 행사는 밸류업 동참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투자 심리로 이어졌다. 자본연에 따르면 지난해 밸류업 계획을 자율공시한 일본 상장기업의 2024년 3월 말 기준 평균 주가 수익률은 38.03%다. 반면 자율공시하지 않은 상장사의 평균 주가 수익률은 27.51%로 집계됐다. 이 실장은 “이 정도 수익률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이라고 했다.
◇ 고갈 걱정 처지인 국민연금은 자국 주식 투자 힘들어
일본에 GPIF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국민연금이 있다. 국민연금 역시 올해 5월 말 기준 기금 적립금이 1113조5120억원에 달하는 글로벌 연기금 중 한 곳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GPIF와 달리 자국 주식 투자 비중을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 2017년 20% 수준이던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는 지난해 15.9%에 이어 올해 15.4%로 줄었다. 국민연금은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라 2029년 말 국내 주식 비중을 13%까지 축소할 계획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 정책의 방향성을 ‘해외 투자 강화를 통한 수익률 극대화’에 두고 있어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 시스템에서는 1113조원이 넘은 기금 적립금도 불과 30년 뒤인 2054년에 고갈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p)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전체 투자에서 해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난해 51.6%에서 오는 2028년 60%까지 확대하기로 한 이유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를 계속 줄이는 또 다른 이유는 향후 연금 지급을 위한 자산 매각에 본격적으로 나섰을 때 국내 시장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기업의 핵심 주주 명단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손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전략실장은 “국내 주식 비중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연금 지급이 수입보다 많아지는 성숙기에 연간 수십조원을 매도해야 한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 일본 밸류업 정책을 벤치마킹하면서도 일본 연기금처럼 자국 주식 비중 확대에는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GPIF는 국민연금처럼 고갈 이슈에 얽매인 상태가 아니라 밸류업 정책 지원의 일환으로 자국 주식을 사들일 수 있다고 했다. 이효섭 실장은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 시절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에 성공한 덕에 2115년까지 후생연금 적립금이 바닥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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