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여론이 크게 들리겠지만, 아직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용락 기자(=화성) 2024. 8. 1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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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8.17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

"유가족도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고 잘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한 명 더하는 거지만,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아리셀 희망버스를 탔어요. 와서 보니 많은 사람이 모였네요. 유가족들에게는 혐오 여론이나 반응이 자극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에 크게 들리고 상처를 받으시겠지만,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 아리셀 희망버스 참가자 조상필 씨

23명의 사망자가 화재로 숨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유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 50여 개 도시에서 희망버스가 출발했다.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 기획단'이 주최한 이번 행사의 참가차량 수는 버스 55대에 개인차를 포함 100여 대, 참가자는 2000여 명이었다.

참가자의 면면은 노동계 관계자, 종교인, 문화예술인, 학생, 산재 피해 유가족 모임, 세월호 참사 및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사고 유족 등 다양했다. 백도명 서울대 전 보건대학원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 산재 문제를 오래 고민해온 이들은 물론 권영국 정의당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 등 정치인도 함께했다.

희망버스의 첫 행선지는 경기 화성 서신면에 있는 참사현장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참가자들은 화마에 벽채가 무너져 철골이 드러난 아리셀 공장 2동을 둘러본 뒤 그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 헌화했다. 공장을 둘러싼 난간에 참사와 관련한 글을 적어 하늘색 리본을 걸기도 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그 당연함을 응원합니다", "억울한 죽음 헛되지 않게 잊지 않고 함께하겠습니다", "사회적 타살 막아야 합니다. 연대의 힘을 믿어요" 등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화성 남양사거리에 내려 화성시청까지 도보 30여 분 거리를 행진했다. 아리셀 참사를 상징하는 하늘색 리본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참사로 희생된 가족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유족들이 행진 대열 맨 앞에 섰다. 시민들은 "노동 약자 위한다는 윤석열 대통령 아리셀 참사 희생자 유족부터 만나라", "노동부는 방관말고 에스코넥·아리셀 대표 박순관 구속 수사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 17일 경기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일어난 공장 건물 옆 난간에 아리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하늘색 리본을 걸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 17일 경기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현장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 아리셀 희망버스 참가자가 헌화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화성시청 앞에서는 아리셀 희망버스 본대회가 열렸다. 무대에 오른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유가족들에게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김진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은 "지난 55일 동안 유가족들께서는 폭염도 잊고 폭우도 뚫고,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여오셨다"며 "세월호 참사가, 이태원 참사가, 오송 참사가 계속해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관심과 지지와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절망 속에서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유가족들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서울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한범승 씨는 "오늘 참사현장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있던 영정사진으로 처음 희생자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너무 젊고 어리다"며 "누군가의 엄마일 수도, 동생일 수도, 누나일 수도, 아들일 수도, 형일 수도, 아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이어 "인구의 5%가 넘으면 다민족 국가로 칭한다고 한다. 화성시 인구가 100만이라는데 여기에도 5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며 "그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아리셀 참사와 관련한 제대로 된 후속조치가 취해지는 날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고 엄정정 씨 어머니 이순희 씨는 먼저 "26살이 되는 딸을 잃었다. 우리 유가족 중에 자기 딸, 남편, 아내를 잃은 분들이 너무나 많다"며 "그분들을 대표해 희망버스에 지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에게 너무너무나 큰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참사가 일어나고) 55일이 됐다. 아직 (정부와 회사에서) 아무런 답장이 없다. 너무 답답하다"며 "돌아가면 아직도 딸이 냉동실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이 안 보인다"고 슬픈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여기 와주셔서 열심히 힘내서 싸우겠다"며 "저희 유가족들 할 수 있죠?"라고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네"라는 답이 돌아오자 그는 "감사하다"고 말한 뒤 "진상을 규명하라", "박순관을 구속하라",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 "피해자 권리 보장하라" 등 유족들의 요구를 담은 구호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본대회가 끝난 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화성시청 안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유족들은 헌화하고 나오는 참가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참가자들도 같이 고개를 숙이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17일 화성시청 앞에서 열린 아리셀 희망버스 본대회. ⓒ프레시안(최용락)

한편 아리셀 희망버스가 운행된 이날은 참사가 발생한 지난 6월 24일로부터 55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 사이 유족들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수립은 물론 사측에는 성의 있는 교섭을, 정부에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사측은 지난달 5일 딱 한 번 교섭에 나온 뒤 더이상 교섭에 응하지 않고 개별회유 작업에 들어갔다. 박 대표 구속수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용락 기자(=화성)(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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