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에 소아과 생긴다…고향사랑 지정기부가 일으킨 ‘기적’
옥과보건지소 내 진료실 마련
매주 화·금 전문의 방문 진료
하동군, 피학대 동물 재입양
사랑의 목욕쿠폰 사업 호응
“지역에 소아과가 없어 아이랑 병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요. 주 2회라도 가까운 보건소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기대가 큽니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서 생후 15개월 아이를 키우는 허아리씨(33)네 집은 아이가 아플 때마다 비상이 걸린다. 지역에 소아과가 없다보니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멀리 광주광역시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허씨는 “광주까지 차로 30∼40분 걸려 진료·대기 시간까지 포함하면 3∼4시간은 훌쩍 지나간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원을 자주 다니기 부담스러워 한번 가면 5일치 약을 타온다”고 말했다.
허씨처럼 곡성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앞으로 소아과에 가기 위해 드는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크게 줄이게 됐다. 27일부터 곡성군 옥과보건진료소 내에 소아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소아과는 주 2회(화·금요일) 운영된다.
지역에 소아과가 문을 여는 건 고향사랑기부제(고향기부제) 지정기부 덕분이다. 곡성군은 지난해 1월부터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라는 콘셉트의 지정기부사업을 기획해 모금을 시작했고, 5개월 만에 목표액인 8000만원을 초과 달성했다. 현재는 옥과보건진료소 내 소아과 진료실을 만들고 있으며, 법적·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달 27일 진료를 시작한다. 진료는 광주광역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방문해 맡는다.
지역에선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곡성읍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안효숙 약사는 “소아과를 못 가서 급하게 약을 사러 오는 부모님들이 많아 안타까웠는데 앞으로 진료 여건이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로 시행 2년차를 맞은 고향기부제의 실적이 주춤하는 가운데 앞서 6월부터 시행된 ‘지정기부제’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지정기부제는 기부자가 기부금이 쓰일 사업을 직접 지정해 내는 제도다. 지자체가 기부금 활용처를 정해 집행하는 방식에서 한단계 진화한 형태다.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사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앞선 곡성 사례를 이어가고자 곡성군은 7월25일부터 ‘소아과 시즌 2’라는 이름으로 지정기부를 받고 있다. 올해말까지 2억5000만원을 목표로 후원금을 모은 뒤 상주 전문의를 채용해 요일 구분 없이 진료가 가능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16일 기준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모금 전용 사이트인 ‘고향사랑e음’ 홈페이지의 ‘특정사업에 기부하기’ 카테고리에는 전국 지자체가 선정한 지정기부사업 23개가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충남 청양군의 ‘정산 초·중·고 탁구부 훈련용품 및 대회출전비 지원사업’은 이미 모금 목표액을 초과 달성했다. 11월말까지 5000만원을 모으는 게 목표였는데, 13일 기준 5338만5000원이 모여 모금이 종료됐다.
청양군은 군의 제1호 지정기부사업인 ‘정산 탁구부 지원사업’을 집중 홍보하기 위해 웹툰을 제작해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게시하는 등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경남 하동군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2가지 지정기부사업도 호응을 얻고 있다. ‘댕댕이에게 새희망을’과 ‘사랑의 목욕쿠폰’ 사업이 그것이다. 연말까지 각각 2억원과 4000만원을 모금한다는 목표인데, 16일 기준 3310만원·488만원씩 모여 목표액 대비 16.5%·12.2% 모금률을 기록 중이다.
‘댕댕이에게 새희망을’은 유기·학대 위기에서 구조된 동물들의 건강한 회복과 재입양, 반려견 공원 조성 등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사랑의 목욕 쿠폰’은 홀몸 어르신과 장애인 등 지역 취약계층이 경제적 부담 없이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하동군 관계자는 “기부자를 중심에 둔 사고를 바탕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기금사업을 기획하고자 애쓰고 있다”며 “기부와 답례품 선택, 기부금 사용까지 모든 과정에서 기부자가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로 기금사업 진행 과정을 기부자와 공유하는 등 참여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경남 산청군의 청소년 관악합주단 후원(3000만원) ▲곡성군의 노인 돌봄을 위한 마을 빨래방 프로젝트(1억8660만원) ▲화재 피해를 본 충남 서천 전통시장의 재건축(5억원) 등이 지정기부사업으로 등록돼 있다.
지정기부제는 기부자가 일회성 참여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 계속 관심을 갖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기부자가 해당 지역에 관계인구로 자리 잡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만큼 각 지자체는 기부자와 지역민 모두가 공감 가능한 ‘의미 있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기금 운용의 투명성도 더욱 높여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신동철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고향기부제 기금사업을 관계인구 형성과 연계하면 지역 활성화, 지역주민 삶의 질 향상, 지역소멸 대응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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