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후끈한 열대야, 책 읽으며 잠들어볼까

황지윤 기자 2024. 8. 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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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27일째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이어지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깼다. 부산은 23일째, 제주는 33일째 열대야가 지속 중이다. 후끈한 밤 공기에 잠 못 드는 이들이 많을 터. 불면의 밤에 읽을 만한 ‘잠’과 관련된 신간 도서 세 권을 살펴본다.

/위즈덤하우스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박솔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1만6800원

제목이 다했다. 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어쩐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박솔뫼의 에세이. ‘머리부터 천천히(2016)’ ‘미래 산책 연습(2021)’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2022)’ 등을 썼다.

이번 에세이집은 2015~2023년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을 엮었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 ‘그 순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설을 반복해서 읽는다’고 한다. 일본 소설가이자 문예평론가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일본 하드보일드의 전설’로 불리는 하라 료, 칠레의 유명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 등을 향한 작가의 애정 고백이기도 하다.

책의 첫 장부터 우리가 모두 잘 아는 늦여름의 공기가 훅하니 덮쳐온다. ‘볼라뇨를 읽다가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늦여름 오후였고 방에는 작은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중략) 8월 말의 날씨는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가끔 공기에서 가을의 힌트가 느껴지기도 했다….’

/민음사

Littor(릿터) 2024년 8/9월호

민음사 편집부 | 민음사 | 1만3000원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의 이번 커버 스토리는 ‘잠의 힘’이다. 개를 안고 까무룩 잠든 이의 모습이 다디달다. 불면의 밤에 위로가 돼준다. 정희재 작가, 염선옥 문학평론가,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등이 잠에 관해 기고했다.

강영안 교수는 ‘잠이라는 장소 – 레비나스의 존재론과 잠’이라는 글을 썼다. 리투아니아 출신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는 서구 철학의 전통적인 존재론을 비판하며 ‘타자에 대한 윤리’를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레비나스와 잠이 대체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레비나스의 저서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는 잠에 대한 철학자의 단상을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통역 장교로 참전한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포로수용소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틈틈이 쓴 책이다. 글에 따르면, 수용소는 ‘이름도 빼앗기고, 얼굴도 탈취된 상황, 오직 짓누르는 힘만이 휘감고 있는 밀폐된 공간’이다. ‘다만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비인격적인 존재상태’다.

이런 곳에서 진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잠’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잠에 빠진 신체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삶을 누리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에게 잠은 ‘주체 성립을 위한 존재론적 조건’이 된다. ‘신체를 통해 의식은 자리 잡고, 자신을 정립하고, 자신을 누이고, 다시 깨어나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수용소 같은 삶 속에서도 몸을 뉘고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주장이다. 격렬히 잠들고 싶어진다.

/미행

난 지금 잠에서 깼다

안토니 포고렐스키 소설 외 | 김경준 엮고 옮김 | 미행 | 2만3000원

아주 신간은 아니지만 올해 2월 출간된 소설집. 문학전문출판사인 미행에서 19~20세기 러시아 대표 고딕 소설을 모아 출간했다. 11명의 작가가 쓴 12편의 러시아 고딕 소설 중 아홉 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판타지 장르의 창시자로 알려진 안토니 포고렐스키(1787~1836)의 ‘라페르토보의 양귀비씨앗빵 노파(1825)’로 문을 연다. 이는 러시아 최초의 고딕 소설로 평가된다. 소설집 제목은 발레리 브류소프(1873~1924)의 ‘난 지금 잠에서 깼다… -사이코패스의 수기’에서 따왔다. 낯선 시공간의 소설을 읽다 보면 누군가는 매혹돼 잠에서 깨고, 어떤 이들은 오히려 솔솔 잠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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