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8·15 독트린에 ‘일본’ 말고 없는 또 한 가지
김예진 2024. 8. 17. 15:01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핵‘이 사라졌다. 독립과 분단의 역사를 되새기며 일본을 향한 메시지와 분단 극복을 위한 통일 메시지가 제시되곤 하는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는 항상 ‘한반도 비핵지대’의 미래상이 강조돼왔지만, 올해는 과거 발언을 인용하는 식으로만 나올 뿐 ‘현 시점에서 한반도에서 핵보유를 불용한다’는 취지의 대통령의 선언은 등장하지 않아 눈길을 끈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핵’은 딱 한 번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재작년 광복절의 ‘담대한 구상’에서 이미 밝힌 대로, 북한이 비핵화의 첫 걸음만 내딛더라도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즉각 시작할 것“이라는 대목이었다. ‘자유’를 50번 말한 것과 대비된다.
‘3대 통일 비전, 3대 통일 추진전략, 7대 통일 추진방안(액션플랜)’등 통일이 경축사의 핵심이었음에도 통일된 한반도 미래상에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핵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선언은 최근 10년치 경축사에서 빠진 적이 없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제69주년 경축사에서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위험하다.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위험을 물려 줄 수는 없다”, “지금같이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로 대한민국에 위협을 가하고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 등의 언급이 나왔다.
2015년 70주년 경축사에서는 ”북한은 핵개발을 지속하고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서 우리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민족 분단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도발과 핵개발을 즉각 중단하고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의 길로 나와야 한다“, “평화통일을 이룬 새로운 한반도는 핵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8000만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16년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진정한 광복은 8천만 민족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더 이상 이산의 아픔과 고통이 없는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고,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에서 핵과 미사일, 전쟁의 공포를 걷어내야만 한다“, “이 땅의 평화는 물론,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북한 당국에 촉구한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단하기 바란다“,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북한 주민 여러분은 핵과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라며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라고 했다. 또 “정부의 원칙은 확고하다.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된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선 “북·미 간의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인 노력도 함께해 나가겠다”,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다“,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북핵 위협이 줄어들고 비핵화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는 등의 언급이 나왔다.
2019년 74주년땐 “평화경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위에 북한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계속해 나가는 데서 시작한다“, 2020년 75주년땐 “남북 협력이야말로 남·북 모두에게 있어서 핵이나 군사력의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안보정책”,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전쟁 위협을 항구적으로 해소하며 선열들이 꿈꾸었던 진정한 광복의 토대를 마련“이 언급됐다. 2021년 76주년땐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이 제시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 2023년엔 한반도에서 핵불용 입장을 천명했다.
2022년 77주년 경축사에선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에 필수”,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고 했다. 78주년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간에 긴밀한 정찰자산 협력과 북한 핵 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담대한 구상’을 흔들림 없이 가동해 압도적인 힘으로 평화를 구축함과 동시에, 북한 정권이 핵과 미사일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오도록 국제사회와 공조할 것”이라고 했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보수 일부 지지층을 의식하거나, 북핵협상 무용론과 북핵 인정 및 남한 독자 핵무장론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 외교부에서 비핵화 협상의 실무급이 모여있던 한반도평화교섭본부(6자회담 수석대표)가 사라지는 등의 정부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광복절 경축사가 발표된 15일 ‘핵무장 천만인 국민서명운동 범국민공동추진본부’가 출범하고 서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운동본부에는 윤석열정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지낸 국민의힘 임종득 의원과 같은 당 유용원 의원이 고문으로 참여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8·15 통일독트린에 ‘한반도 비핵지대’ 입장이 분명하지 않고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당국자는 “한반도 비핵화는 당연한 전제로 포함돼 있다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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