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풀어 집값 잡는다? 과거 정부 돌아보니…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기 그린벨트 해제 이후에도 집값 올라
(시사저널=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위해 서울 그린벨트 해제에 나섰지만 현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 물량이 적은 데다 입주까지 10년 넘게 소요되는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과거 정부에서 실패했던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정부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내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8만 가구(올해 5만·내년 3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공급되는 5만 가구 중 1만 가구를 서울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해제 대상지는 오는 11월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 그린벨트 규모는 149.13㎢로, 서울 전체 면적의 25%에 해당한다. 지역별로 서초구가 23.88㎢로 가장 넓다. 이어 강서구(18.92㎢), 노원구(15.91㎢), 은평구(15.21㎢), 강남구(6.09㎢), 송파구(2.63㎢) 순이다.
해제 대상지로는 구역 내 훼손이 심해 환경영향평가 3~5등급지에 속한 그린벨트가 거론된다. 통상 3등급 이하는 농지로 이용돼 보전 가치가 낮다고 본다. 서울에서 3등급 이하 그린벨트는 29㎢로 추정된다. 3등급 이하는 국토교통부가 지자체 협의를 거쳐 직권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다.
서초·세곡 등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
특히 서울 강남구 세곡동, 서초구 내곡·우면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가 해제 1순위 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은 농지 중심으로 구성돼 비닐하우스 등이 설치되면서 더 이상 녹지로 보기 어려운 곳이다. 대부분 3등급 이하 그린벨트로 알려져 있다. 노원·은평·강북 등 강북권은 대부분 산이어서 택지 개발이 어려워 주택 대상지로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에서 그린벨트가 훼손된 지역이 주로 서초·강남에 몰려 있다"며 "강북은 대부분 산이지만 강남은 평지에 위치해 해제 대상으로 거론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에 나선 건 공급 물량이 줄어 집값이 꿈틀대자 서울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서 시작한 집값 급등세는 현재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 지역까지 번지고 있다. 정부는 서울 및 인접 지역의 그린벨트에 주택을 공급해 수요를 분산시킨다는 계획이다. 재건축·재개발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택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그린벨트 해제에 나선 배경으로 꼽힌다.
과거 정부에서도 집값 안정화를 목적으로 그린벨트를 풀었다. 노무현 정부는 세금과 거래 제한으로 수요를 막고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대규모 공급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서울에서 3.74㎢ 규모의 그린벨트가 풀렸다. 2003년 은평구 진관내·외동과 구파발동 일대 59만3000㎡ 그린벨트를 해제해 은평뉴타운 조성에 나섰다. 이후 2005년 송파구 마천동을 시작으로 강남구 세곡동, 중랑구 신내동 일대 등의 그린벨트를 풀었다. 위례신도시에 포함되는 송파구 거여동, 장지동 일원의 그린벨트 해제는 2008년에 이뤄졌다.
그린벨트 해제 기조는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5.0㎢ 규모의 그린벨트 해제에 나섰다. 이 가운데 2009~10년 강남구 자곡·세곡·수서동 일대를 비롯해 서초구 우면·내곡·원지동 일대 강남권 그린벨트 2.5㎢를 해제했다. 2012년에도 강동구 고덕동·강일동·상일동 일대 147만㎡ 그린벨트를 풀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그린벨트 해제 규모가 줄어들었다. 당시 수도권 3개 지역에서 1.36㎢의 그린벨트를 풀었다. 서울 문래, 경기 과천 주암, 의왕 초평 등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그린벨트 해제가 추진됐지만 서울시의 반대 등으로 무산됐다.
시장에선 집값 안정화를 위한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강남권 그린벨트를 풀어도 대규모 공급이 쉽지 않은 데다 한꺼번에 해제하기 어려워 공급 물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주택을 공급하기까지 빨라야 5년, 길면 10년 이상 걸리는 만큼 현재의 아파트값 상승세를 잡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린벨트 풀어도 파급효과 크지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그린벨트 해제는 물량이 얼마나 공급되고 이를 통해 시장 안정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1만 가구 정도면 '올림픽아크포레온'(1만4000여 가구)보다 적은 물량으로 강남 집값을 안정화시키거나 서울 전역에 파급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사례만 놓고 보면 그린벨트 해제와 집값 안정의 연관성이 떨어져 보인다. 실제로 부동산 활황기였던 노무현 정부 시절 그린벨트를 풀고 주택을 공급했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한국부동산원의 월별 주택가격동향을 살펴보면 2007년 1월 매매가격지수는 81.6에서 그린벨트 해제(7월) 직후인 9월 86으로 뛰었다. '최후의 보루'인 그린벨트를 활용하면서까지 실행한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2008년 세 차례 그린벨트를 풀었지만 지수는 같은 해 9월 98.3까지 치솟았다. 2009년 들어 지수가 소폭 하락했는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그린벨트 해제 여부와 관계없이 집값이 내려갔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린벨트 해제가 또 다른 로또 청약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곳이 강남권 보금자리주택지구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세곡2지구 1단지로 공급된 강남구 수서동 '강남데시앙포레'(2014년 8월 입주)는 전용면적 84㎡ 실거래가격이 17억원 안팎이다. 2013년 4억원 중반대에 공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10년 새 4배 가까이 뛴 셈이다. 같은 기간 내곡1지구에 공급된 서초구 내곡동 '서초더샵포레' 역시 전용 84㎡ 분양가가 4억원 중반대였지만 현재 실거래가는 14억원이 넘는다.
그린벨트 내 일부 소유주의 배만 불리거나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에 땅을 매수해 일부러 녹지를 훼손한 일부 땅 주인들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이 돌아갈 수 있다"며 "3기 신도시 택지 개발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이 있었던 만큼 강남·서초 그린벨트 땅 주인에 대해 좀 더 면밀한 현황 조사를 진행한 후에 정책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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