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받은 5억 ‘세금 0원’, 일해서 5억 벌면 ‘세금 1억’

한겨레 2024. 8. 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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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상민의 나라살림
상속세 감세 논란
근로소득세보다 낮은 상속세율
상위 1%의 실효세율 고작 10%
부가세·소득세·건보료 놔두고
‘상속세 감세’ 명분 설득력 없어
지난 6월25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윤석열 정부의 상속세 완화 등 감세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 감세를 추진한다. 명분은 여러 가지다.

첫째, 이중과세라는 주장이다. 소득세를 낸 재산에 상속세를 또 내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소득세와 상속세는 납세자가 다르다. 소득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짜장면집 사장에게 짜장면 값을 지불해도 짜장면집 사장은 사업소득세를 낸다. 마찬가지로, 소득세를 내고 남은 돈을 상속인에게 주어도 상속인이 상속세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조세의 대원칙은 개인 과세다.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에는 소득세를 부과하면서, 상속을 통해 얻은 소득에만 특별히 세금을 면제해 줘야 할 논리는 빈약하다.

둘째, 우리나라 상속세가 다른 나라에 견줘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상속세 때문에 이민까지 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민과 상속세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민 가도 상속세는 내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모두 함께 이민 간 사례는 극히 일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세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나라의 슈퍼 리치가 상속보다 기부를 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4년 ‘포브스’를 보면, 세계 최고 부자 100명 중 한국인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20대 젊은 나이의 최고 부자만 놓고 보면 상위 5명 가운데 2명이 한국인이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장녀(22)와 차녀(20)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내로라하는 초고액 자산가 자녀와 손자를 모두 제치고 한국의 20대가 상위에 있다.

2016년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를 보면, 우리나라에선 상속으로 부를 일군 사람이 74%로, 세계 67개국 중 5번째로 높다고 한다. 일본은 19%, 미국은 29%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보다 세습 부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쿠웨이트, 핀란드, 덴마크, 아랍에미리트뿐이었다.

상속세 실납부는 상위 5%뿐

셋째, 상속인의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근로소득세와 같거나 작다. 소득세 최고 세율은 국세의 10%인 지방소득세 추가분까지 합쳐 49.5%로, 상속세 최고 세율 50%와 사실상 같다. 그런데 건강보험료 약 3.5%를 추가로 내니 실제로는 ‘소득세+건강보험료’의 부담이 상속세보다 더 크다. 특히, 상속세는 공제 금액이 크다. 5억원의 상속 소득이 생기면 기본 공제로 내는 세금은 0원이다. 그러나 노동 소득으로 5억원이 생기면 내야 할 세금은 1억원이 넘는다.

실제로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위별 상속세 과세액 대비 실효세율 분석’을 보면, 상속이 발생한 사람(피상속인) 중 상위 1%의 상속세 실효세율은 약 10%에 불과하다. 실효세율이란 상속세 과세액 대비 결정세액의 비율을 의미한다. 상위 1%에 속하지 않는다면 실효세율은 한자릿수에 그친다. 상속세를 1원이라도 내는 계층은 상위 5~6%까지다. 나머지 약 95%의 피상속인 재산에는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넷째, 물가가 올랐기에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오른 것은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짜장면 가격도 올랐고 내 월급의 명목상 금액도 올랐다. 과거에 짜장면이 600원이었을 때 짜장면 한 그릇 먹고 부가가치세 약 60원(정확히는 54.5원)을 냈다. 지금은 짜장면 가격이 6천원이다. 짜장면 한 그릇당 무려 600원의 부가가치세를 낸다. 내 월급도 올랐다. 실질 임금이 오른 것이 아니라 물가만큼만 올랐는데 세금은 훨씬 더 많이 낸다. 실제로 10년 전 우리나라 소득세수는 약 50조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 소득세수는 130조원 가까이 된다. 내 실질 월급보다 세금은 훨씬 많이 올랐다.

특히 월급에 따라 일정 비율을 내는 건강보험료는 금액뿐 아니라 납부 비율도 높아졌다. 2010년 월급의 5.3%였던 건강보험료율은 거의 매년 올라 올해는 7.1%를 낸다. 그런데 왜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건강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상속세만 깎아주어야 할까?

국가 재정은 효율적인 공동구매

그럼, 상속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건강보험료율을 모두 깎는 것은 어떨까? 세금은 안 내면 안 낼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정부에 내는 돈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행정서비스로 되돌아온다. 건강보험료율이 지속해서 올라 건강보험 보장률도 지속해서 증가했다. 10년 전 국민건강보험 지출액은 44조원에 불과했지만, 올해 건강보험 지출액은 약 100조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료율을 깎으면 결국 우리의 사보험 지출액이 증가한다.

10년 전에는 기초연금도 없었다. 현재도 우리나라의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래도 노인 자살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한 때가 바로 기초연금을 도입하면서다. 그 이후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 1위’에서 지금은 ‘그냥 1위’가 됐다. 정부가 돈을 투자해서 출생률을 높이기는 어렵지만, 자살률은 유의미하게 개선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국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세금도 더 소중해진다. 물가 상승에 따라 아파트 가격, 짜장면 값, 월급, 건강보험료가 모두 오르는데 상속세만 감해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세금을 내리면 기초연금, 아동수당은 물론 국방비와 연구개발(R&D) 예산까지 모두 깎아야 한다. 국가 재정은 일종의 공동구매다.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세금을 통한 공동구매로 더 싸게 살 수 있는 상품이 있다. 공동구매가 아니면 시장에서 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

2023년 단 100명의 피상속인에서 발생한 상속세 결정세액이 우리나라 전체 상속세 결정세액 12조3천억원의 약 60%(7조3천억원)를 차지한다. 즉, 우리나라 상속세수는 단 100명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상위 1% 피상속인 3600여명이 전체 세수의 약 90%를 차지하는 구조다. 정부의 상속세와 증여세 감세안에 따라 5년간 18조6천억원의 세수가 준다. 이 말은 18조6천억원의 감세로 생기는 혜택의 60%가 최상위 0.03%에게 돌아가고, 혜택의 90%까지도 상위 1%가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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