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 대신 학교 수업시간을 늘리는 건 어떨까[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명대사다. 요새 기자가 친정어머니께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딸이 밥을 잘 챙겨 먹는지 물으시는 게 아니라 손주들 이야기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손주 세 명이 점심은 잘 먹는지, 엄마가 챙기고 있는지 물으시는 건데, 기자가 “알아서 사 먹을 거예요” 하면 깊은 한숨을 쉬신 뒤 “내가 오늘도 가보마” 하신다. 친정은 차로 30분, 막히면 1시간 넘는 거리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 모두 학교 돌봄교실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2학년 때부터는 소수만 가능했고 3학년 때부터는 그마저도 안되게 되었다. 돌봄교실에 갈 수 없으니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집과 방과후, 학원 등을 오가다가 홀로 점심을 챙겨 먹어야 했다. 그동안은 엄마께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 대화를 나누다 무심코 이야기한 뒤론 내내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엄마께 감사한 한편으로 돌봄교실의 부재가 다시금 아쉽게 느껴졌다.
학교의 공백…학원·방과후로 누더기 깁듯 기울 수밖에
사실 교내 돌봄을 이용하지 못하는 게 특히 아쉽고 답답할 때는 방학이 아니라 학기 중이다. 아이들 학교는 평소 너무 일찍 끝난다. 어린이집 다닐 때는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맡길 수 있었기에 아이 일정에 대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니 귀가 시간은 오후 1, 2시로 당겨졌고 아이돌보미 선생님도 오후 5시가 돼야 출근하시기에 공백시간이 생겼다. 돌봄교실에 방과후학교를 이것저것 신청해서 누더기 깁듯 기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돌봄교실 혜택마저 사라진 것이다. 신청할 수 있는 방과후의 선택 폭도 줄어서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넣어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렇게 기자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에 보내기 시작하는 부모가 많다. 정부와 여러 민간기관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 때까지 10명 중 6명꼴이던 사교육 이용 아동이 초등학생이 되면 8~9명으로 훌쩍 증가한다고 한다. 물론 정말 교육을 위해 보내기도 하겠지만,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울 겸 돌봄 목적으로 보내는 경우도 적잖다. 그렇게 하나둘 보내다 보면 비용 부담도 커진다. 민간 학원은 최소한으로 아이당 한두 개만 보내고 있는 우리집도 방과 후 교육비용으로 매달 상당한 돈을 쓰고 있다.
사실 돈보다 더 걱정인 건 아이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점이다. 방과 후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계속 이동해야 한다. 학원 차량을 태울 때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도 아이 학원차에서 안전벨트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 걸 발견해 선생님께 슬며시 꼭 채워주십사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늘봄 확대한다지만 긴 공백 깁는 현실 그대로
교육부는 최근 2학기부터 ‘늘봄학교’를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늘봄학교란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이 교내에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초등 대상 돌봄 체계로, 기존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의 확대·보완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초1을 우선 대상으로 1학기 전국 초교 절반에서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2학기부터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초 1, 2엔 성장, 발달에 맞는 프로그램을 연중 매일 2시간 무료 제공하고, 향후 초 3~6에는 기존 방과후교실보다 더 다양한 수업을 제공해 학교에서 책임지는 방과 후 시간을 늘리겠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지만 한 편으로는 드는 생각은 ‘누더기는 그대로구나’다. 부모는 방과 후 기나긴 공백시간을 여전히 누더기 깁듯 기워야 하는데, 다만 이제 옷감이 공짜라거나 전보다 더 다양한 천을 쓸 수 있게 되는 정도랄까.
늘봄학교가 도입돼도 3~6학년인 우리 아이들 매 학기 방과 후 시간표 짜야 하는 일엔 변함이 없다. 학기 초마다 기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 수행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네 아이의 방과 후(막내는 하원 후) 일정표를 짜는 것이다. 특히 방과 후 공백이 긴 초등학생 세 명이 복잡한데, 하교 직후부터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오시기까지 서너 시간의 시간 동안 어떤 방과후수업 혹은 학원에 가게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각자의 의사는 물론 시간, 동선, 동행 일정 등을 감안해야 하다 보니 난수표 짜는 것처럼 복잡하기 그지 없다.
그냥 학교 수업 시간을 늘리면 어떨까. 난수표 작업을 하느라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나면 늘 드는 생각이다. 늘봄학교 1, 2학년 일정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연중 매일 2시간 무료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데 사실상 학교 의무교육이 2시간 연장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주별로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미국의 학교는 대체로 오후 3시 전후 끝난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자율적인 클럽활동이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 아이들은 4~5시까지 학교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학교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 아빠의 퇴근 시각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현재 한국의 방과후, 돌봄, 늘봄학교 체제도 오후 늦게까지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지만 이건 학교 수업이 아니고 별도 서비스이기 때문에 비용이 들어간다. 관리주체도 학교가 아니다. 학교는 장소만 빌려줄 뿐이다.
한국에서 수업시간을 늘리자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됐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18년 정부와 교육 관련 기구에 초등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늘리는 내용의 안건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의 반대가 거셌고 일부 학부모들도 반발하면서 별달리 이야기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좌초됐다.
당시 학부모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이가 학교에 너무 오래 있게 된다’, ‘사교육 시간만 뒤로 더 늘어날 것이다’ 등이다. 지금은 유효하지 않거나 극복 가능한 사유로 보인다. 최근 교육부가 실시한 늘봄학교 만족도 조사에서 학부모 80% 이상이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양질의 교육과 돌봄 서비스만 있다면 초등학생들의 학교 체류를 늘리는 늘봄학교에 학부모 절대다수가 지지를 보냈다는 뜻이다. 방과후교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다양화하고 질을 높이면 사교육 대체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미 끝난 이야기?’ 다시 얘기해 볼 수 없을까
물론 인력 충원과 각종 지원이 함께 해야 한다. 현재 교원으로 일만 늘리는 식이 되어선 누구도 달가울 리 없다. 교사들은 지금도 박봉에 보람도, 명예도 예전 같지 않은 환경에서 소신으로 임하고 있다.
교육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학교 3시 방안에 대해 물어본다. 다들 ‘이미 끝난 이야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안타깝다. 하교와 부모 귀가 시각 사이의 공백을 계속 늘봄, 지자체, 기타 제도를 통해 메우면 비용도 배로 들고 관리도 복잡하다. 쉽게 말해 비효율적이다. 또 문제인 것은 학생 간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과후가 좋아진대도 방과후를 선택할 수 없는 아이, 방과후보다 더 좋은 사교육을 선택하는 아이가 갈릴 것이다. 당장 무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다시 이야기를 꺼내보면 좋겠다. 새로운 돌봄을 계속 구상하는 대신 현 공교육 안에서 해결해보는 방안을.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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