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 매력은 '노 웨이 아웃', 믿고 보는 배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노 웨이 아웃 : 더 룰렛'(이하 '노 웨이 아웃') 주요 인물 중 안명자(염정아)는 유일한 여성이다. 사회적 서열은 등장인물 중 가장 높은 시장이다. 그리고 또 하나, 명자는 이 드라마의 유일한 '웃음캐'다. 피비린내 나는 추격전이 가득한 '노 웨이 아웃'은 명자가 등장할 때면 일종의 '웃음 버튼'을 발동시킨다. 폭력적인 장면에 눈이 피로할 때쯤 명자의 등장으로 시원하게 웃음을 준다. 선역보다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염정아라 가능한 여성 '희극 지존'의 마법이다.
비리를 저질러 구속될 위기에 처한 명자는 보좌관 병민(임수형)과 사무실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병민아 오랜만에 그거 한번 보자"라고 제안한다. 병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쫘쫘~ 아싸! 기호 1번 안명자. 안명자와 함께 일어서는 호산. 따뜻한 사람, 능력 있는 시장. 자신보다 헌신, 앞장서는 사람. 난 믿어볼래요. 안명자 1번(중략)"이라고 구성지게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 노래는 명자의 호산 시장 선거송이다. 명자는 병민의 구성진 가락에 흥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함께 춤을 춘다. 흥에 취한 명자의 표정과 춤사위는 예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명자는 줄담배를 피우며 시도 때도 없이 욕을 하고, 무엇보다 제 잇속이 우선인 인물이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기회로 삼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 그는 보좌관과 격없이 지내며 진한 의리를 나누고 자신보다 지체 높은 이들과 마주해도 "제가 오십견이 왔거든요. 그래서 총대를 못 매요. 어깨 아파서"라며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명자는 분명히 악인에 가깝지만, 그 속내만큼은 이상하게 투명해서 미워할 수가 없다. 이 같은 모순된 속성의 명자는 염정아를 만나 희귀한 사랑스러움을 두르며 호감 캐릭터로 애정을 받고 있다.
염정아의 연기는 드라마 제목 그대로 출구 없는 연속 재생을 누르게 하는 힘이다. 유일한 여자 캐릭터라 꽃 같은 예쁜 모습이 아닌, 마르고 도회적인 외관과 달리 누구보다도 야욕 강하고 망가지는데 거리낌 없는 불의 모습을 한 의외성으로 말이다. 그는 심장을 조이는 장르물 '노 웨이 아웃'에서 홀로 희극을 연기하며 시청자가 숨 막힐 때쯤 시원한 숨구멍이 돼준다.
염정아는 이러한 의외성으로 넷플릭스도 주름 잡고 있다. 최근 공개한 영화 '크로스'에서 그는 형사로 나온다. 남자가 득실대는 형사과의 유일한 여성 에이스이자 사격 은메달리스트에 빛나는 뛰어난 총 실력으로 범죄를 막는다. 총을 쥔 그의 두 손은 멋짐이 가득하고 코미디물인 만큼 웃음을 주는데 아낌이 없다.
미스코리아 선 출신인 염정아는 '미녀 배우'로 불리며 도회적인 캐릭터를 오랫동안 맡아왔지만, 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고 성장하며 이제는 '코미디의 여왕'으로 거듭났다. 염정아는 그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워 호감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향한 편견을 조금씩 깨는 과정을 대중에게 납득시켰다. 철딱서니 없는 노처녀 선생님으로 나온 '여선생 VS 여제자'(2004)로 한 발, 특별출연한 영화 '전우치'(2009)에서 푼수끼 넘치는 여배우로 한 발, 영화 '완벽한 타인'(2018)에서 천연덕스러운 주부 연기로 또 한 발, 영화 '외계+인 1,2부'(2022, 2024)에서 조우진과 케미스트리 터지는 도사 연기로 코미디 장전을 차곡차곡 쌓았다.
염정아의 대표작 영화 '장화, 홍련'(2003)과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모습을 떠올리면 '노 웨이 아웃'과 '크로스'에서의 모습은 더욱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날카롭게 눈을 뜨던 서늘하던 그가, 이제는 웃기지만 사랑스럽게 두 눈을 치켜뜬다. 무거운 정극도, 가벼운 희극도 모두 다 가능한 그이기에 다음엔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어떤 장르에서건 염정아의 연기는 믿고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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