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약혼에 격분해 귀를 자르다니”…정신병원에 갇혀 그림 그리던 남자의 반전 [나를 그린 화가들]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닐까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과 ‘별이 빛나는 밤’ 등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정작 고흐가 살던 시기에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무관심했죠.
고흐는 요즘으로 치면 ‘N포 세대’의 전형이었습니다. 사랑에 실패한 그는 결혼하지 못했고, 아이도 갖지 못했습니다. 친구도 많지 않았죠. 고흐의 그림은 돈이 되지 않아 그는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의 예술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고흐는 자주 상처받았습니다.
그래도 고흐는 밝고 따뜻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내가 늙고 추해지고 고약해지고 병들고 가난해질수록, 나는 더 멋지게 구성된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로 보복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죠. 이번 연재에선 세상을 떠난 후에야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고흐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탐구하겠습니다.
고흐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7세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스스로 늦었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고흐는 자신을 믿고 그림의 길에 들어섭니다.
당시 고흐에게 가장 영향을 준 화가는 장 프랑수아 밀레였습니다. 밀레는 시골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린 화가이죠. 고흐는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이 그림의 주된 소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파리에서 고흐는 인상주의 화풍을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그렸던 어두운 색채는 파리에 오면서 밝고 생동감 넘치고 선명하게 바뀌었습니다.
예술가 친구들도 사귀었습니다. 서른 세살의 고흐는 펠릭스 코르몽의 화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요. 다른 학생들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았죠. 그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에밀 베르나르 등 화가와 우정을 쌓았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기사는 ‘나를 그린 화가들’ 9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고흐에게 탕기 영감은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웃는 표정이 아니지만 그의 얼굴에서 선한 성격이 드러납니다. 고흐는 탕기 영감이 좋아하던 일본 판화인 우키요에를 배경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무리 돈독한 형제여도 같이 살면 부딪칠 수밖에 없죠. 한 아파트에서 살던 고흐와 테오의 관계는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또 고흐는 테오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썼는데, 파리는 돈이 많이 들었죠. 파리에 싫증이 난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로 이동했습니다.
배경은 넓은 붓질이 돼 있어 평면적으로 보입니다. 반면 고흐는 꽃을 조금 다르게 그렸습니다. 꽃잎과 잎의 방향에 따라 자유롭게 붓을 놀렸습니다. 개성과 역동성이 엿보입니다.
룰랭의 키는 2m에 가까웠다고 해요. 앉아있는 자세에서도 룰랭의 체격이 느껴집니다.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지 않나요? 고흐와 술을 마시다가 급하게 모델을 선 모습이 상상됩니다.
고갱은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의 작품 거래상인 테오의 권유를 받고 아를로 갔습니다. 테오는 고갱을 설득하며 그의 빚을 다 갚아줬습니다.
고갱과 지내면서 고흐는 자신과 고갱의 의자를 그렸습니다. 인물이 앉아 있지는 않지만, 이 의자들은 고흐와 고갱의 성격을 보여줘 ‘얼굴 없는 초상화’의 역할을 합니다.
고흐와 고갱의 생활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함께 많은 주제를 연구했고, 서로의 작품을 비교하고 예술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하지만 고갱이 아를에 온 지 9주가 지났을 무렵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졌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두 사람은 말다툼을 벌였는데요. 고갱은 고흐를 내버려 둔 채 노란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고갱의 회상에 따르면 고흐는 그날 고갱을 면도칼로 위협했다고 합니다.
이후 고흐는 면도칼을 들고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잘라낸 귀를 매춘부에게 전해줬다고 알려졌죠. 한편 고흐가 귀 전체가 아닌 귓불을 잘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고흐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당시 고흐는 동생 테오로부터 약혼을 알리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던 유일한 상대인 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고흐가 공황 상태였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을 안에는 우뚝 솟은 교회가 있습니다. 주택들은 불을 환히 밝히고 있죠. 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가족들이 함께 사는 이 집들은 아늑해 보였을 것입니다.
앞쪽 왼편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풍경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밤하늘을 향해 꿈틀거리듯 역동적으로 솟아올라 있습니다.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과 이 작품을 비롯해 세 점을 단 일주일 만에 그렸습니다. 병약한 상태였지만 전성기를 구가한 셈입니다.
그런 고흐를 테오는 항상 지지해줬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과 ‘해바라기’를 비롯한 고흐의 그림에 대해 “정말 훌륭하다”며 “언젠가는 분명 큰 평가를 받게 될 거야”라고 응원했습니다. 또 미술계가 빠르게 변해간다는 걸 알리며 “지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그 인기를 영원히 누리지 못할 거야. 우리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걸 기뻐해야 하는지도 몰라”라고 했죠.
고흐는 테오를 그림의 공동 작가라고 여겼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우리가’ 그림을 그렸다”고 표현했고 “내 작품에 무언가 좋은 점이 있다면, 그 중 절반은 네가 한 것이라고 생각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지내던 마지막 달, 고흐는 테오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테오와 그의 부인 요안나는 삼촌의 이름을 따 아기의 이름을 빈센트로 지었죠. 고흐는 자신처럼 불행한 삶을 살면 안 된다고 처음에 그 이름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아이가 고흐와 같이 참을성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염원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꽃이 핀 가지가 뻗어 있습니다. 꽃나무를 그린 모습에 동양적인 화풍이 묻어납니다. 평소 고흐는 거친 붓질을 했지만, 이 그림에서 만큼은 배경을 차분하게 묘사했습니다. 고흐는 당시 꽃 핀 나뭇가지 그림 중 이 그림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밝혔습니다.
고흐의 삶은 순조롭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37세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1890년 7월 2일 고흐는 자신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습니다. 총알이 고흐의 가슴에 박혔는데, 안전하게 제거하는 건 불가능했죠. 이로부터 이틀 후 고흐는 숨을 거둡니다. 테오의 말처럼 고흐는 세상에서 한 번도 누리지 못한 평온을 그제야 찾았습니다.
다만 고흐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고흐가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고 동네 불량 청소년들이 쏜 총에 맞았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흐는 그림 도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총에 맞은 후 불량배들이 그림 도구를 훔쳐 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도 고흐는 현실의 고통에 굴복하거나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지내면서도 그림에 몰두하며 자신의 기량을 끌어올렸습니다.
고흐는 불행했다고 여겨지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희망을 느낍니다. 이는 고흐가 자기 삶을 사랑했기 때문 아닐까요.
고흐는 테오에게 “나는 종종 내가 부자라고 생각한단다”라며 그 이유로 “작품 속에서 내가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고흐는 온 힘을 다해 예술에 몰두했습니다. 작품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고, 용기 있게 자기의 길을 갔죠. 이번 주말에는 고흐의 작품을 찬찬히 감상하며 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참고 자료>
-EBS, 클래스ⓔ ‘이동섭의 반고흐 인생수업’
-마틴 베일리(2021),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화가, 그 창작의 산실을 찾아서, 부커스
-빈센트 반 고흐; 신성림 옮기고 엮음(2017),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위즈덤하우스
-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줄리오 카를로 아르간(2007), 반 고흐, 예경
-이자벨 쿨(2007), I, Van Gogh, 예경
-인고 발터(2005), 빈센트 반 고흐,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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