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웃음이 만나면…‘쥐롤라’에 빠져들다

남지은 기자 2024. 8. 1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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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선보이는 ‘뮤지컬 스타’에서 뮤지컬 배우 이호광으로 변신한 이창호가 ‘킹키부츠’의 인기 넘버 ‘랜드 오브 롤라’를 부르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일렉 짜장 앤뱀 힐 아엠 예스 배에에엑!!!!! 롤라~아아~♬”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을 점령한 곡이다. 뮤지컬 배우 이호광이 ‘킹키부츠’에서 부른 ‘랜드 오브 롤라’다. 이호광은 복싱 선수 출신 드래그퀸 롤라로 나와 백업 댄서들과 공연하는 장면에서 이 곡을 부른다. 뮤지컬 속 롤라는 배우 강홍석·최재림·서경수 등이 맡아왔는데, 이호광은 다른 배우들과 느낌이 조금 다르다. 안무에 태권도를 접목했고, 창법도 태권도 기합 소리처럼 우렁차다. 이유가 있다. 이호광은 ‘킹키부츠’ 새벽 공연에만 나서기 때문이다. 이호광은 개인 유튜브에서 “새벽에는 (관객들이) 자꾸 졸더라. 새벽 공연은 관객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이호광표 롤라가 주목받으면서 뮤지컬 팬들의 한숨은 깊어졌다. 안 그래도 이호광이 나오는 새벽 공연은 현장 취소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표 구하기가 어려운데 새 팬들이 유입되면서 티케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다. “쥐롤라는 낮 공연에도 나와 달라” “새벽 공연 늘려달라”는 요구가 온라인 게시판을 달군다. ‘쥐롤라’는 롤라 분장을 한 이호광이 쥐를 닮아서 팬들이 붙인 별명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이런 뮤지컬 배우가 있었나?’ 갸우뚱하는 뮤덕(뮤지컬 팬)들도 있을 것이다. 실은 이호광은 코미디언 이창호가 만든 부캐릭터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공개하는 ‘뮤지컬 스타’에 등장한다. 뮤지컬 작품의 인기 곡을 커버하고, 실제 뮤지컬 배우들과 상황극을 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호광이 새벽 공연 전문이라는 가상의 설정도 ‘뮤지컬 스타’에서 만든 것이다. 이호광이 인기를 끌면서 팬들도 설정 놀이를 즐기고 있다. ‘뮤지컬 스타’에는 곽범이 뮤지컬 배우 곽필립으로, 김해준이 뮤지컬 배우 김민준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창호가 연기하는 이호광은 요즘 ‘킹키부츠’ 롤라를 따라 하며 급부상했지만, 2021년 ‘뮤지컬 스타’ 시즌1부터 등장했다. ‘데스노트’의 넘버 ‘게임의 시작’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넘버 ‘겟세마네’ 등을 불렀다. 지난 6월 시작한 시즌4에서 커버한 ‘랜드 오브 롤라’는 퀄리티와 반응에서 이전 시즌을 뛰어넘는다. “무엇을 상상하든지~♬”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쫀득해 자꾸 귀에 맴돌아 ‘쥐며든’ 이들이 속출했다. 하루 종일 이호광이 생각나고 영상을 보고 또 보는 것이다. “나한테는 쥐롤라가 정품” “쥐롤라에 빠져 다른 롤라 공연을 볼 수가 없다”며 뮤덕들도 좋아한다. 그가 태권도를 접목해 만든 춤을 따라 하는 ‘#태권롤라 챌린지’도 에스엔에스(SNS)에서 유행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선보이는 ‘뮤지컬 스타’에서 뮤지컬 배우 이호광으로 변신한 이창호. 유튜브 갈무리

코미디언이 웃음을 주려고 만든 캐릭터가 ‘희화화 논란’ 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잘해서다. 이창호가 롤라로 분장한 모습은 극단적이지만, 실력은 뮤지컬 배우 뺨친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느낌 있다. 실제 공연에 투입돼도 좋을 만큼 소화력이 좋다. 뮤덕들은 “퀄리티 좋아서 킹받는다”며 이호광이 나오는 ‘킹키부츠’ 새벽 공연이 현실에서 열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곽필립(곽범)이 부른 ‘거인을 데려와’(‘시라노’)와 김민준(김해준)이 부른 ‘대성당들의 시대’(‘노트르담 드 파리’) 영상을 봐도 이들 모두 ‘뮤지컬 스타’에 얼마나 진심인지가 드러난다.

이창호 스스로 코미디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이창호는 어떤 역할이든 진지하게 임하면서 그 속에서 웃음 포인트를 심어주려고 한다. ‘뮤지컬 스타’를 하면서는 해당 공연 영상을 수십번, 수백번 돌려 보며 작은 동작 하나하나까지 연구한다고 한다. 코미디 캐릭터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그의 태도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에 입각한 영상으로 눈길을 끈 ‘재벌 3세 이호창’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필터를 활용한 가상 인간 ‘매드몬스터 제이호’를 탄생시켰다. 이 밖에 한사랑산악회 부회장 이택조 등 내놓는 부캐마다 재미를 뛰어넘어 코미디 지형을 바꾸며 사랑받아왔다.

2022년에는 자신의 “두꺼운 턱”을 활용해 행위예술을 포함한 전시회 ‘턱치회’를 열기도 했다.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턱살을 강조해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신체를 활용해 웃기려고? 아니다. 자신의 콤플렉스였던 턱을 과감하게 내세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자는 외침이었다. ‘턱치회’를 본 뒤 관객들은 “무엇이 ‘쌈마이’이고 무엇이 고급인가” “코미디 장르는 왜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등의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당시 “영상과 공연을 넘어 미술, 전시, 사진, 그라피티, 무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컬래버레이션(협업)하며 코미디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그를 보며 “천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말이 이호광을 보면서 또 한번 나온다. “이창호는 코미디 천재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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