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잡는 날, 한 명당 백 마리! - 파리와의 전쟁 역사[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 기자 2024. 8. 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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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사진 No. 74


●얼기설기 지은 집의 현관문이 보입니다. 어느 동네를 찍은 사진인 것 같습니다. 사진의 왼쪽 빈 공간에 ‘매월 1일과 15일은 파리 잡는 날’이라는 구호와 함께 파리 그림도 같이 넣은 포스터가 합성되어 있습니다. 무슨 사연인지 보겠습니다.

1924년 8월 11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내 동리 명물’코너입니다. 1924년 6월 25일자부터 1924년 8월 15일자까지 동아일보 3면에는 2장의 사진이 매일 실립니다. 주로 서울 시내의 각 동마다 자랑거리 또는 특별한 이야기거리를 사진 한 장과 기사로 설명하는 기획기사가 50일간 연재되었었습니다. “사진기사 – 일백동정(一百洞町) 일백명물(一百名物)”이라는 코너였습니다. 100군데 이야기를 마친 코너는 8월 15일에 끝이 났습니다. 오늘 사진은 그 중 광희정(지금의 서울 중구의 한 지역)의 마을에 관한 입니다. 기사를 보시죠.

광희정 파리
광희정 2정목292번지 윤기병

광희정 사람 말이 내 동리 명물은 파리라 어느 집을 가보던지 사람의 집이라기 보담 파리의 집이라고 하는 것이 상당할 만큼 파리가 숱하게 많다고 합니다. 파리는 추한 곳에 많이 꾀이는 물건이니 파리를 명물로 내세우는 것은 동리가 추하다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못된 바람 부는 곳에 무슨 좋은 명물이 차지가겠습니까?

파리가 늦은 가을에 알을 배고 그대로 과동(過冬)을 한답니다. 봄 새 날이 따뜻하여지면 일백 45개 색기 파리를 낳는데 그 색기가 얼마 동안만 지내면 또 알을 배게 된답니다. 그래서 봄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암파리 한 마리가 가을까지 가면 칠십구억사천백이십칠만 가량되는 파리의 조상 할미가 된답니다. 이 파리가 만일 잡히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몇 해 동안만 지내면 이 세상은 파리의 물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계에 파리 만키로 제일 갈 만한 곳은 아마 압록강 건너 안동현인가 합니다. 안동현 거리를 지나가자면 거리의 먼지가 떼를 지어 날아갑니다. 이 먼지는 참말 먼지가 아니요 파리가 먼지를 뒤여 쓴 것입니다. 광희정 파리쯤은 아마 명함도 못 들일줄 압니다.

1924년 8월 11일자 동아일보

광희정에 살고 있는 윤기병이라는 독자가 자기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특별한 자랑거리는 없고 파리가 득실되어 유명하다고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 보다 오히려 파리가 사는 지역이라고 자기 동네를 비하하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이 더럽고 위생상태가 엉망이라고 지적하는 내용이니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동네 사람들에게 꽤나 욕을 먹었을 내용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파리가 많은 것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서 전염병의 위험까지도 의미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지적은 단지 불평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 대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필자는 가을에 암컷 파리 한 마리를 살려 놓으면 겨울을 지낸 후 45마리의 새끼를 까고 그 새끼들이 몇 세대 이어가면서 다음 해 가을이 되면 79억4천1백2십칠만 마리의 파리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막아야 한다는 의미일겁니다. 여기서 파리의 번식력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과장된 숫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파리와 같은 해충이 어떻게 통제되지 않을 경우 빠르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사 말미에는 경성의 광희정보다 파리가 더 많은 곳은 중국 안동(지금의 중국 단둥) 지역이며 길을 걷다보면 먼지가 뿌옇게 보이는데 그게 실제로는 파리떼라면서 그 동네가 세계에서 파리가 제일 많은 곳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비교를 통해 필자는 경성의 위생 상태가 최악은 아니라는 위안을 찾으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거리 전체에 파리가 날아다니는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100년 전 경성에서는 파리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노력으로 지금은 서울의 위생은 큰 변화와 발전을 했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서 ‘파리 잡는 날’을 검색해 보니 시대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1928년 7월 11일 실린 아래 기사입니다. 조금 읽기 쉽게 바꿔서 정리해보았습니다. 휴지통이라는 칼럼은 2024년인 지금도 동아일보 지면에 있는, 기자들의 단상을 적는 칼럼입니다. 이 기사는 단순히 ‘파리 잡는 날’을 공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의 위생 정책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또한 일본식 조선어 사용이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어색하게 다가왔는지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휴지통

▲매월 10일과 25일은 “파리잡는날”이라고 파출소 앞과 큰 길거리에 고시판을 세우고 물뿌리는 자동차에까지 굉장한 광고판이 붙었다. ▲그것이 선전의 제일 비법일런지는 모르되 아마 모르긴 하겠지만 그런 광고를 써붙여야 파리를 잡으리라고 인정하는 위생과장인들 특별히 파리를 잡지는 않을 걸 ▲써붙이기만 하면 선전이 되나. 일본씩 조선말을 바로그럴 듯이 써놓기는 하였지만 일본말 모르는 조선인은 읽어도 뜻은 모를 말 뿐이니 신발명 일선융화(日鮮融化) 조선어란 말인가

동아일보 1928년 7월 11일

● 1960년대에는 서울시 차원에서 파리를 비롯한 유해 곤충 퇴치 활동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사가 있어 함께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학생 한 명당 1백 마리의 파리를 잡고 음식점 등은 가게당 5백 마리씩 파리를 잡자는 캠페인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시기의 기사는 서울시가 전염병 예방과 위생 개선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파리 한 마리의 위험성도 간과하지 않고, 도시 전체가 협력해 해충을 퇴치하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초등학생들까지 동원해 파리를 잡게 한 것은 단순한 방역 활동을 넘어, 어린이들에게 위생 교육을 심어주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1일 시내 불결지역 59개동(1만6천8백39가구7만7천4백70명)을 비롯、고지대빈민촌 28개동(8천5백49가구 3만9천7백20명) 난민정착지 7개동(1만1천8백79가구5만8천2백50명)을 전염병발생예상지구로 설정하고 춘계방역대책을 세웠다.

서울시는 첫 달인 3월엔 유해곤충발생원을 제거하며 4월엔 위생업소종사자 20만명,전염병발생지역 주민 5만 명 등 25만 명을 상대로 장티푸스 등 전염병 보균자를 색출키로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9개 기동반을 편성, 4월 한달 동안 시민28만6천명에게「콜레라」예방주사를 접종하고 72만명에겐 장티푸스, 15만3천9백명에겐 천연두 접종을 실시한다.

서울시는 이밖에 국민학생 1백39개교 70만 명과 접객업소 1만7천업소를 상대로「파리잡기운동」을 벌이는데 초등학교 학생은 1인당 1갑(1백마리 기준), 접객업소는 5갑씩을 잡도록 권장키로 했다. 또한 영세민 10만가구에는 파리잡는「끈끈이」1장씩을 분배한다.

서울시는 이밖에 파월병력과 기술요원의 교체 및 내왕이 많아짐에 따라「페스트」의 국내침입이 우려되므로 귀향인의가정을 일일이 방문, 개별적인 예방접종을 한다.

1967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석간 4면 기사

● 1969년도에는 매주 토요일을 ‘파리 잡는 날’로 지정하고 범사회적인 퇴치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 기사는 파리 박멸 운동이 일상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시민들은 매주 토요일을 ‘파리 잡는 날’로 인식했을 정도로 이 운동이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연막소독차가 어떤 정책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오늘날의 깨끗한 도시 환경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당시의 정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1日부터 박멸 운동 – 접객소 단속, 변두리 소독

서울시는 여름철위생에 대비해 6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4개월 간을 파리박멸운동기간으로 정하고 접객업소원 불결 지역을 중점적으로 단속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 기간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를 파리 잡는 날로 정해 변소 쓰레기통 하수구 등 불결한 곳은 반드시 뚜껑을 덮고 소독을 하며 접객업소는 끓인 물만 제공케할 방침이다. 이밖에 서울시는 파리가 자라나기 쉬운 불결지역 192개소와 하천 621개 소에 대해서는 월 1회 생선회 소독을 실시하고 변두리의 폭 4m 이상 도로에는 연막 소독을 실시한다.

1969년 5월 29일 동아일보

● 1972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사설에도 파리 퇴치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운동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사설은 파리와 모기 같은 해충이 단순히 불쾌감을 주는 것을 넘어서, 공공보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까지 방역과 위생의 중요성을 교육하려는 노력이 오늘날의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우리가정에서도 당국과 협력, 방역에 특별한 유의가 있어야 한다. 우선 모기가 숨어있을 수채나 정원수(庭園樹)등에 대한 청소와 방엮을 철저히 해야겠다. 여름철의 모기가 무섭다는 것은 말라리아를 비롯해 여러가지 병균을 전염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모기와 더불어 파리잡기운동도 벌여야하겠다. 변소의 소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며 각 국민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파리의 무서움을 알리고 집에서 파리잡기운동을 벌이도록 했으면 한다. 병균을 뿌리고 다니는 파리를 잡는다는 점에서나 어린이들에게 위생과방역관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나 장려할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1972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사설

● 오늘은 100년 전 서울 중구의 한 마을에 파리가 많다는 것을 소개하는 사진에서 출발해 1970년대까지 이어졌던 ‘파리잡는 날’ 운동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과거의 노력이 오늘날 우리의 생활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위생 운동의 중요성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심각했던 문제가 현대에 이르러 해결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인식 전환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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