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표현, 골프장의 일갈" [인터뷰M]
영화 '행복의 나라'로 8년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추창민 감독을 만났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26일 대통령이 암살을 당한 그 사건부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12·12 군사반란으로 이어지는 시간 사이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을 다룬 영화다.
바로 몇 개월 전 개봉하기도 했고, 배경으로 하는 시간대도 비슷한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다. 추창민 감독은 "촬영은 저희가 먼저 끝났다. 비슷한 시기지만 저희가 먼저 끝나서 '서울의 봄' 보다는 먼저 개봉할 계획을 했었다. '서울의 봄'은 예산도 크고 우리보다 조금 더 큰 영화라 우리가 먼저 가는 게 유리하다 생각하고 작업 중이었는데 이선균 씨 문제도 있어서 중간에 드롭이 되었다."며 '행복의 나라'가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편집도 끝났고 CG와 믹싱을 남겨둔 단계였는데 손을 놓고 있다가 이선균이 안타깝게 가고 난 뒤 다시 작업을 하려고 보니 원했던 시기에 개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서울의 봄'이 잘 되더라."며 불가피하게 8월에 개봉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올해 초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냐는 질문에 추창민 감독은 "비슷한 시대를 담은 건 같지만 결이 다른 영화다. '서울의 붐'은 대중적인 장점이 큰 영화다. 12.12에 확 들어가서 인물을 다루고 다큐멘터리처럼 통쾌하게 보여줬다. 우리 영화는 그 시대가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를 권력층으로 상징되는 전상두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다. 전상두는 전두환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게 아니라 그 시대 권력의 화신, 야만성의 상징이다. 날카롭고 치열하고 욕망을 감추고 뒤로는 비수로 찌를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두 영화의 차별점을 설명했다.
그러며 "'서울의 봄'이 잘됐다고 우리까지 잘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우리 영화의 결을 더 좋아해 주실까라는 고민이 커지더라."며 동시대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의 영화라는 강조를 했다.
상징적인 표현으로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인물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전두환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미지를 지울 수는 없었다. 감독은 "전두환을 연기하게 하지 않고 발톱을 감춘 누군가의 야만성을 연기했다. 또 '정인후'는 시대의 시민정신을 대변했다. 처음에는 세상에 발맞춰 살고 있지만 어떤 계기로 자각을 하게 된 이후부터는 한 걸음씩 전진하고 외치고 소리 내는 시대의 정신이었다. 박흥주를 대변한 박태주는 시대의 희생양을 상징했다. 어떤 시대건 희생이 되는 인물이 있다. '행복의 나라'에는 각 인물들의 개인적 서사보다는 상징성으로 시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 '서울의 붐'과 표현 방식이 다른 영화"라며 비슷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완전히 다른 문법을 가진 작품임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되 상징성을 강조해 만든 '행복의 나라'이기에 균형감이 중요했다. 추창민 감독은 "제일 중요했던 건 박태주 역할이었다. 실제 인물이었던 박흥주 대령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 생각했다. 이 분이 살아온 과정과 재판, 결과는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판 장면은 철저한 자료조사로 95% 가까이 실제와 일치시켰다."라며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음을 알렸다.
반면 가장 상상력이 많이 돋보인 장면은 골프장 씬이었다. "당시 전두환이 골프를 좋아했고 미군 골프장에서 혼자 쳤다고 하더라. 그런 곳을 누군가 찾아가면 좋겠다는 판타지적인 생각을 했고 그 사람과 1:1이 된다면 독재자가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까 했다. 그동안은 아닌 척, 점잖은 척을 했지만 프라이빗한 장소에서는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냐. 누군가는 외치고 반항하고 그러는 게 가장 영화적인 장면이었다 생각한다."며 해당 씬의 이유를 설명했다.
추창민 감독은 "그 장면에 대해 호불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과하다거나 아니면 시원하다고 평가가 갈릴 것.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전상두가 골프공을 골프채 끝으로 톡톡 건드리는 모습이 있는데 골프공이 대중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되는 게 골프이자 대중이라는 의미로 골프라는 스포츠를 갖고 왔다"며 영화 속 설정에 담긴 의미를 밝혔다.
'서울의 봄' 보다 먼저 개봉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지고, 또한 故 이선균으로 인해 편집하면서 수정된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감독은 "크게 없다. CG가 안된 상태에서 드롭되었다가 다시 후반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선균이 없어서 후시녹음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부분을 조금 바꾸고, CG가 들어간 부분이 이상해서 바꾸는 정도만 편집을 했지 큰 틀에서 수정은 없었다."는 답을 했다.
이선균이 연기한 박태주의 분량이 좀 적었다는 의견에 감독은 "이 영화는 정인후가 주인공이다. 박태주는 한정된 공간에 있는 인물이어서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온 분량이 최대치"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시대적 배경이 너무 무거워서 이 영화가 진지한 법정영화라 예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웃음 포인트도 있고 통쾌한 장면도 있다. 감독은 "이 영화가 너무 무서워서 좀 더 재미있게 봐주길 바랐다. 그 방면으로 조정석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했다. 연출하며 항상 오케이가 났지만 그럼에도 '다른 거 없을까?'라는 말에 조정석의 주특기를 보여줄 때가 많았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첫 편집 때는 지금보다 유머코드가 더 많이 들어갔었다. 그런데 완성본에서는 더 많이 걷어 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있어야 충분히 영화적인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생각한다."며 상상력으로 빚어낸 인물 '정인후'가 코미디와 통쾌함까지 끌고 갔음을 이야기했다.
'상징성'을 강조한 영화인 만큼 전상두의 모습에서도 많은 내포된 의미가 있었다. 전상두를 연기한 유재명은 자신의 구체적인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추창민 감독은 "유재명에게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었다. 너무 다양하게 표현을 해주셨는데 어떤 걸 써야 할지 고민되더라. 마지막 재판이 끝난 뒤 헤드셋을 벗는 장면은 다시 보시면 사운드가 없다. 헤드셋을 벗어서 탁 내려놓을 수도 있고 살살 내로 둘 수도 있고 쳇, 한다거나 뭐라고 소리를 낼 수 있는데 그런 소리들을 아예 뺐다. 작은 소리라도 들어가면 그 장면은 너무 규정짓게 되는 것 같더라. 악인으로 생각되는 인물이지만 99%의 절대악은 없다고 생각한다. 49:51 정도의 차이로 악인이 된다 생각해 물음표를 뒀다."며 유재명의 표정을 최소화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박태주가 정인후를 향해 "좋은 변호사"라는 말을 한다. 감독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분들에게 하는 말이다. 당시에 32명의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을 구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김수환 추기경의 지시 때문이라 들었다. 현장에 있었던 분 외에도 밖에서 그들을 도와줄 방법을 찾고 노력했던 당시의 분들에 대한 인사의 의미로 넣은 대사"라며 지금의 민주화를 만들어 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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