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더워진 지구…파리 올림픽 ‘무쇠 인간’들도 녹아내렸다 [ESC]
센강 수질 논란에 폭염·호우까지
경기 연기, 무더위속 달리기 감수
자연에의 경외감 잃고 싶지 않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은 지난 11일 막을 내린 2024 파리올림픽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난해 9월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나는 마침 바로 한 달 뒤에 뉴스룸국 스포츠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에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난생처음 취재하게 된 올림픽에서 세계 정상급 철인들이 겨루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트라이애슬론 수영과 오픈워터 스윔(마라톤 수영) 경기를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 일대에서 열기로 하고 대회 수년 전부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파리시 등은 지난 9년간 15억유로(약 2조2400억원)가 넘는 막대한 돈을 투입해 센강 수질 정화 사업을 벌였다. 세계수영연맹은 100㎖당 1000시에프유(CFU·미생물 집락형성단위)를 초과하는 대장균과 400시에프유를 초과하는 장구균이 함유된 물에서 수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 수치를 넘어가는 물에서 수영할 경우 위장염, 결막염, 외이염, 피부 질환 등을 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 철인도 멘털 흔들릴 날씨
센강 수질은 지난 6월까지도 기준선 안팎을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지난달 17일 안 이달고 파리시장과 토니 에스탕게 파리올림픽조직위원장이 직접 센강에 뛰어들어 5분간 수영을 하며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폭우와 폭염까지 겹치며 안전성 우려가 더욱 커졌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26일 종일 장대비가 내린 데 이어, 27일에도 적지 않은 비가 내리며 대장균과 장구균 수치가 급상승했다. 그러자 대회 조직위는 지난달 28일과 29일 열기로 했던 트라이애슬론 수영과 오픈워터 스윔 사전 훈련을 내리 취소했다.
‘센강 수영’ 첫 경기인 트라이애슬론 남자 경기가 열리기로 한 지난달 30일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이날 오전 8시에 열렸어야 할 경기가 이튿날로 연기됐다. 남자 선수들은 이날 원래 잡혀 있던 여자 경기(오전 8시 시작)가 모두 끝난 뒤인 오전 10시45분에야 경기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햇살이 강해지는 낮 시간대를 피해 이른 아침에 열리는 것과 달리, 남자 선수들은 정오를 넘긴 시각까지 무더위와 맞서며 마지막 달리기 경기를 치러야 했다.
이어진 트라이애슬론 혼성 계주 경기와 마라톤 수영 여자, 남자 경기는 모두 예정된 때 차질 없이 열렸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벨기에는 여자 개인 경기에 참가했던 클레르 미셸이 “불행히도 병이 났다”며 혼성 계주 경기에 막판 기권했다. 스위스올림픽위원회도 남자 경기를 뛴 아드리앵 브리포드가 위염에 걸렸다며, 대체 선수를 혼성 계주에 내보냈다. 선수들 몸에 생긴 이상이 정말 오염된 강물 때문인지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혹독한 훈련을 하며 4년을 기다려 온 경기의 정상 개최 여부가 대회 직전까지 정해지지 않고, 급기야 미뤄지기까지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엘리트 철인’도 멘털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후 연구자 단체 ‘세계기후특성'(WWA)의 프리데리케 오토 공동창립자는 최근 펴낸 ‘지중해 폭염 원인 분석’ 보고서에서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과 지구온난화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파리의 온도가 약 3도 더 낮았을 것이며, 폭염으로부터 스포츠 선수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파리올림픽을 망쳤다”고까지 했다. 실제로 파리의 7∼8월 평균 기온은 파리에서 첫번째 올림픽이 열린 1924년 이후 꼬박 100년간 3.1도 높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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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노리려다 해파리 쏘일 수도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은 엘리트 선수들뿐 아니라 나와 같은 생활 철인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대부분 대회가 수온에 따라 웨트슈트 착용 여부를 달리 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트라이애슬론 경기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아이언맨’은 공식 대회 수온 24.5도 이하에서 웨트슈트 착용을 허용하고, 16도 미만에선 의무화한다. 반면 수온이 28.8도보다 높을 땐 체온이 지나치게 높아져 심혈관계에 무리가 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웨트슈트 착용을 금지한다. 24.5도 이상, 28.7도 이하 수온에서는 웨트슈트를 입어도 되지만, 웨트슈트를 입을 경우 연령별 1∼3위를 하더라도 입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오픈워터 수영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 웨트슈트가 확보해주는 부력이 심적 안정을 조금이나마 더는 안전망 역할을 하는데, 뜻밖의 고수온으로 맨몸 입수를 하게 돼 덜컥 겁을 먹어 수영 경기를 망치는 선수가 적지 않다.
높은 수온에서는 해파리 출몰도 잦다. 수온이 24.5도 이상, 28.7도 이하인 날은 웨트슈트를 입고 해파리 쏘임을 방지할지, 맨몸으로 입수해 입상을 노릴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 예년같으면 수온이 24.5도는커녕 20도를 못 넘기는 경우가 많은 5~6월에도 최근에는 24.5도에 육박하는 경우가 늘어 철인들의 고민도 덩달아 커졌다. 국내 앞바다의 경우 평소엔 7월이나 돼야 해파리가 눈에 띄지만 올해는 5월부터 해양수산부가 ‘해파리 특보’를 내릴 정도로 해파리 출현 시기가 앞당겨졌다.
최근 몇년 사이 잦아진 국지성 호우는 자전거 경기에 영향을 준다.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내리면 도로가 미끄러워져, 자전거 경기 도중 낙차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6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 ‘마산만 전국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전날부터 쏟아진 비가 대회 당일까지 그치지 않아 자전거를 생략한 채 수영과 달리기만 하는 ‘아쿠아슬론’ 경기로 바뀌어 치러졌다.
때이른 폭염도 달리기 때 열사병의 위험을 높인다. 최근 몇년간 5월부터 폭염이 찾아오는 날이 늘면서 달라진 대회 환경에 적응할 필요도 커졌다. 철인들은 무더운 날에도 실내 트레드밀 대신 일부러 야외에서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며 ‘열 적응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금까지의 기후변화는 적응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알 수 없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 단체 ‘카본플랜’은 2050년까지 세계 대다수 도시가 여름올림픽을 더는 열 수 없을 정도로 더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분석 결과를 지난 11일 공개했다. 기온, 습도, 풍속, 구름의 양 등을 고려해 사람들이 열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수치로 나타낸 ‘더위지수’(WBGT)가 28도 이상이면 통상 마라톤 경기를 중단하는데, 2040∼2059년 이 수치 평균값이 32도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가 북미와 유럽, 아시아, 중동 등 세계 대부분 지역에 다수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트라이애슬론을 할 때 높은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고, 힘차게 페달을 밟고, 발을 굴려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때마다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게 품을 내어주는 자연에 경외감이 든다. 이 경외감을 더 오래, 깊이 느끼기 위해서라도 기후위기를 늦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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