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은 원래 채소…달디단 맛 없다면 ‘스테이크’가 정답! [ESC]
센불로 지지고 와인으로 코팅
냉동 후 잘라먹기…고급진 맛
라이코펜 함유, 염분배출 효능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냐는 말이 있지만 사실 모든 수박에 줄무늬가 있는것은 아니다. 요즘은 품종 개량이 너무 다양하게 진행돼 개구리수박, 애플수박, 블랙수박, 네모수박, 피라미드 수박…, 정말 이름만 갖다 붙이면 다 될 만큼 많아졌다. 이 많고 많은 수박들 중 우리나라 토종 수박으로 여겨지며 고려시대 유입된 이후 계속해서 그 형태와 재배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무등산 수박이다.
50을 바라보는 필자의 어린 시절, 무등산 수박은 마치 전설에나 나오는 신비의 과일처럼 여겨졌다. 어떤 재벌집 회장님 입원실에서 무등산 수박을 잘랐는데 그 달디단 향이 문 밖에까지 퍼지더라, 무등산 수박은 흰 부분까지 달다더라는 식. 백화점에 커다란 리본과 함께 바닥에 쿠션같은 장식까지 깔고 앉아 있는 무등산 수박의 위용은 말할 데 없이 당당하고 빛이 났다. 가격은 더 기가 찼다. 30~40여년 전, 18㎏, 20㎏ 나가는 것들이 10만원대였으니. 당시 제약회사를 다니던 울 아부지의 월급이 80만원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가산 탕진 수준의 가격인 셈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 맛에 대한 평가는 부풀려진 듯했다. 당시엔 일반 수박의 종자 개량이 지금같이 활발하지 못해서 무등산 수박이 달고 특별하게 느껴졌음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 어쩌다 얻어먹어본 무등산 수박은 아버지가 다 드시고 남겨진 밑동부분이었는데도 그렇게 달고 황홀할 수가 없었다.
수박은 달다. 수분이 90% 이상이며, 실상 채소로 분류되는 식물의 열매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달디단 당도 때문에 과일처럼 소비된다. 칼륨이 많아 염분을 배출하는 데 특효약처럼 정평이 나 있으며, 빨간색 속살을 보면 알 수 있듯 라이코펜 함량도 토마토보다 높다. 영양이 이렇게 우수한데도 수박은 고급 과일로 자리잡기 힘든 시기를 오랫동안 보냈다. 두꺼운 껍질과 쉽게 무르는 속살, 수많은 씨, 그리고 너무 커서 이동이 용이하지 않은 점, 냉장고에 넣기 힘든 점 등이 수박을 고급 과일로 만들지 못하는 방해요인이었다.
하지만 맛있고 건강한 수박을 계속 먹고 싶어 하는 인류의 노력 덕분에 당도가 높아져 효율성이 증대되었고 사이즈를 줄인 다른 종의 수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달고 맛있고 신선한 수박을 고르는 방법 중 하나는 꼭지를 살피는 것이다. 대부분의 농가가 조금 일찍 따서 판매자에게 보내고 있기 때문에 딴 이후 좀 더 숙성된 상태의 것을 사는 게 맛있다. 꼭지가 말라 있으면 달다는 증거다. 그러나 갈색으로 변해 있으면 딴 지 너무 오래된 것이니 주의하자. 이렇게 꼭지를 보고 샀는데도 심심한 맛이라면 수박에 사이다나밀키스 소다를 넣고 수박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
어떤 수박은 못 먹을 정도로 아무 맛이 안 느껴지는데, 수박이 채소이기 때문에 이럴 수 있다. 그럼 구워먹는게 정답이다. 수박을 두껍게 잘라 버터를 두른 팬에 사방 센불로 지져내다가 설탕과 소금을 솔솔 뿌리고 럼주나 화이트 와인을 1숟가락 부어 코팅을 한다. 구운 수박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꺼내서 잘라먹으면 세상 고급스러운 맛의 수박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수박의 흰 부분도 버리지 않는다. 오래전 이 흰 부분은 여름에 나오지 않는 무를 대신해 깍두기를 담그기도 했었다. 얇게 잘라 소금에 절여 무침이나 장아찌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우장춘 박사가 개발한 씨없는 수박’ 이라고 배웠으나, 씨없는 수박은 일본의 유전학자 기하라 히토시가 개발했다. 그러나 아직도 어린시절의 배움 탓에 씨없는 수박을 먹을 때마다 우장춘 박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또 수박을 먹을 때마다 토종 수박인 무등산 수박을 생각한다. 언제나 선구자적 인물이나 누군가의 첫 시도가 있었기에 지금의 발전된 현재도 존재하는 것이라 믿고 존중하려고 애쓴다. 무등산 수박이 주는 토종에 대한 마음이다.
홍신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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