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저출생 아닌 쏠림, 엉뚱한 독에 수백조 '혈세 붓기' [視리즈]

김다린 기자 2024. 8. 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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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대한민국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 3편
잘못 찾은 소멸 해법: 정책 목표 오류
일찌감치 소멸 위험 파악했던 정부
숱하게 쏟아냈던 소멸 늦출 정책들
동시에 수도권 쏠림 정책도 쏟아져
‘지방시대’ 열어젖히겠다던 尹 정부
수도권 인프라 확대에 역량 집중해
소멸 막으려면 쏠림 문제 해결해야

숫자와 통계를 보면 지방소멸의 위기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어느 하나 꺾어지지 않는 지표가 없어서다. 수백조원의 예산을 들였는데,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수도권 쏠림 문제를 해소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어떤 정부든 겉으론 균형 발전을 내세웠지만 실제론 수도권을 살찌우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혈세를 투입해왔다.[사진=뉴시스]

우리는 視리즈 '대한민국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 2편에서 각종 통계와 숫자를 통해 소멸 위기가 얼마나 가깝게 다가왔는지를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소멸위험지수에 따르면 전체 228곳 기초지자체 중 130곳이 소멸 위기 판정을 받았다. 산업연구원은 지역 경제 인프라를 따져 소멸 위험 지수를 산출했는데, 당장 소멸 위기에 놓여있거나 곧 소멸 위기가 닥칠 지역이 116곳에 달했다. 행정안전부는 인구감소지수를 토대로 89곳 지자체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문제는 이같은 위기가 수많은 대책을 쏟아낸 끝에 나온 결과란 점이다. 수백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기만 했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정부가 지역 소멸의 초점을 잘못 맞췄기 때문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과)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역소멸의 원인을 인구가 줄어드는 게 문제와 결부해선 안 된다. 저출생과 고령화는 글로벌 메가트렌드다. 어느 정도 감수하고 미래를 봐야 한다. 지방소멸의 진짜 문제는 가뜩이나 줄어드는 인구가 몇몇 지역에 쏠리고 있다는 거다."

지방소멸의 진짜 원인은 저출생이 아니라 '인구 쏠림 현상'이란 거다. 정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인구가 몰려있는 지역은 경쟁이 심해 출산율이 떨어지고, 출산율이 높던 곳은 인구를 뺏겨 출산이 다시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뺏는 쪽과 뺏기는 쪽, 양쪽 모두의 문제를 심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쏠림 현상을 막는 게 시급하다."

언급했듯 수도권 인구는 비수도권 인구보다 많다.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북적댄다.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인구 격차는 70만명으로, 역대 최대 간극을 기록했다. 수도권 인구는 2019년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는데, 해마다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인구뿐만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회사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있고, 절반 이상의 돈이 수도권에서 돌고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학도 모조리 수도권에 있다. 지방 청년에겐 '인-서울'이 지상 과제다. 한국의 지역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 정부가 인구 쏠림 현상을 두고 위기의식과 절박함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발족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2003년의 일이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2005년)보다 더 일찍 나왔다. 당시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지금의 두배에 육박했다는 걸 고려하면, 20년 전엔 인구 쏠림 현상이 저출생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참여정부는 이런 위기의식을 갖고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대표적인 정부 중 하나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출범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균형발전특별법도 제정했다.

참여정부 균형발전의 액션플랜은 국가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 10개 혁신도시에 112개 공공기관이 이전했다. 정책 효과는 뚜렷했다.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으로 이동했다. 세종특별자치시와 혁신도시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이전한 2013~2016년 시기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2017년부턴 다시 비수도권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려들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공공기관은 둥지를 옮겼는데, 기업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은 탓이었다. 사람들은 일자리가 많은 곳에 몰리고, 일자리는 산업이 성장하는 곳에 생기기 마련이다.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수도권 쏠림을 막지 못하면서 균형발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수도권에 남은 공공기관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혁신도시 2기' 사업은 지자체간 지리멸렬한 유치 경쟁과 기존 혁신도시 공동화 현상으로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정석 교수는 "이 문제를 풀려면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역대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지난 정부들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면서도 수도권에 신도시를 새롭게 구축하고 교통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수도권만 살찌우고 지방은 상대적으로 소외시켜 놓곤 지역 균형발전을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현 정부인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지방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해 '지방시대위원회'를 신설했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콘트럴타워를 만든 거다.

아울러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초점을 맞춘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엔 기회발전ㆍ교육발전ㆍ도심융합ㆍ문화특구 조성 등 여러 대규모 개발 플랜을 담았는데, 올해에만 예산 42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방소멸 위기는 가속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밑그림을 뒷받침하는 정책은 '따로 놀고' 있다. 비슷한 시기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시로 편입하는 방안을 내놨다. 인접 도시를 전부 서울에 편입하는 '메가시티 서울'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비수도권 지역을 대규모 권역별로 묶어 통합적 발전을 꾀하겠다는 정부의 구상과 정면충돌하는 정책이었지만, 정부는 딱히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러면서 윤 정부는 오히려 수도권 위주의 첨단산업 클러스터 지원책을 내놨다.

경기도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교통망 개선과 제3판교 건설을 위한 행정절차 완화가 대표적이다. 재개발ㆍ재건축 규제 완화부터 수도권 광역철도(GTX) 확대 건설도 같은 맥락의 정책이다.

현 정부도 인구 쏠림 현상을 완화하긴커녕 '수도권 살찌우기'에 열심이었단 거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통계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내놓든 지방소멸 위험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갈수록 강해지는 '인구쏠림' 현상을 막아낼 수 있는 해법들을 각 분야에서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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