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다는 건 정말이지 중요해…부모와 함께는 더! [ESC]

한겨레 2024. 8. 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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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균의 목업일기│아이와 함께하는 목공
아이와 공방에서 보내는 한나절
냄비받침, 스툴, 책장 뚝딱뚝딱
‘함께 물건 만들기’ 추억 한뼘 더
송호균 필자의 큰아들이 목공방에서 톱질에 열중하고 있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선친은 늘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 세대의 많은 다른 어른들처럼, 그 방법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늘 바빴다. 아버지는 언제나 집 밖에 계셨고, 어머니 입장에서의 결혼생활은 자식의 눈으로 보기에도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던 것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두 분의 결혼생활은 내겐 늘 반면교사였다. 아버지는 부재했으며, 어머니는 불행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늘 서먹했던 건, 함께 가족이 보낸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말이든, 평일이든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프로 목수와 육아 아빠 사이

다른 삶을 꿈꾸게 했으므로, 반면교사 역시 교사임이 분명하다. 두 아들을 낳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온 가족이 제주로 내려온 것도 그래서다. 자랑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곳 제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내에게도, 꽤 오랜 시간을 살림만 해온 내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우선 아빠를 찾는다. ‘함께 논다’는 게 중요하다. 아, 노는 것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인간은 놀아야 한다.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제주에 살면서 오름도 오르고, 바다에도 뛰어들고, 관광지도 다니고, 시장통에서 할 일 없이 배회도 하면서 하여튼 매일매일 아이들과 놀면서 지냈다.

목공을 배우고 창업까지 하게 되자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놀이터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아빠 목공방’이라는 장소는,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아버지의 일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거기엔 마음대로 잘라볼 수 있는 나무도 있고 각종 공구도 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당장 일할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아빠가 여차하면 스마트폰도 쥐여주는 곳이다. 둘째가 틈만 나면 “아빠 목공방에 가자”고 조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스승의 공방에서 일하던 시절, 유치원생인 아들을 처음 데려갔다. 쓱싹쓱싹 손사포질도 해보고, 작은 소품에 레이저각인도 해보며 소나무 냄비받침을 만들었다. 벌써 5년쯤 전의 일인데 두 아들의 이름이 각각 새겨진 두 개의 냄비받침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그 뒤로 틈날 때마다 아들을 데리고 하나둘씩 뭔가를 함께 만들었다. 접이식 스툴도, 작은 벤치, 수납장과 책장도 만들었다.

창업을 하면서 ‘프로 목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본업은 ‘살림하는 육아 아빠’라고 생각한다. 본업이 육아인 공방장의 일과가 궁금한가? 아침에 일어나 두 아이의 아침식사를 차린다. 씻기고, 입히고, 가방 챙기는 것도 봐주고 함께 길을 나선다. 두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게 주어진 근무 시간이다. 일이 없을 때는 한없이 한가하지만, 마감에 쫓길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일상적 정리정돈과 작업 후 청소는 기본 중의 기본일 터. 청소는커녕 손에 쥔 공구를 그대로 내던지고 퇴근하는 일이 잦다. 작업도 해야 하고, 아이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으니 다른 도리가 없다. 하교와 학원 라이딩 등을 책임지고 집에 가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함께 숙제도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놀다가 잔다.

방학이 되면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방학에 비하면 학기 중의 동선은 누워서 떡 먹기다. 우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라는 소중한 근무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저학년 때는 돌봄교실 등이 운영되지만, 이미 4학년인 큰아이는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는 학교에 내려주고, 큰아이와 공방으로 간다. 공방 바로 앞이 공립도서관이라 오전에 책 한권씩을 꼭 읽기로 했지만, 한 시간도 안 돼 쫄래쫄래 공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일이 다반사다. “톱질할래요, 이거 잘라주세요, 저거 조립할래요.” 말도 많고 요구도 많다. 아무리 ‘목공인의 아들’로 상대적인 경험이 풍부하다 해도 아이는 아이다. 계속 신경써주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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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자투리 톱질하는 아들

함께 제작한 수납장에 바니시를 칠하고 있는 둘째 아들.

아이를 데리고 오전 중에 어찌어찌 작업을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고 나면, 둘째를 데리고 와야 한다. 여름방학 중에는 아예 물놀이 세트를 늘 차에 두고 곧바로 바다로 간다. 물질을 마친 해녀가 몸을 씻는다는 용천수탕이 있는 포구가 있다. 거기서 대충 씻고, 갈아입고 학원도 보낸다. 그러고 나면 다시 저녁일과의 시작이다. 평상시에는 오후 3시, 방학에는 점심때 퇴근해야 하는 목공방이 아직 망하지 않고 있으니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모든 건 공방의 실질적 주인이시자 제주에 와서도 직장생활을 이어가사,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 덕분이 아니겠는가.

짧은 여름방학은 그래도 양반이다. 두 달 동안 이어지는 겨울방학 동안 공방은 사실상의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하는 목표를 하나씩 정하는 게 낫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함께 침대를 짰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내가 바빠서 아직 목표를 정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 혼자 뭘 열심히 하고 있길래 봤더니 호두나무(월넛) 자투리 나무를 갖고 톱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들아, 그거 아빠가 나중에 쓰려고 모아둔 거 같은데. 음, 그래 괜찮아. 뭘 만들어 볼까?

비뚤비뚤 불규칙한 모양으로 잘린 호두나무 조각이 작업대에 뒹굴었다. 하나둘씩 조각을 맞춰보던 아들이 “예쁘지 않냐”고 물어본다. 제법 그럴듯했다. 꼭 실용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도 그냥 ‘예쁜 물건’이라는 것도 있단다. 좀 더 유식해 보이는 말로는 ‘오브제’라고 하지. 그런 식으로, 좀 더 규모있게 제작하면 이름하여 ‘월넛 패턴 디자인 벽체’가 되는 거란다.

그래도 여기에 뭔가 ‘실용성’을 더할 순 없을까? 결국 아이가 구상한 ‘월넛 오브제’에 자석을 부착해 마그넷으로 완성하기로 했다. 적당히 샌딩하고 오일마감까지 마친 마그넷은 집 냉장고에 부착해 잘 쓰고 있다. 이렇게 아이와 공방에서의 한나절을 보내는 것이다. 아들과의 추억도 조금 늘었다.

이참에 ‘아이와 함께하는 목공체험’ 프로그램도 출시해볼까.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의미있는 물건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예 설계부터 함께하는 과정도 가능하겠다. 작은 소품뿐 아니라 본격적인 가구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뭔가 ‘물건을 만드는 일’은 아이도, 어른도 즐겁다.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오랫동안 생활공간에 두고 쓰는 물건이라면 더욱 그 의미가 클 것이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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